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 육상 릴레이 배턴 터치 올림픽 경기 바톤
▲인생이라는 경주, 릴레이로 달리면 훨씬 수월하다. ⓒ픽사베이
본문: 출애굽기 2장 1-10절


몽골 제국이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이유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는 몽골 제국입니다. 몽골 제국은 중국은 물론 독일, 헝가리를 비롯한 유라시아와 고려를 정복했습니다.

그들이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넓은 영토를 점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말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타는 기술이 탁월했습니다. 몽골인은 넓은 지역을 말을 타고 유목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세 살만 되면 말 타는 것부터 배운다고 합니다.

몽골인들은 전쟁할 때 말을 타고 속도전을 벌였습니다. 서양인은 말을 타면 한 마리의 말을 계속 타지만, 몽골인은 말이 지치면 말을 바꿔 타고 싸웠습니다.

정보를 전할 때도, 곳곳에 말을 바꿔 탈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말이 지치면 다른 새 말을 타고 달려 적국보다 소식을 빠르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말을 바꿔 탄다는 것은 말과 말의 바톤 터치입니다. 지친 말과 힘이 있는 말이 서로 역할을 바꾸면 한 마리의 말이 달리는 것보다 더 빨리 멀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몽골 제국은 말의 바톤 터치로 속도전과 정보전에서 상대보다 앞섰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릴레이 인생 & 마라톤 인생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경주를 할 때 혼자 계속 달리는 사람이 있고 바톤 터치를 해가며 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혼자 달리는 사람은 ‘마라톤 인생’이라고 할 수 있고 바톤 터치를 해가며 달리는 사람은 ‘릴레이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라톤 인생은 힘이 듭니다. 외롭습니다. 지칩니다. 결국 쓰러지고 맙니다. 마라톤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기원전 490년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전하기 필립피데스가 마라톤 평원을 지나 아테네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는 약 4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렸고 승전소식을 전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경기가 바로 마라톤 경기입니다.

혼자 힘으로 인생을 뛰려고 하지 마십시오. 통계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40-50대 급사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라톤 인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혼자 뛰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해결하고 혼자 성공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바톤 터치가 삶의 지혜다

혼자 뛰는 인생, 너무 힘듭니다. 고달픕니다. 보는 사람도 힘듭니다. 우리는 마라톤 인생으로 살지 말고 바톤 터치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바톤 터치는 중간 중간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입니다. 400미터 계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목표는 400미터이지만 혼자 400미터를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100미터씩을 뜁니다. 4명이 100미터씩 자기가 맡은 구간만 책임지면 됩니다.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자기 역할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마지막 주자가 1등으로 들어오면 모두가 승리합니다. 모두에게 금메달이 주어집니다. 마라톤 인생을 사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혼자 뛰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나눠서 일해야 하고 상생해야 해야 합니다. 바톤 터치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모세는 아름다운 아이였다

모세가 태어난 때는 절망의 시대였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의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바로 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자를 낳으면 살려주고 남자를 낳으면 나일 강에 던져라.’

그 명령이 시행되고 있을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의 아버지는 아므람이고 어머니는 요게벳입니다. 그들은 딸을 원했지만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았지만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을 나일 강에 던져 넣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외모가 준수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7장 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이 말씀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가 모세 가운데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보여 졌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히브리서 11장 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모세의 부모는 믿음의 눈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눈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에게서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자녀들을 바라볼 때, 믿음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바라보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게벳은 믿음의 눈으로 모세를 바라보았고 믿음으로 어린 모세를 석 달 동안 키웠습니다.

이제 더 이상 키울 수 없습니다. 아이가 100일 지나면 울음소리가 커지게 됩니다. 들키면 바로의 명을 어겼기 때문에, 모세는 물론 자기들의 목숨도 끝이 나고 맙니다. 이제 요게벳은 울음을 삼키며 갈대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갈대상자는 믿음의 바톤 터치다

갈대상자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믿음의 바톤 터치입니다. 요게벳은 이제 자신의 손에 있는 바톤을 하나님의 손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키울 수 없는 모세를 이제 하나님의 손에 옮겨드렸습니다.

갈대상자는 노아의 방주와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방향키가 없습니다. 돛도 없고 닻도 없고 배를 젓는 노도 없습니다. 방주 안에 노아의 가족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 방주가 움직일 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 따라 그냥 흘러가야 했습니다. 아기 모세가 탄 갈대상자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기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요게벳이 할 수 있는 것도 이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곧 요게벳이 갈대상자를 만들어 나일 강가에 두었다는 것은 이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요게벳이 아기 모세가 든 갈대상자를 나일 강에 두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눈물로 기도했지 않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이때까지 제가 최선을 다해서 키웠으나 이제 더 이상 제가 키울 수 없습니다. 이 아이의 목숨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부탁합니다. 이 아이를 책임져 주십시오.”

믿음으로 바톤 터치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바톤 터치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인생의 절벽을 만났을 때입니다. 길이 없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번 아웃’ 되었을 때입니다. 자녀를 위해 뒷바라지했지만 이제 힘에 부치고 아무것도 해줄 것 없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이 때가 바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바톤 터치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바톤 터치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를 품 속의 자녀로 두시 마시고, 그 자녀를 하나님께 맡겨 드리십시오. 내 품 안의 자녀로 두고 자녀를 놓지 못하면 고통이 따라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야곱은 열두 아들 중에 요셉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요셉에게만 좋은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명품 옷을 입힌 것입니다. 형들에게는 목축 일을 시켜도 요셉에게는 시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형들이 시기해서 요셉을 죽이려다 노예로 팔았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잡아먹혔다는 얘기를 듣고 죽음과 같은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계속 아들을 품에 끼고 있으니,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 바톤 터치를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자녀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자녀의 앞길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가 자녀 인생을 책임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책임져 주실 수 있습니다.

남편 때문에 괴롭고 힘들 때, 아내 때문에 괴롭고 힘들 때, 믿음으로 하나님께 바톤 터치할 때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분이나 사업하는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손에 잡히는 것이 없습니까?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뛰었는데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달릴 수 있는 구간은 다 달렸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손에 넘겨 드리십시오. 믿음의 바톤 터치를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바톤 터치를 하면, 길이 끝나는 곳에 새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절벽이고 길이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만드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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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95km를 홀로 달려야 하는 마라톤. ⓒ픽사베이
이낙연 대표가 예수 믿게 된 이유

더불어민주당 대표인 이낙연 총리는 교회 집사님입니다. 그가 예수를 믿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뇌종양에 걸려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숨이 걸린 수술이었습니다. 장모님이 예수 믿는 사람이었는데, 교회 목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성도도 10명 정도 같이 왔습니다.

수술을 하는 동안 목사님과 성도들이 수술실 문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보면서 그때 심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참담했습니다. 기도를 모르는 내가 비참했습니다. 아비이기 이전에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절대자에게 간구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 총리의 아들은 기적적으로 완치되었습니다.

그 후 아들과 아버지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아들은 공대에서 의학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해 의사가 되었고, 자신은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몇 번이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믿음으로 바톤 터치를 해보십시오.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새 길을 여십니다.

바톤 터치는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믿음으로 바톤 터치를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납니다. 시너지 효과란 1+1=2가 아니라, 1+1이 백, 천, 만이 되는 것입니다.

요게벳은 갈대상자에 아기 모세를 넣고 나일 강 갈대 옆에 두었습니다. 요게벳은 이제 아들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게벳이 모세의 유모가 되어 합법적으로 안전하게 자기 아들을 젖먹이며 기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자기 자식을 젖 먹이는데도 삯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게벳은 모세를 세 살까지 젖을 먹이고 바로의 공주에게 데려가니 그녀가 모세를 아들로 입양했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가 됐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애굽의 최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주관하셔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모세의 인생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바톤 터치를 하면 일어나는 시너지 효과입니다.

만일 요게벳이 끝까지 모세를 품에 안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기 모세를 살렸다 할지라도 노예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에 나타난 바톤 터치

사복음서에 유일하게 다 기록되어 있는 기적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왜 사복음서 기자가 오병이어 기적만큼은 다 기록한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 그렇게 기록하게 만드신 것일까요? 그 만큼 중요한 기적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만 오천명을 먹였습니다. 먹고 남은 떡을 거두었을 때, 열두 광주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한 소년이 자신의 도시락을 예수님의 손에 바톤 터치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소년의 손에 있었다면 정말 그 아이의 한 끼 도시락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손으로 옮겨졌을 때 남자만 오천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시너지 효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믿음의 바톤 터치를 해보십시오. 이런 인생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속으로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목사님, 저는 요게벳같이 믿음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대로 내 고집대로 살았습니다. 그래도 믿음으로 바톤 터치하면 인생이 달라질까요? 지금과 다르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부터라도 믿음으로 바톤 터치를 하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무한대다

지금 동네 운동회에서 400미터 릴레이 달리기를 한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옆 사람 발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앞을 보니 다른 사람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내가 바톤을 넘겨줘야 할 사람이 우사인 볼트처럼 빨리 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포기하겠습니까? 내가 인생길을 달려가는 동안 실패했습니다. 죄악의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내 다음 주자가 예수님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나의 다음 주자라면 포기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나의 실패와 상관없이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요. 마귀에 대한 승리입니다.

최후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경주라면 넘어져도 실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숨만 쉬고 사람과 환경을 원망하며 그 자리에 앉아 울고만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나의 앞에서 손을 내밀고 바톤 터치를 바라는 주님을 바라본다면 일어나서 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안에는 패배자가 없습니다. 모두 승리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릴레이 경주에서 최종 주자가 일등하면 모두가 일등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중간에 넘어져 삼등으로 뛰었든, 꼴찌로 뛰었든 상관없습니다. 최종적으로 골인한 사람이 우승이면 모두가 우승입니다.

예수님의 우승이 우리의 우승입니다. 이것이 시너지 효과입니다. 무한대에는 무엇을 더하든 무한대입니다. 무한대는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비록 0과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무한대이신 예수님에게 바톤 터치를 하면 무한대의 시너지 효과가 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합력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르네게오’라고 합니다. 이‘스르네게오’에서 시너지라는 영어 단어가 나왔습니다. 결국 합력할 때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쓰레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쓰레기 소각장에 가면 각종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를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나의 죄나 실패나 고통이 때로 내 인생의 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바톤 터치를 하면, 그 모든 죄나 실패나 고통을 결국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바톤 터치를 하지 않고 사는 인생은 참 힘든 인생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혼자 모든 일을 다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벌새 & 알바트로스

벌새가 있습니다. 벌새는 길이가 6센티미터인데, 1초에 50회 내지 70회 정도 정신없이 날갯짓을 합니다. 이것은 고속 카메라로 찍어도 잘 잡아내지 못할 속도입니다. 그렇게 죽어라 날갯짓을 하다가 4년 만에 죽습니다.

이에 반해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크기는 90센티미터인데, 날개를 펴면 3.5미터 정도 됩니다. 이 새는 폭풍을 좋아합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그 바람을 타고 날아오릅니다.

이 새는 나는 것의 90%에 바람의 힘을 이용합니다. 날갯짓은 고작 1% 미만입니다.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날고 멀리 날고 오래 납니다.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우아한 자태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 새를 ‘신천옹’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하늘을 믿고 나는 노인’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인은 알바트로스같이 사는 존재입니다. 바람에 몸을 맡기듯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믿음의 바톤 터치로 인생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우리의 인생이 힘들고 고달프고 어려운 것은, 벌새와 같이 자기 힘으로 아등바등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맡기면, 쉽고 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 내 인생의 바톤을 넘기면 현재도 미래도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손에 쥐고 있는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옮겨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갈대상자를 강물에 흘러 보내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께 바톤 터치를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답이 없는 인생에 답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놀랍게 만드실 것입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는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감사인생(공저)’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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