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본철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
성경 말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1-4)

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곧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입니다.

본문 1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 대한 어떤 원어 사본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 즉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고 있는 자”라고 부가적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고 있는 자는 결코 정죄 받을 일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여기서 표현된 ‘정죄’란 미래 심판 날의 정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양심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현재적 정죄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in Christ)에 있다고 하는 것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 즉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들이 왜 정죄 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이렇게 행하고 있는 자는 죄와 사망의 법인 율법과 육신의 멍에로부터 벗어나 생명의 성령의 법을 섬기며 살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기 때문입니다(2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삶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힘으로는 이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의지하는 삶을 끝장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함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수준을 얻게 하셨습니다(3-4절).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는 길입니다.

2. 육신을 좇는 자와 성령께서 거하는 자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먼저 육신을 좇는 자를 살펴봅시다;

 육신을 좇는 자는 언제나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5절). 그리고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모든 일을 생각합니다. 성령의 일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생활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 이러한 육신의 생각은 영적인 사망의 상태입니다(6절).
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해 죽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7절).
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느끼지 못하고 두려운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강합니다. 육신의 생각에 머물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7절).
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할 수 없습니다(8절).
그러면 성령께서 거하시는 자는 어떻게 구별될까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여기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은 모두 다 성령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는 영혼 속에 하나님의 영, 즉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육신을 좇는 삶에서는 벗어난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섬기는 삶을 충실히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욕망과 생각과는 이젠 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새로운 삶의 방식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는 결코 중단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의 몸은 죄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나, 이들의 영은 그리스도와 함께 의를 향하여 산 것입니다(10절). 미래에 있을 몸의 부활 역시 성령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질 것입니다(11절).

3. 성령충만한 자에게는 영광스러운 승리와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영적 생활의 최고 목표는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삶(Spirit-controlled life)입니다. 성령께서 주장하시는 삶은 육신을 좇아 육신에게 복종하며 사는 삶이 아닙니다(12절).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면 육신의 욕구와 행실을 무능화(無能化)시킬 수 있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이렇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성령께서는 우리 영 또는 우리 양심과 함께 확증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4-16)

그런가 하면 성령충만한 자의 삶은 이제 옛사람의 가치관과 욕구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성령 받은 자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구현하려 하십니다. 그러나 그 길은 넓고 편한 길이 아닙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주님 가신 십자가 고난의 길이 성령충만한 자의 당연히 나아갈 고난의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또한 상속자요, 상속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은 오히려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 어려운 용어 풀이: 그리스도 안

그리스도 안(in Christ)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스러운 교제’라는 주장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또한 in Christ는 ‘교회 안에’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를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개인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후자는 집합적인 의미에서 사용되었다고 봄이 좋을 것입니다. 이처럼 신비주의적 관점에서의 in Christ는 그리스도의 영이 새로운 능력과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 가운데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참고로 볼 때, 신비주의는 크게 나누어서 기독교적 신비주의와 범신론적 신비주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의 유명한 신비주의자들 가운데서 마이스터 엑카르트(Meister Eckhart) 같은 이는 중세 후기의 대표적인 범신론적 신비주의자입니다.

그런가 하면 당대의 존 타울러(John Tauler)나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 Kempis) 같은 이들은 대표적인 기독교적 신비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겠습니다. 범신론적 신비주의자들과는 달리, 기독교적 신비주의자들의 특색은 무엇보다도 in Christ의 사상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 성령사역을 위한 질문

1. 성령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어떤 삶을 말하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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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자는 영혼 속에 어떤 특징이 나타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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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령충만한 자의 삶속에 고난이 다가올 때, 그 고난에 대하여 성도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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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적용을 위한 기도

1. 나날의 삶 속에서 육신의 정욕을 좇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2. 그리스도께서 걸으셨던 고난의 길을 기쁨으로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역사신학/성령의 삶 코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