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재판
▲루카 조르다노의 <솔로몬의 재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잠언 1:2-4)”.

“헛되고 헛되니”란 말씀은, 히브리 식으로 나타내는 지극히 무의미함을 강조하는 최상급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람들의 활동과 수고가 헛된 것임을 깊이 있게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다윗 왕은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보석 세공사에게, 승리했을 때 교만하지 않고 실패했을 때 좌절하지 않는 어구가 들어간 반지를 만들어 달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석세공사는 어떤 어구를 반지에 넣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혜자인 다윗왕의 아들인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서 다윗 왕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고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에 솔로몬 왕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라고 대답합니다.

보석세공사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어구를 반지에 넣습니다. 다윗 왕은 반지에 새겨져 있는 격언을 평생토록 통치 철학으로 삼았으며, 전장에서 승리했을 때도 오만해지지 않고 패배했을 때도 결코 낙심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예인 유대인들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나치 대학살 때도 이 구절을 붙잡고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잘 나간다고 해서 크게 만족하거나 우쭐대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 때문에 포기하고 좌절 해야 할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0년 초부터 대면 예배가 중단되어, 지금까지 신앙인들은 교회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금방 풀리겠지’ 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보았지만, 사순절과 부활절, 그리고 대림절을 지나 아기 예수님이 오신 성탄주일마저 지키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공동체에서 격리, 추방되고 다 나을 때까지 외진 곳에서 홀로 외롭게 아픔을 겪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오히려 익숙한 시대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미 적지 않은 분들이 격리를 넘어 돌아가셨고,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계의 위협과 주변의 시선 그리고 후유증으로 많은 이들이 아파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많이 힘들고 아픕니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지금의 아픈 상처를 조금씩이나마 감싸 안아야 합니다. 코로나의 위세가 꺾이고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들을 위로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는 쉽게 그 위세가 꺾이지 않는 악성 피부병, 한센병을 비롯한 질병들과 전염병들이 항상 우리 곁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시기와 질투, 미움과 무관심, 교만과 욕심, 그리고 분노와 이기심 등이 바로 그것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끼리 서로 미워하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전서 4:18)”.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합니다. 자신이 겪는 환난을 가벼운 것으로 여기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눈에 보이는 환난만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환난으로 인하여 장래에 누리게 될, 보이지 않는 영광을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눈에 보이는 잠깐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을 추구하라고 바울은 당부합니다. 내가 처한 기쁨과 고난의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어, 영원한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려 달려가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는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언 4:23, 27)”.

마음을 지키기 위해 주의해야 할 사항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곧 말하는 것, 보는 것, 행동하는 것에 대한 지켜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로 교만할 것도 없고 좌절할 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거늘, 자신에 주어진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한다면 그것이 곧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기쁜 일도 좋은 일도, 그리고 슬픈 일도 결국에는 다 지나갑니다. 그러니 크게 성공했을 때 너무 자만하거나 교만할 필요가 없고, 실패했을 때도 너무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좋은 것도 항상 좋은 게 아니고, 나쁜 일 역시 오히려 나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왜 나만 겪는 고통일까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련과 위기의 상황일수록, 일상의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날마다 꾸준히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마련하고 그 시간에 충실하다 보면 시련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자라날 것입니다.

교회 안에 수많은 성도들이 그렇게 환난 가운데 모범된 생활을 보여준다면, 세상 사람들도 교회를 향하여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입니다.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준비를 해야 할까요? 아픈 이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당신의 치유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는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들의 아픔에 함께하고 도움과 나눔이라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손길이 나를 어루만지실 수 있도록 그 분 곁에 머무는 우리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했던 예수님을 떠올려 봅니다. 여관에는 아기 예수님이 들어가실 자리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주위에서도 아기 예수님께서 머물 곳을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추위와 비위생적인 조건과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어려운 이웃들을,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보듬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세상이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눌리고 갇힌 자들을 향한 여유와 너그러움으로, 기도하며 다가서는 살맛나는 세상을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는 신앙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쓸데없는 논쟁으로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의 공동 목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하나하나 탑을 쌓아가면서, 내가 기준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오롯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기준임을 인정하고, 공동체의 걸림돌인 나의 고집과 아집, 그리고 교만을 내려놓는 겸손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왕의 반지에 새겨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격언을 가슴 깊숙한 곳에 새겨, 자신의 믿음을 수시로 점검하며 ‘내가 혹 교만하지 않을까? 자랑하지 않을까? 이웃을 탐내는 것이 아닐까? 혹 권력의 힘으로 우쭐 대는 것이 아닐까?’ 늘 기도하며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좀 더 건강한 믿음으로 거듭나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이웃의 신음소리에 한 발 더 다가가며 그들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