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역겹고 불명예, 수치스러웠던 ‘십자가 처형’
기독교의 진정성을 가리는 시금석이자 부활의 전제
부활, 우리 삶에서 십자가의 모순과 수치 제거 않아

예수와 십자가 처형

예수와 십자가 처형

플레밍 러틀리지 | 노동래·송일·오광만 역 | 새물결플러스 | 1,016쪽 | 55,000원

“십자가형은 ‘극도로 역겨운’ 처형 방식으로서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더 심한 것이었다.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인도 하에서 십자가형을 숙고하면, 가장 추악한 십자가 위의 죽음(mors turpissima crucis)을 통한,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상상할 수 없는 사랑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194쪽).”

고난주간, 성금요일이다. 저자는 교회에서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설교를 매년 연례 행사처럼 하다 보니, 어느새 십자가가 ‘거리끼고 미련한 것(고전 1:23)’이 되어버린 현상을 개탄하면서, “균형을 잡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회중이 마치 그리스도의 고난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듯 습관적으로 성금요일을 빠뜨린다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비게 된다”는 것이다.

성공회 사제인 저자는 1천 쪽 넘는 이 ‘벽돌책’을 2015년 내놓았고, 집필에 20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사역자이자 설교자로서 학자들과 회중들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목적에서 쓰여진 이 책에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교회에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성경과 전승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시도했다.

저자는 기독교의 중심 주장이 ‘희한하게도 비종교적’이라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다른 종교들의 그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영적 색조나 구속적인 종교적 특성이 없는 사건”이었다.

여기서 출발해야 하는 이유는, 그 사건으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십자가는 많은 여성들의 목걸이 펜던트가 되는 등 하나의 ‘거룩한 상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아무리 마음 아프게 묵상한다 해도, 그것이 “수치와 스캔들의 대상”이었음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1세기 로마 제국에서 사람들이 십자가형을 얼마나 불쾌하게 생각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상당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오래 전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의 죽음이 지금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렸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이 더 큰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그처럼 특이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죽을 필요가 있었는가?” 등의 질문에 다시 답하고 있다.

영화 부활 예수 십자가
▲영화 <부활> 중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청중들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 십자가형은 수치와 불명예의 고통을 수반했다. ⓒ네이버 영화
2천 년 전처럼 여전히 십자가를 거리끼고 어리석은 것처럼 여기려는 일부의 움직임에 대해, 저자는 이러한 여러 십자가 해석들을 포괄하는 심층적 해석을 시도한다. 전통적인 형벌대속론을 넘어, 십자가를 좀 더 폭넓게 해석하려는 신학자들의 제안을 모두 껴안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십자가는 부활의 전제이다. “십자가형은 기독교의 진정성을 가리는 시금석으로서, 부활을 포함한 모든 것에 참된 의미를 부여하는 독특한 특징이다. … 기독교 선포의 중심에 십자가가 없다면, 예수 이야기는 카리스마적인 영적 인물에 관한 또 하나의 이야기로 취급될 수 있다. … 십자가형에서 하나님의 본성이 참으로 밝혀진다(100-101쪽).”

저자는 예수의 십자가형이 지금껏 발생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부활이 역사적으로 십자가에 못박힌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를 초월한 긍정(Yes)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사에 심겼으나 역사를 초월하는 사건인 부활은 현재 우리의 삶에서 십자가의 모순과 수치를 제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활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그 길로서의 십자가를 승인한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처형은 기독교를 대부분의 종교가 갖고 있는 여러 형태의 영지주의와도 구분시켜 준다. 그리고 예수의 인성이나 신성 둘 중 하나를 부정하는 일부 신학계 또는 이단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내러티브이기도 하다.

그리고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내러티브에서 신체적 고통보다 수치와 불명예를 더 비중 있게 언급하고 있다. “체면 손상이 십자가형의 요체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형의 수치가 그것의 의미를 결정함에 있어 육체적 고통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계속 강조해야 한다.”

이후 3장 ‘정의 문제’, 4장 ‘죄의 중대성’ 등 저자는 십자가 처형에 담긴 거의 모든 신학적 이슈들을, 현대 문화와의 연관성 속에서 다루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식이다.

“비인간적 행위의 흉악성은 전염성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에 못박힌 분께 가해진 수치의 메아리가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과 십자가를 연결할 때, 이러한 처사가 많은 유대인에게 야기하는 분노를 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한다(161쪽).”

가룟 유다 자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중 배신한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찾아와 입맞추는 모습. 이 영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고통에 대부분 초점을 맞췄다.

십자가형 자체의 의미를 살핀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유월절과 출애굽, 피의 제사, 대속과 구속, 최후의 심판, 묵시적 전쟁, 지옥 강하, 대속, 재연 등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해석하기 위해 성경에 사용된 중요한 이미지와 주제들을 살피고 있다. 특히 130쪽에 이르며 별도 목차를 제시한 10장 ‘지옥 강하’는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다음은 저자의 결론. “풍부하고, 복잡하고, 깊이 있는 성경의 모든 이미지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이 완벽한 속죄제다. 포로를 해방시키기 위한 보석금이 지불된다. 지옥의 문들이 습격받는다. 홍해가 건너지고 원수가 익사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죄에 대해 집행되었다. 아담의 불순종이 그리스도의 순종에서 재연된다. 새 피조물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의 생명 안으로 통합된다. ‘이 악한 세대’의 왕국들은 사라지고, 약속된 하나님의 왕국이 승리주의자의 십자군에서가 아니라 교회의 십자가에 대한 증언에서 나타난다(971쪽).”

하나님의 의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것을 이루었고,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루고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완성시킬 것이다.

저자 플레밍 러틀리지(Fleming Rutledge)의 다른 저서로는 26년간 고난주간 설교를 모은 <예수가 선택한 길>이 지난해 출간된 바 있다. <예수와 십자가 처형>의 원서 제목은 ‘The Crucifixion: Understanding the Death of Jesus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