을사오적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선 ‘을사오적’의 모습. 대표적인 간신배들로 불린다. ⓒKBS 캡처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우리나라 조선조 3대 간신은 무오사화의 간신 유자광, 갑자사화의 간신 임사홍과 임승재, 인조 때의 김자점 등이 있습니다. 정조 때에도 세도가 홍국영이 있었고, 고려 시대에는 최항이라는 승려가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없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권력자의 주변에 붙어서 아부하며 그로부터 얻은 재물이나 권력을 마음껏 휘둘러 인재는 등용하지 않고 자신의 편에 서지 아니한 자들은 모두 죽이며, 나라를 더욱 위기에 빠트린 사람들입니다.

외세의 침략으로 많은 백성들의 삶은 고단했고, 권력자들의 물고 물리는 진흙탕 싸움으로 나라는 결국 패망하고 말았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는 위와 같은 뜻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하거나,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를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질병을 초기에 잘 대처했더라면, 대만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코로나19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발빠른 대처로 백신을 수입했더라면, 많은 의혹들이 잠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서 간 갈등과 위선 눈치 보기에 급급한 나머지 소신 있는 정책이나 업무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던 결과 백신 조기 확보에 실패했기에, 자화자찬하던 K방역은 일반 개발도상국보다도 못한 꼴찌 수준이 되었고, 국민은 더 불안해 휩싸여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백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누가 먼저 맞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대통령이 먼저 맞고 다음 국무위원, 국회의원 수순으로 접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실험 대상이냐”고 말합니다. 그러면 “국민들에게 먼저 실험을 해야 옳은가요?”라고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부를 해도 분수가 있지, 어찌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영욕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들의 만행을 보면서, 남은 임기가 어쩌면 이렇게 길고 긴지 참으로 안타까움 뿐입니다.

현명한 군주만이 바른 정치를 하게 됨을 이런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나라를 책임지는 최고 권력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훌륭한 인재를 발굴해, 보다 밝은 정사를 이룩하는데 힘을 모으고,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역점을 두어 정치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편 특정인들에게 특혜를 주거나 독점을 하도록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구나 소통을 거부하거나, 스스로를 대단히 똑똑하고 잘났다고 교만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첨꾼과 간신배들만 우글우글하게 되는 것임을, 역사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며 백성들의 이웃이 되는 순간, 많은 인재들은 자연히 몰려올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려 시대 최항은 승려였습니다. 형인 만종과 함께 송광사 승려로 일할 때, 문도들을 모으거나 재산을 모으는 일에만 몰두해 많은 액수의 금, 비단과 50만석에 해당하는 쌀을 모았다고 합니다.

거둬들인 쌀들을 백성들에게 대여하면서 이자를 받고, 추수 때가 되면 독촉하여 백성들의 재산을 마구 걷어가 백성들은 낟알 한 톨도 남지 않아 조세를 바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최항은 유부녀를 강간하거나 역마를 자신의 것처럼 타는 등 불법적인 행위를 일삼았지만 각 부서에서 감히 간섭을 하지 못할 정도였고, 사치와 향락에 빠졌던 인물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김성일은 조선 통신사로 서인인 황윤길과 함께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돌아와 선조에게 보고를 드릴 때, 서로 상반된 보고를 했습니다. 함께 대동했던 황윤길은 필시 변화가 있을 것이며, 풍신수길의 눈빛이 반짝반짝 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같이 보인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김성일은 그러한 느낌을 받지 못했고, 풍신수길은 눈이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된다 고 보고했습니다. 덕분에 김성일은 두고두고 역사에서 가시가 됩니다. 그는 황윤길의 말에 “민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리에 매우 어긋난다”고까지 말하여, 나라의 안위는 생각지도 않고 당파싸움에만 몰두한 간신배로 오늘날까지 취급받고 있습니다.

성경에 펼쳐지는 다니엘과 세 친구를 소개하려 합니다.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은 이유로 붙잡혀 온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지금 ‘우상숭배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의 길을 택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조금만 타협하고 양보하면, 살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7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죽이려고 사지로 몰아넣고자 간교한 계략을 꾸민 이들이 있었지만, 인간의 지식과 지혜만으로는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는 놀라운 승리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조서에 왕의 인장이 찍혀 있음을 알고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뒤 윗방으로 올라가서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매일 하던 방식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마치 앞서 다니엘 3장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친구가 풀무 못에 던져질 줄을 알면서도 금신상에 절하지 않고 설령 하나님이 구해주시지 않더라도 절하지 않겠다는, 즉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는 굳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 시민이 서울 종로구 한 학교 앞에 붙어있는 선거 후보자들 소개 벽보를 바라보고 있다. ⓒ크투 DB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이 정해준 제도 안에서 살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지만, 세상에 있다는 것 때문에 때로는 부당한 일들을 당하지만 우리는 그 부당한 일이 벌어지는 체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어서는 절대 안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왕이 제공하는 아름답고 기름진 음식을 거절하고 오롯이 채소와 물만 먹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예를 들어 시편 141편 4절에는 악한 자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게 해달라는 다윗의 기도가 나옵니다.

아마 다니엘 세 친구 역시 왕의 음식을 사양한 것은 다윗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궁중에서 그들이 베푸는 호화스런 사치에 물들면,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은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안에서 살지만, 비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굴하게 산다는 말은 세상에 동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 완전히 동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분리되지도, 그렇다고 세상에 완전히 동화되지도 않는 매우 어정쩡한 중간지대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중간 지대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당하게 소신껏 살면서, 제사장 같은 성도로서의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대면 예배다, 비대면 예배다, 온라인 예배다 해서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말들이 많았고 이 때문에 서로 갈등이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형식이 어떻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소신껏 믿음의 깊음대로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누굴 원망하거나 비판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느냐, 그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하나님의 백성은 나서서 외치고 항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못 살던 시절에는 단합이 잘 되어 잘못된 것을 보면 뭉쳐서 시위를 했고 목숨까지 내놓으며 항거했지만, 지금은 국민의 혈세로 정치하는 국회의원이나 국무장관들, 그리고 사법부 수장들까지 배가 부르고 눈치 보기에 급급합니다.

부패해 타락하는 나라를 보아도 아무런 가책이나 느끼는 양심조차 붕괴되어, 분별력을 잃는 지경에 이르도록 나라는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간신배들이 우글우글거림으로 인해, 이 나라에서 또 다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일제 강점기처럼 외세의 노리개 수모를 겪는 비극을 또 다시 재현해야 하겠습니까?

난세에 나라를 위해 나서서 일할 인재들은 어디에 숨었나요? 지금 백성들은 간신배들의 소란에 마음이 무겁고 괴롭습니다.

법이란 약하고 연약한 백성들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지금 이 나라는 권력자들을 위해 법을 사용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언제고 다가올 소망의 봄날을 기약하며,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께 매달려 더욱 깊은 기도를 드려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신앙으로 재무장하여,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골고다 언덕을 넘어, 다 이루었다는 승리의 속삭임이 우리 귓전을 울릴 때까지 마귀들과의 전쟁에서 승전가를 높이 부르는 그 날이 반드시 오기를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