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작가의 말,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요리 같다”로 들린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스타일이 있다
서툴러도 간만 잘 맞추면 뭐든 먹을 만하다

이 책을 읽으면 삶 자체가 하나의 레시피라는 생각이 든다
『축복받은 집』은 잘 차려진 ‘인생 레시피’ 같다

축복받은 집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 서창렬 역 | 마음산책 | 315쪽 | 13,000원

요즘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다. 이유가 있다. 열심히 산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힘들수록 자신을 챙겨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그래서 누군가가 맛있는 한 끼를 먹는 걸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소설집 『축복받은 집』(원제는 질병의 통역사)에는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꼭 9개의 잘 차려진 ‘인생 레시피’ 같다.

소설은 30대 초중반의 인도계 미국인이 겪는 삶의 이야기이다. 미국과 인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분명히 우리와는 언어와 문화도 다르다. 그런데 읽다 보면 나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나도 그들처럼 마음을 터놓지 못해,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 서로의 주변을 헛돌기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겠냐마는, 우리는 이것을 종종 잊곤 한다. 살다 보면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생길 수 있다. 다들 숨기지만, 용기를 내서 말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축복받은 집』은 나 혼자만 아픈 게 아니라는 것을 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경계인의 삶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는 인도계 미국 작가이다. 영어권 문학에서 인도 출신 작가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맨부커상을 받은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나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 『눈물의 아이들』을 쓴 의사이자 작가인 에이브러햄 버기즈(Abraham Verghese)만 봐도 알 수 있다.

줌파 라히리는 2000년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엄청난 상을 데뷔작으로, 그것도 33세에 받았다. 그 이후 『이름 뒤에 숨은 사랑』, 『그저 좋은 사람』, 『저지대』 등을 연거푸 성공시키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읽고 나면 등장인물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든다.

우리가 함께 읽는 『축복받은 삶』 속 주인공들은 미국에 사는 3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인도계이지만, 실제로는 경계인이다. 어찌 보면 미국 사회에 속한 것 같지만, 또 들여다 보면 엉덩이만 걸친 것 같다. 이들의 흔들리는 삶을 작가는 내밀한 눈으로 들여다본다.

경계인이라고 말은 했지만, 이 소설은 이민자의 소설이 아니다. 우리는 다 경계인이다. 작가가 자신에게 친숙한 인도계 미국인들의 삶을 소재로 삼았을 뿐이다.

작가는 자기 자신이나 부모, 친구나 지인들의 경험을 작품에 끌어다 쓴다. 두 번째 단편 「피르자다 씨가 식사하러 왔을 때」를 읽으면, 내전에 휩싸인 파키스탄의 이야기도 알게 된다.

익숙한 이야기라도, 겪어보면 다르게 느껴진다. 부모님이 살아온 인생을 우리가 바꿔 걸어가 본다면, 분명 다를 것이다. 마지막 단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을 읽으면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을 아는 것 같아도, 자신이 겪어봐야만 알 수 있다. 놀랍게도 작가는 우리가 매일 보는 익숙한 삶의 풍경 속에서 경이로움을 찾아낸다.

줌파 라히리 Jhumpa Lahiri
▲저자 줌파 라히리. ⓒ유튜브
일시적인 문제

첫 번째 단편이다. 눈 폭풍으로 전선 하나가 망가진다. 미국의 남부는 허리케인으로, 중부는 토네이도로 고생한다면, 북부는 눈 폭풍으로 고생한다.

폭설이 내리고 눈 폭풍이 오면, 일상이 한순간에 멈추어선다. 심할 경우 차를 버리고 가 고속도로가 막힌다. 전선이 끊어지면 암흑 속에서 추위에 떨기 일쑤다. 다들 고생하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보스턴이다. 눈 폭풍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다. 이곳에 쇼바(Shoba)와 슈쿠마(Shukumar)가 산다.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이다. 이제 결혼한 지 3년차이고, 아이는 없다. 아내는 출판사에 다니고 남편은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둘은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지금 자꾸 어긋나고 있다. 퇴근하면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

사건은 단전으로 시작된다. 눈 폭풍이 왔고 동네 전선 하나가 망가졌다. 보수 작업을 해야 하는데, 덜 추운 시간을 이용해서 한다. 그 시간이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이다.

갑작스러운 단전은 복선처럼 보인다. 지금 부부는 서먹하다. 그저 말없이 밥 먹고 각자 떨어져 자기 일을 한다.

부부는 무덤덤한 사이다. 차라리 소란스레 말싸움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6개월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이들은 아주 행복했고 유쾌하게 지냈다. 그런데 출산 예정일 3주 전 진통이 왔고, 아내가 사산했다. 그 일 후 말이 없어졌고 서먹해졌다. 서먹해진 부부의 일상에 갑자기 정전이 찾아왔다.

촛불을 켜고 마주한 저녁식사 때, 아내가 마음 속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만난 지 오래지 않았을 때, 그의 주소록을 들춰본 이야기를 한다. 자기 이름이 어떻게 적혀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남편 슈쿠마도 둘이 식당에서 처음 만났을 때, 긴장해서 팁을 주는 걸 깜빡한 이야기를 한다. 이게 첫째 날의 일이다.

둘째 날, 아내는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다. 두 사람은 현관 앞 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손에 촛불을 하나씩 켜 들고 말이다. 어제처럼 가슴 속에 숨겨두었던 비밀을 하나씩 털어놓았다. 밖에 있어서 찬 바람에 추워진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다. 셋째 날 부부는 어둠 속에서 연인처럼 입맞춤했다.

넷째 날 두 사람은 가슴 속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랑을 나누었다. 정전이 서먹했던 부부의 삶을 180도로 바꾼 것이 분명하다.

이날 전기 보수공사가 잘 진행되어 전기가 들어왔다. 다섯째 날, 이제는 촛불을 켤 필요가 없었지만, 촛불을 켰다. 그리고 식사를 끝내고 와인 한 병을 비운 뒤 아내가 전깃불을 켜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동안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하나 찾았어(42쪽).”

아내의 갑작스런 별거 통보였다. 사산의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내가 마지막에 털어놓은 비밀은 별거였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줄 알았었는데, 아니었다.

둘은 벽을 허물지 못했다. 아내가 진실게임을 제안한 것은 이 말을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절대로 털어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말을 했다.

“아이는 사내아이였어. 피부는 갈색보다는 붉은색에 더 가까웠고. 머리털은 검정색이었지. 몸무게는 2.3킬로그램 정도였고. 손가락은 꼭 오므리고 있었어. 당신이 잠들었을 때처럼 말이야(44쪽).”

부부는 서로를 안다고 생각한다. 부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부가 보여주듯 서로를 잘 모른다. 같은 집에 살아도 남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아내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부부는 아이를 잃으면서 말을 아꼈다. 처음에는 그게 상대를 위한 배려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말을 안 하니 오해가 생겼다.

소설은 두 부부가 함께 우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사랑했지만 외로웠다. 아이를 잃은 아픔을 감추고 살았지만, 이제야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아픔을 알게 된 것이다. 상대를 위한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었음을, 함께 흘리는 눈물로 보여준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아름다운 것이 눈물이란 생각이 든다.

질병의 통역사

세 번째 단편이다. 3인칭 소설로, 주인공은 가이드 겸 통역사인 카파시 씨이다. 나이는 46세이다. 소통의 문제는 『축복받은 집』을 하나로 엮는 주제인데, 「질병 통역사」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이야기를 한참 따라가다 보면 이런 문장을 만난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른이 안 된 나이에 이미 삶에 대한 사랑을 상실해버린 여인을 말이다(110쪽).”

30세는 외모로도 내면으로도 성숙함이 묻어나는 나이다. 그래서 이 문장을 읽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삶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무엇 때문일까.

관광객 부부를 따라가던 시선이 갑자기 바뀐다. 이 여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솟구친다. 소설에서 카파시 씨가 그런 일을 한다.

카파시 씨는 질병 통역사이다. 이게 본업이다. 인도는 다민족 다인종 국가이다. 언어소통이 만만치 않다. 카파시 씨는 평일엔 의사와 환자 사이의 통역을 맡고 있다.

젊었을 땐 외교관을 꿈꿨지만, 이제는 구자라트어를 모르는 의사를 위해 구자라트어를 쓰는 환자들의 질병을 통역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금, 토 이틀에는 관광 가이드 일을 한다.

시골집 나무 경로 트레일 집 홈 정원 잔디 풍경 한적한 자연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겠냐마는, 우리는 이것을 종종 잊곤 한다. ⓒ픽사베이
소설에서 카피시 씨가 만난 손님들은 미국에 관광을 온 인도계 부부이다. 아이가 셋이나 된다. 다스 씨와 다스 부인이다. 다스 씨는 과학 교사이다. 다스 부인의 이름은 미나이고 나이는 28세이다.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부부이다. 이들은 인도의 코나라크라는 명소를 찾아왔다. 태양신에게 바쳐진 사원이다.

사원에 도착해서 남편과 아이들은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다스 부인은 차에 남았다. 발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말이다. 차 앞 유리창을 통해 둘째 아들 보비가 원숭이와 장난을 치는 모습을 지켜보던 다스 부인이 불쑥 말했다. “저 아이는 그의 애가 아니에요(105쪽).” 아무도 모르는 가이드에게 8년간 감춰온 비밀을 털어온 것이다.

다스 부부는 어릴 때 만났다. 부모님들이 동네에서 절친이었다. 주말마다 서로의 집에서 만났다. 둘이 따로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결혼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미나가 고등학생 때 대학생 남편이 청혼했고, 결혼했다. 너무 빨리 아이를 가졌다. 육아로 피곤하던 때 남편 친구가 일주일간 머물렀는데 그때 둘째를 갖게 되었다.

소설을 보면 둘째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피부가 약간 더 희다(86쪽). 남편 친구가 펀자브 출신인데 그곳 사람들의 피부색이 그럴 것이다. 너무 빨리 부모가 된 탓에 육아에 지쳐 서로에게 무관심해졌는데, 그때 일이 생긴 것이다. 이 비밀을 남편 친구도 모른다. 미나만 알고 있고,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그걸 내려놓고 싶어한다.

관광 가이드가 가진 질병 통역사라는 직업이 비밀을 털어놓게 했을지도 모른다. 환자들의 질병 징후를 통역해주듯, 자신의 심란한 마음도 통역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남편은 딸을 목마 태운 채 좁은 길을 올라가고 있다. 두 아들 중 하나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걸 알지 못한 채, 그는 미국 학생들에게 보여줄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이 단편은 다스 부인의 마음을 묘사할 것 같은데, 오히려 카파시 씨가 느끼는 감정을 묘사한다. 다스 부인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낼테니 주소를 달라고 했는데, 그 한 마디에 카파시 씨는 앞으로 전개될 일을 정신없이 상상한다. 그리고 소설은 다스 부인이 빗을 꺼낼 때 주소가 적힌 종잇조각이 날아가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감정은 살아 있다

감정은 살아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 느낀다. 「일시적인 문제」에선 아이를 잃게 되자 부부가 감정을 덮어버린다. 그걸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이를 잃은 상실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덮었더니, 오해라는 감정이 제멋대로 자랐다. 특히 미운 감정은 더 빨리 몸집을 키운다.

감정을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된다.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야 한다. 쇼바와 슈쿠마 부부는 이걸 뒤늦게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런 소통이 「질병 통역사」에선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나가 관광 가이드를 만나며 소통의 실마리를 여는 듯 했지만, 그가 건넨 주소가 날아가면서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축복받은 집』은 9편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두 단편만 읽어도 소통의 힘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부부라고 할지라도 둘 중 한 사람이 삐끗해도 다른 사람이 잘 버텨주면 절대 안 넘어진다는 걸,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서로를 토닥이는 작은 위로가 있다면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이정일
▲이정일 목사. ⓒ이대웅 기자
이정일 교수
미국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다. 신학을 하기 전엔 영문학을 공부해 문학박사를 받았다. 박사 후 뉴욕주립대 영문과에서 미국 현대시를,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제3세계 작가들을 연구했다. 대학에서 세계문학과 영어를 가르치며 전방 포병대대 교회에서 군(軍)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