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얼마 전 102세 된 한 전 교수님이 TV에 출연해 “미래를 내다보는 교육”이란 제목으로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태어나서 30살까지는 교육받는 시기, 30살에서 60세까지는 일하는 시기, 그리고 60세 이후부터는 사회에 기여하는 시기”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60세 이후는 사회에 기여하는 시기”란 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자는 “어르신 한 사람은 인생의 박물관입니다”란 말로 대담 프로를 마무리했습니다.

이 땅에서 살 동안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먼저 성격을 바꿔야 합니다. 잘못된 성격(습관)을 바꾸면 삶의 질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행복은 하늘에서 공짜로 내려오는 선물이 아닙니다. 먼저 가족과 이웃을 행복하게 하면 내가 행복합니다. 행복으로 친구를 사귀면 좋은 벗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절대 타인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모든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 종류의 신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와 같은 신앙, 청년과 같은 신앙, 아비와 같은 신앙(요일 2:12~15), 예수님은 마음이 길가와 같은 신자, 바위와 같은 신자, 가시떨기와 같은 신자, 좋은 땅과 같은 신자(마 13:3~8; 막 4:3~8; 눅 8:5~9)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평생 동안 어린아이와 같이 신앙생활하는 신자들도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이방종교인들처럼 늘 달라고 요구하는 신앙입니다. 그런 분들의 기도를 듣게 되면 “주시옵소서! 주실 줄 믿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런 분들은 좋은 땅과 같은 신앙생활이 무엇인가를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한 분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고 하셨습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행위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하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2)” 부모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의식주는 물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평생 동안 노력합니다. 하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행복을 원하십니까? 삶의 우선순위를 먼저 바꿔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는 것이 이웃은 물론 내가 행복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행복)을 이 땅에서 누리게 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신학생 시절 선배들에게 이런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담임목사와 교수가 되고, 졸업할 때가 되면 장로가 되고, 졸업 후 교회를 담임하면 집사가 되고, 은퇴쯤 되면 평신도가 된다고 합니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게 되고 겸손해 진다는 비유로 필자는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성품과 기질처럼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 땅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생쯤 된 자녀들을 부모가 교육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무슨 말을 하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간섭한다고 불신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들이 언제쯤 인생을 깨닫게 됩니까? 자신과 똑같은 자녀를 낳아서 키워보면 알게 되겠죠! 그래서 생긴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 결혼해서 너와 똑 같은 자녀를 낳아서 한번 키워 봐라!” 신앙생활도 동일합니다. 선배나 목회자가 바른 진리를 알려주면 잘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판단하고 헤아리게 됩니다. 생선의 뼈를 발라 먹듯이 마음에 들면 아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부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불신이 쌓이게 되고 결국관계가 무너지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여기저기 교회를 옮겨 다니며 남을 헤아리고, 판단하다 자신의 신앙은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4가지 성품과 마음의 밭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 13:3~8; 막 4:3~8; 눅 8:5~9).

모든 목회자들은 청년과 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신자들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결론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은 역사를 바꾼다”란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명에 살고 사명에 죽는다고 합니다. 그 사명은 복음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어린아이와 청년들과 같은 신앙의 인격으로는 제자를 삼을 수 없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102세 된 교수님이 주장한 “60세 이후 사회에 기여하는 시기”란 말을 필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내 한 사람의 희생으로 가족과 이웃을 행복하게 하고 제자들에게 사랑과 믿음으로 삶에 본을 보이는 것이 참 진리를 깨달은 성숙한 아비의 신앙입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