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청춘이 지나가버렸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훨씬 뒤의 일임을 깨닫는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다
좋은 포도주처럼 익는 것이다
익는 것은 「네 인생의 이야기」처럼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다

하나님도 우리 일상에서 소설 같은 전개를 하실 때가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 김상훈 역 | 엘리 | 428쪽 | 16,000원

지난해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로 단숨에 주목받은 이정일 교수님이 2021년 ‘책 읽는 그리스도인’으로 격주마다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 책은 크리스천투데이 ‘올해의 책’에 선정됐습니다. 이정일 교수님은 신앙과 묵상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인문학 책을 중요한 인용과 함께 소개하며, 부드럽지만 깊이 있게 생각할 부분들을 정리해 주실 것입니다. 교수님의 안내에 따라, 2021년 우리 함께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어 ‘책 읽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편집자 주

작가는 왜 쓸까

찰스 디킨스는 소설 『위대한 유산』에서 이런 상상을 한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작가는 그 인생 행로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본다.

또 우리 역시 의사가 되어 자신이 죽는 건지 묻는 어린 환자를 만난다고 가정해본다. 그럼 나는 어린 환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문학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테드 창(Ted Chiang)의 중편 「네 인생의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작품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되어 있다. 테드 창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여기엔 바벨탑을 쌓은 바빌론 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빌론의 탑」, 종교적 기적이 일상화된 세계를 다룬 「지옥은 신의 부재」를 비롯해서 총 8편이 수록되어 있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표제작이다.

영화 컨택트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컨택트> 중 한 장면.

테드 창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SF 작가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2004)와 『숨』(2019)이란 두 권의 소설집은 시차를 두고 발간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인 작가이다.

테드 창은 단편만을 쓴다. 방대한 시리즈 소설을 쓰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나 아서 클라크(Arthur Clarke)와 다르지만, 그만의 독특한 발상이 있다.

테드 창은 십대 초반에 아시모프와 클라크의 책을 읽었다. 대학에 들어가선 진 울프(Gene Wolfe)와 존 크롤리(John Crowley)의 소설들을 읽으며, SF가 가진 문학적 서사적 잠재력에 눈을 떴다.

찰스 디킨스나 테드 창 같은 작가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낸다. 그를 보면 문학은 여전히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알게 된다.

한국에선 일주일 사이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지난주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비리가 드러나고, 10년간 무명이던 걸그룹 브레이브걸스가 알고리즘을 타고 역주행을 했다. 메인 보컬 민영이 말하듯 “내가 믿고 있는 게 맞는 걸까”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문학은 다양한 선택의 기회 속에서, 주인공은 왜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 들여다본다.

어른들 모두 처음에는 어린애였다. 그러나 대부분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린왕자』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작가는 우리가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상기시킨다. 만약 그게 가능하지 않더라도, 이 세계에 잠시나마 사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를 보여준다. 모든 문학은 ‘경이로움’에서 시작된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그걸 말한다.

영화 컨택트
▲영화 <컨택트> 중 한 장면.

줄거리

외계의 지적 생명체가 지구에 도착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외계인들은 지구 곳곳에 체경(looking glass)을 설치하였다. 이 체경은 쌍방형 통신장치로서 전 세계에는 112개가 있고 미국에는 9개가 있다.

외계인의 출현으로 혼란이 있었다. 그 혼란의 원인은 이들의 방문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외계인은 헵타포드(heptapod)로 불린다. 헵타는 그리스어로 숫자 7을 뜻하고, 포드는 다리를 뜻한다. 외견상으로 외계인들은 네 다리를 써서 걷고 있었고, 다른 세 개는 팔처럼 옆에 달려 있었다.

루이스라는 언어학자가 햅타포드가 쓰는 언어를 배우게 된다. 그러자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게 된다. 작가는 미래를 본다는 게 뭘까, 란 질문을 던진다.

헵타포드의 시간

소설이나 영화 모두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는 것은 외계인이다. 외모도 특이하지만, 더 특이한 것은 시간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시간을 순차적으로 이해한다. 아침이 지나야 점심이 되고, 점심이 지나야 저녁이 온다. 하지만 헵타포드는 시간을 통합적으로 인식한다. 소설에선 이렇게 말한다.

“빛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선택하기도 전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결정해야 한다(187쪽).”

헵타포드의 시간을 설명할 때 원작 소설에는 ‘페르마의 원리(Fermat’s principle)’가 나온다.

페르마의 원리

빛은 속성상 반사할 때 최단시간이 걸리는 경로를 선택한다는 게 페르마의 원리이다. 이 원리는 영화(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는 영화 <컨택트>의 원작이다- 편집자 주)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것은 인간과 헵타포드의 차이를 보여준다.

위 도표에서 빛은 A란 지점에서 출발하여 B라는 지점으로 간다. 헌데 빛은 중간에 물을 만나면서 굴절이 된다. 그렇다면 점선으로 된 두 선은 어떨까?

점선으로 된 두 경로의 경우 빛이 지나가는 경로가 짧다. 하지만 빛이 물속에 들어가면 공기 속에 있을 때보다 천천히 움직인다. 그리고 이 경로는 더 길어서, 시간이 더 걸린다. 결국 진한 선이 보여주는 대로 경로로 갈 때 최단시간이 걸린다. 최단시간이란 경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빛이 물을 만나 굴절을 하고, 결국 각도가 꺾이면서 목적지에 도달한다. 인간은 인과적인 시각으로 해석을 한다. 하지만 최단시간으로 가는 경로는 이미 정해져 있다.

목적론적 의식체계를 가진 헵타포드는 이미 정해진 경로로 간다. 이들은 말을 시작하는 순간 이미 대화의 끝이란 미래를 알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영화 컨택트
▲영화 <컨택트> 중 한 장면.

만일 우리가 미래를 안다면

만일 우리가 미래를 미리 안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단 1분만이라도 미리 안다면, 사업이나 로또 대박이 나는 건 일도 아니다. 작가는 ‘만일 우리가 미래를 안다면 그게 뭘까’란 생각을 갖고 우리의 삶을 들여다본다. 헵타포드가 살아가는 시각으로 바라본 인생은 다르게 보인다.

헵타포드들은 현재에 존재하지만,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본다.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의 경우를 예로 들면, 결혼 전에 자기에게 딸이 생기고 또 그 딸이 젊은 시절에 암벽을 오르다 추락사하는 걸 미리 안다. 그것을 미리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헌데 헵타포드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헵타포드와 인간의 차이를 설명해본다면, 인간은 결론을 정하지 않은 채 서론에서 천천히 결론으로 나아간다. 반면 헵타포드는 서론을 쓰는 순간 결론까지 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 인간에겐 B라는 목적지가 없지만 헵타포드에게는 있다. 인간에게 미래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헵타포드는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본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에 현재를 살아간다. 그래서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게 잘 와 닿지 않는다. 우리라면 과거로 돌아가서 뭔가를 바꾸어서 현재의 상황을 바꿀 것이다. 아니면 미래를 미리 보고 와서 현재의 나를 바꾸려고 할 것이다. 헌데 헵타포드는 정해진 미래를 받아들인다. 미래는 바꾸는 대상이 아니라 잘 이행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미래가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음에도 개입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우리에겐 낯설게 느껴진다. 헵타포드와 인간 모두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이 가진 시간 개념과 다른 헵타포드의 시간개념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살아볼 기회를 준다. 이것이 「네 인생의 이야기」이다.

영화 컨택트
▲영화 <컨택트> 중 한 장면.

영화 컨택트

「콘택트」(1997)란 이름으로 개봉된 영화가 있다. 배우 조디 포스터가 주인공이다. 천체 물리학자가 사막의 관측소에서 우주로부터 오는 단파 신호를 수신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컨택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랑 헷갈릴 수 있다. 제목은 같지만, 「컨택트」는 테드 창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이야기이다. 원작은 「Arrival」(2016)이다.

영화랑 소설의 설정은 다소 다르다. 아무래도 시각적인 영상 이미지가 중요하기에, 우주선도 럭비공처럼 형상화되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헵타포드의 문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소설에선 그것이 분명하지 않지만, 영화에선 그것을 먹물을 뿌리는 듯한 원형으로 만들었다. 어떤 문법적인 규칙 같은 게 없이, 무질서하게 흩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헵타포드의 문자에는 앞뒤 방향이 없다. 따라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생각도 그런 식으로 할까?” 헵타포드의 문자는 동그라미다. 사람이 동그라미를 그린다면 어느 한 지점에서 시작해서 다시 그 지점으로 오도록 그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다.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선이 동시에 원을 완성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루이스는 외계인들이 지구를 찾아온 목적을 밝히기 위한 작전에 투입된다. 그녀는 물리학자인 이언(소설에선 게리)과 함께 그 답을 찾지만, 끝내 밝혀내진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답은 그들의 언어 속에 있지 않을까 싶다. 헵타포드는 언어를 통해 지구인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헵타포드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인식한다. 말을 하는 순간 그 말의 끝을 알고 있다. 이런 헵타포드 언어를 제대로 익힌다면, 시간도 그들의 방식대로 인식하게 된다.

루이스는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알게 된다. 그럼으로써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헵타포드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인류를 돕는다. 3천 년 뒤 인류의 도움이 필요하다.”

영화 컨택트
▲영화 <컨택트> 포스터.

헵타포드의 말이다. 실제로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말을 배운 덕분에 미래에 닥칠 전쟁을 알게 된다. 이를 미리 막아냄으로써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루이스 자신에게도 일어난다. 루이스는 자신의 딸 한나가 젊은 나이에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되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모든 미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영화는 루이스의 이런 고백으로 끝이 난다.

“앞으로 일어날 그 모든 일을,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인단다.”

루이스는 앞으로 자신의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고 있었다. 딸의 때 이른 죽음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막지 않는다. 담담히 받아들인다.

영화에선 ‘사용하는 언어가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의 강한 해석을 받아들인다. 영향을 끼친다는 약한 해석과 달리, 강한 해석은 언어학계에선 틀린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강한 해석이 틀렸다 해도, 우리의 삶에도 헵타포드 식 사고는 존재한다. 헵타포드에게 미래는 정해진 일이다. 그 일이 우리에게는 죽음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죽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죽는다는 사실엔 변화가 없다. 그래서 죽음은 바꿔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이행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잘 사는 게 잘 죽는 것이란 역설이 가능해진다.

영화 컨택트
▲영화 <컨택트> 중 한 장면.

SF를 읽어야 하는 이유

“마지막 핵 전쟁 뒤 지구는 죽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고 아무것도 살지 않았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 방 안에 혼자 있었다. 그때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이것은 미국작가 프레드릭 브라운(Fredric Brown)이 쓴 가장 짧은 SF 작품이지만 이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시선이 엄청나게 확장된다.

나와 너, 나와 지구에 머물던 시선이 태양계 밖으로 뻗어간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우리가 겪는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이 난제인 것은 시야가 좁아진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시선만 조금 확장시켜도 해결 가능한 것들이다. 문학을 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달라진다. 시선이 바뀐다. 시선이 바뀌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송곳』에선 이렇게 말한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다들 자기 눈앞에 보이는 보자기만한 시간을 현재라고 여긴다. 헌데 어떤 사람은 조선 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로 받아들인다. 시간을 읽는 눈이 유연해진 것이다. 현재를 읽는 눈이 달라지자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이정일
▲이정일 목사. ⓒ크투 DB

이정일 교수
미국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를 받았다. 신학을 하기 전엔 영문학을 공부해 문학박사를 받았다. 박사 후 뉴욕주립대 영문과에서 미국 현대시를, 세계문학연구소에서 제3세계 작가들을 연구했다. 대학에서 세계문학과 영어를 가르치며 전방 포병대대 교회에서 군(軍)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