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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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3장 8절

본문은 영적인 출생에 관한 것입니다. 영적인 출생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원리입니다. 니고데모는 그 원리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시 바람의 속성을 들어 성령의 역동성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분명히 있지만, 바람을 쉽게 알 수 없습니다. 성령도 이와 비슷하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하면서 우리는 ‘바람의 신비와 성령’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8절)”.

1. 먼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바람의 속성을 들어 성령의 역동성을 설명합니다. “바람을 쉽게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원리입니다. “성령의 역동성이 바람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바람과 성령은 원어로 동일한 ‘프뉴마’입니다. 우리말에 “눈(目)에 눈(雪)이 들어가서 눈물이 난다”는 방식입니다. “배(船) 위에서 배(梨)를 많이 먹어서 배(腹)에 탈이 났다”는 방식입니다.

눈은 감각계에서 시각을 담당합니다. 시각이 감각정보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시각은 어두워지면,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말이 안 됩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합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바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이 존재합니다. 성령의 역동성이 존재합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주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태어난 주님에게 소속하고 주님에게 연결되어 살아갑니다.

2. 알 수 없다고 해도 존재한다
바람을 알 수 없다고 해도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입니다. “바람은 알 수 없다”고 해도 존재합니다.

현대의 기상학을 다 동원해도 바람의 향방을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바람과 같이 성령의 역동성이 그렇습니다. 이는 “알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주입니다. 우주(宇宙, space)는 무한한 시간과 온갖 사물을 포괄하는 공간입니다. 우주에 대해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우주와 태양계를 알아보려고 달에 탐사선을 보냅니다.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면서, 수백 년 동안이나 연구해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주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주에 대해서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역동성이 꼭 그렇다”입니다. 지금은 모르기 때문에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는가?”하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석학이 지금 초등학생이 들어도 웃을 만한 우매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경험하게 되면, 성령의 역동성을 인정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3. 누구나 경험할 수 있게 존재한다
바람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게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바람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게 존재합니다. 바람을 경험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바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람의 존재는 가만히 있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람을 경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더 많이 느끼고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는 보편성입니다. 바람의 보편적 존재방식입니다. 바람을 통한 보편적인 계시의 신비성입니다.

계시란 “감추어진 비밀을 열어서 나타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편적 계시의 신비성이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열려져 있는 계시”라는 사실입니다.

마치 우주의 태양계가 존재하는 것이 꼭 그렇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는 우주의 어디쯤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은 “지구인의 99%는 죽는 날까지 자신이 우주의 어디쯤에 있는지를 끝내 알지 못하고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우주의 신비’라고 말하듯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신비일 뿐이다”는 교훈입니다.

김충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에서 만난 김충렬 박사.
4. 정리

군대에서는 명령을 받은 군인은 복종해야 합니다. 군대는 명령의 조직체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불면 노련한 뱃사공은 배의 돛을 올립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에 귀를 기울이고 살아갑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성령을 믿게 하소서. 알 수 없지만, 존재하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그리고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이 되어 성령과 함께 동행하게 하소서. 성령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