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영접’을 이해하려면 로마시대 법을 알아야 합니다. ‘영접’은 본래 로마의 새로운 황제가 부임할 때 백성들과 신하들이 황제를 군주로 ‘영접’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황제만이 오직 우리의 신입니다.” “황제(로마)의 법만 지키겠습니다. 거역하면 죽겠습니다.” “오직 황제에게만 충성하겠습니다.” 전도용어로 사용되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의 ‘영접’이 바로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겼던 백성들이 그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신입니다. 그동안 로마의 법만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하늘의 법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겠습니다. 그동안 황제에게만 충성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면서 살겠습니다.”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이 ‘영접’입니다. 즉 모든 생각과 삶을 바꾸는 것이 영접입니다. 전도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영접’처럼 말만 하는 립싱크와는 그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와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런 신앙으로 모두가 순교했습니다. 이것이 구원을 위한 영접이며, 믿음의 근본 교리입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로 시작되는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많은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경배의 탄성, 구하소서, 경사로다)를 부르며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당시 군중들은 로마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회복하기를 소원했습니다.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 나라를 회복시켜줄 메시야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주일날 입성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한 주간 동안 마지막 사역을 하십니다.

월요일: 성전을 정결케 하심,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 저주, 화요일: 각종 비유를 가르치시고 논쟁하심, 가룟 유다의 변심, 수요일: 기사가 없음, 목요일: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 기도, 금요일: 체포되어 대제사장과 로마 총독 앞에서 신문받으심, 골고다 십자가에서 죽으심, 무덤에 장사되심, 토요일: 무덤에 머물러 계심, 주일: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 예수님의 한 주간 사역은 성경 말씀을 성취하는 매우 중요한 것들입니다. 특히 성전 정화와 무화과 나무의 저주는 오고 오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예배가 무엇이며, 신앙의 삶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교회가 비즈니스 장이 되고 직장과 사업이 된다면 교회 정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말은 하면서 열매 없는 종교 생활에 익숙하다면 열매 없는 무화가 나무와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형제를 실족케 한다면 가룟 유다와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눅 17:2)? 신앙생활은 이 땅을 떠날 때까지 고난의 연속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10)”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고백한 바울처럼 필자는 그런 죄인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겸손해지고 내가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그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사랑의 깊이와 높이, 넓이를 깨달은 만큼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종려가지를 들고 입술로 호산나를 부르는 군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대속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면 로마 황제의 법을 버리고 죽으면 죽으리란 믿음으로 당당하게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런 믿음으로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살았습니다. 그런 초대교회 사역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있습니다. “이 바울이 에베소 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행 19:26)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결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의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사랑을 깨달은 만큼 소유하게 됩니다. 부활주일을 앞두고 초대교회 성도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했다면 그런 신앙생활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말만 하면서 삶의 열매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저주한 무화과 나무와 무엇이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7:13~29이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부활이란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꽃입니다. 옛 사람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세례(침례)’란 과거(옛 사람)를 청산하고 새 사람(천국 백성)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새 사람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입술로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 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에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입술로 위와 같이 고백했다고 거듭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믿음이란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부활주일의 그 깊이와 넒이, 높이의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그 은혜가 너무나 감격해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이 땅에 살 동안 예배도, 헌금도(십일조), 봉사도, 전도도, 너무나 감격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