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
▲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

부활절을 맞이할 때마다 늘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동네 독서실에 있다 경희대 운동장에서 열린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에 참석한 것입니다.

몇 십명 모이는 중등부였는데, 동네 독서실 가보니 중3 중등부 임원 형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일이 부활절인데, 새벽에 부근 경희대에서 부활절 예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독서실에서 밤 새우고, 새벽에 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중등부 회장이 신희범, 서기가 김기훈 중3이었습니다.
이 둘을 따라 몇 명이 밤새 공부도 했겠지만, 책상에 엎드려 자면서 새우다 새벽예배 참석했습니다.

좀 싸늘하게 추웠던 기억입니다.
가서 보니 사람들은 촛불을 켜고 있었고, 우리는 촛불이 없어 가난했습니다.
애들이라 그런지 누가 양초를 주어서, 우리들도 부유하게 촛불 켜고 부활절 새벽예배 드렸습니다.
좀 그럴듯하게 기억에 남는 추억입니다.
그때 설교는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고, 처음으로 부활절 새벽예배를 드렸다는 기억뿐입니다.

그때, 우리 어린애들에게 양초를 주었던 선한 사람, 복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보다 고전적 낭만이 더 깊어, 부활절 예배 때 흰옷을 입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얼마 있다, 또 신희범과 김기훈이 인도해서 몇 명이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열리는 구국집회에 갔습니다.
보도블럭 바닥에 앉아서 “주여, 주여” 하고 기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강사가 신현균이라는 부흥사 목사님이었고, 설교 중에 기억나는 것은 코믹하게, “오집사, . . . . .” 하는 발음을 사용해 청중을 웃게 하는 죠크였습니다.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중1 보다는 중3이 세상을 오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헌금 시간인데, 저는 어린아이였으나, 감동을 받아 하여튼 주머니에 있던 것 전부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김기훈이 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마음을 다 꿰뚫어 보든지,
“야, 니네들 차비는 남기고 헌금해”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신희범도 한 마디 더 거들었습니다.
다행히 남산에서 경희대 부근 집까지, 걸어오지 않고 버스 타고 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분당 오기 전까지 23년간 출석했던, 몇 백명 교회이니 대부분 사람들을 압니다.
신희범은 그때 그 누이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같이 안 보였으니 이사를 간 것 같습니다.
김기훈은 안타깝게 들리는 소리로 몇 년 후 세상을 떠났다 들었습니다.
그 형은 김명훈인데 공군사관학교 가서 사관생복 입고 교회 오는 것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시절 제 기억 속 첫 번 부활절.
지금 오십 년이 지나 그 부활절 기다리는 저는, 주님의 부활과 제 삶의 부활까지도 믿습니다.

분당중앙교회 최종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