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카이퍼 영역주권
▲아브라함 카이퍼.
영역주권(sphere sovereignty)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이다.

카이퍼 박사는 네덜란드의 개혁파 목사, 신학자(칼빈주의 3대 신학자), 교육가(자유대학교 설립), 정치가(네덜란드 수상 역임, 1901-1905)였다. 영역주권과 신칼빈주의(Neo-Calvinism)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지목한다.

네덜란드어 ‘Sovereiniteit in eigen kring’에 대한 영어 직역은 ‘Sovereignty in its own sphere’이다.

‘영역주권’은 카이퍼 박사가 1880년 자유대학교 설립 당시 연설한 원고에서 나왔다. 그는 ‘Sovereignty in its own sphere’을 “모든 것은 하나님께 주권이 있으며 이 땅 어느 한 곳이라도 그리스도께서 당신 것이라고 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상이라고 제시한다.

혹자는 “각각의 영역들이 그것만의 고유한 혹은 분리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 안에서 각 문화 영역은 각각의 고유한 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 각각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고 제시하기도 한다.

네덜란드어 kring은 원(圓)이고, sphere는 구(球)의 의미가 있다. eigen은 ‘자기의, 고유의’라는 뜻이다. ‘고유한 원’ 안에 있는 ‘통치권 혹은 자주권’이라고 할 수 있다. 영역주권은 구체적인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영역(營域)은 단순한 면적, 지역을 의미한다(field, area, domain).

영역주권을 직업 분야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의 내용에 비춰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1898년 미 프린스턴 대학에서 행한 칼빈주의에 관한 스톤 강좌(Stone Lectures)).

사회 모든 분야에 하나님의 주권이 실현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유대학을 설립한 시작점에서 했던 강연은 매우 강력한 동기부여였을 것이다. 그 동기부여는 연설을 들었던 사람들과 학생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즉 “너희들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확보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너희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영역(원)을 만들어, 너희의 영역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현되도록 하라”고 연설했다고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법에 맞지 않는 세상의 법을 보호할 수 있는 우리의 영역을 세상에서 확보하고,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법이 온전하게 실현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영역주권은 국가 주권에 대항해 자신을 방어합니다(36쪽).”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
카이퍼 박사는 자유대학(Vrije Universiteit Amsterdam, Free Univ)을 설립했는데, 자유(自由)는 국가로부터의 자유이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세속 질서가 아닌 그리스도의 법이 지배하고 실현되는 공동체를 이 땅 위에 실현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 카이퍼는 네덜란드 수상까지 역임하며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가치를 실현한 사람은 존 칼빈과 존 낙스이다. 칼빈이 사역한 지역인 칸톤 제네바는 그리스도의 법이 완전하게 실현되도록 한 유일한 경우였다. 존 낙스는 칼빈에게 배움을 받고, 스코틀랜드 왕국에 개혁된 사상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했다.

카이퍼 박사는 ‘영역주권’이 자유대학 설립의 열망이라고 밝혔다(57쪽). 카이퍼 박사는 영역주권의 성경적 관련성에 대해 “주님의 입술로부터 들음”을 제시하며, 학문 영역에서 중립을 취하지 말고 경건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세워 확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위해 객관적으로 성경무오성, 주관적으로 성령의 내적 사역을 의지하도록 제언했다(64쪽). 이것은 독일의 에타 린네만의 대학 이해와 유사하다(린네만, <성경비평학은 과학인가 의견인가>, 송다니엘 번역, 부흥과개혁사).

카이퍼 박사에게 진취적인 기상이 있었다면, 린네만에게는 섬세하고 순수한 정신이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세운 자유대학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카이퍼 박사의 ‘영역주권’에 대한 정신과 감동이 지금 자유대학에 있을까? 왜 이 복된 가치를 포기하고 외면할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교회 역사에서 절대로 예외가 없는 현상이다.

우리도 기독교 교육 기관을 상상한다. 교회사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교육기관을 상상한다. 거기에 에타 린네만의 성경 해석 능력에 근거한 순수한 기독교 정신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적극적인 성향이 있으면 좋겠다.

‘영역주권’, 대학이라는 교육 기관에서 훈련받은 유능한 인재들이 사회에서 활동할 방향성에 대한 담론이다. 자유대학에서 인재를 양육할 방향성에 대한 선언이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역행하는 세속화된 사회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할까?

카이퍼 박사는 거룩한 생활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 분야에서 자기 영역을 확보하라고 외쳤다고 평가하고 싶다. 거센 세속화의 파도에 함몰되지 않을 영역을 구축하고 자기 영역 안에서 쉼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도록 훈련시키겠다는 것이다.

조덕영 박사는 자유대학의 헤르만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 1894-1977)가 영역주권 사상을 포괄적인 개념으로 세계관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신칼빈주의는 칼빈주의를 계승하고 있다. 칼빈주의는 기독교 사회에서 기독교 사회를 이루려는 개혁이었고, 신칼빈주의는 세속화되는 기독교 사회에서 기독교 사회를 이루려는 회복 운동이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매우 위협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영역주권’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겠다. 포괄적이나 단순한 세계관 운동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 속에서 자기 영역을 구축하여 ‘거룩한 거점(문화 운동)’을 확보하도록 촉구한 것이다.

신칼빈주의는 기독교 영향력이 사라지는 유럽 사회에서 기독교 사회를 회복시키려는 운동으로 평가하고 싶다. 바빙크 박사는 문화 운동(세계관 운동)보다 ‘성도의 영혼(거룩한 영혼)’에 더 집중한 것으로 사료된다.

고경태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광주 주님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