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박사 한동대 김지현 교수님의 ‘시네마 토크’를 연재합니다. 영화를 통해 이 시대를 바라보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이야기합니다. -편집자 주

보이후드
▲영화 <보이후드> 중 한 장면.

이 시대의 소망, 하나님 사랑하는 우리 같은 필부필부들

거저 주신 재능으로 하나님과 이웃 사랑하는 삶 소망해
고민 없이 각자의 삶 충실하던 시절 그립게 만드는 영화

2020 미국 대선을 바라보며 미국 보통 시민들에게 놀랐다. 서부 실리콘 밸리에서 첨단 산업을 이끄는 리버럴, 워싱턴 정계를 주무르는 인사들, 뉴욕 월가의 금융인이 아닌, 보통 미국인들 말이다.

스포츠 중계와 헐리웃 히어로물에 열광하고, 주말이면 손수 꾸민 집에서 바비큐를 즐기는 중산층 미국인들의 분별과 정치의식을 몰라봤던 것이 못내 송구스럽다.

글로벌리스트 엘리트들의 이익 공유에 의혹을 갖고 분노하던 미국 시민들이 워싱턴 정치의 굴러들어온 돌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합세한 것은 중국에 빼앗겼던 직업을 되찾아주겠다는 약속에 대한 호응을 뛰어넘는다. 근간은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와서 자유의 나라를 세웠던 선대를 둔 자유시민의 정치의식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의 마스크 착용 거부, BLM의 폭력성에 대항하여 중무장하고 자경단을 꾸리는 모습, MAGA rally에 참여하고 워싱턴 DC에 모여 행진하던 이들을 언론과 민주당은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의 프레임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프레임 너머의 진실은 개인 자유 추구였다.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나의 선택권을 지키고, 방화와 약탈을 일삼는 시위대로부터 나와 이웃의 재산을 수호하며, 개인의 정치경제적 자유를 약속하는 리더를 지지하기 위해 고단한 여정을 마다치 않는 것 말이다.

바이러스의 위험과 폭력적 상황으로의 노출, 언론의 악의적 보도 역시 천부인권 자유를 위한 위험비용으로 감당하는 의지 역시 자유에 대한 염원으로부터 가능하다.

이런 미국인들에게 살짝 많이 놀라며 미국과 미국인이 새삼 궁금해지던 차에 생각난 영화가 <보이후드>였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최근 정치 현상 하에서 산전수전 별 일을 다 보며 지경이 넓어진 것인지, 수 년 전 소년의 성장 스토리로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 속에서 더 많은 미국을 발견했다.

감독이 12년간 촬영한 <보이후드>는 미국과 미국의 세월을 오롯이 담아낸다. 부모의 이혼 후 엄마와 누나와 살아가는 주인공 소년의 삶을 그려낸 성장영화 <보이후드>는 훈훈하다.

공부를 재개한 엄마는 교수님과 결혼했으나, 그의 폭력적 주사가 심해지자 남매와 맨몸으로 집을 떠난다. 강단에 서게 된 엄마는 참전 군인 출신 제자와 결혼하나, 금융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불화로 이별한다.

주목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는 내성적인 소년이다. 남매에게 완전 멋진 가정과 롤모델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으나, 아빠는 자주 아빠의 역할을 감당했고 엄마는 꿋꿋하게 엄마 자리를 지켜냈다.

그리고 좋은 이웃들이다. 선생님과 아르바이트 식당 매니저는 소년을 독려하며 도전과 책임감을 가르친다. 불완전하나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 속에서, 꽃길이 아니었던 인생길 위에서, 소년은 청년이 되어간다.

다시보기로 관람한 <보이후드>에서 미국을 보았다. 소년이 살아가는 미국은 2020년 대선 전후 내전에 가까운 대립과 갈등이 겪는 미국과 많이 달랐다.

당연한 듯 낯선 영화 속 미국에는 정치적 견해 차이 간의 공존이 존재한다. 지금 서로에게 마냥 호전적인 민주당과 공화당의 모습과는 다르다.

주요 민주당 인사는 트럼프 지지자들과 자녀들을 교화소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공화당원은 민주당 내에 괜찮은 인사들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지 않는다. 불신과 미움이다.

영화 속 아빠는 민주당 지지자로, 부시를 전쟁광이라 여긴다. 또한 남매에게 오바마 지지 푯말을 꽂으며 롬니의 푯말을 뽑아오라고 시킨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매의 모습은 동네 사람들의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의 공존과 유사하다.

오바마의 열혈 팬인 주부와 ‘내 사유지에서 안 나가면 총 맞을 수 있다’는 공화주의자가 한 마을에서 잘 지낼 수 있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 미국의 분열을 반증한다.

시골에 계신 조부모와도 마찬가지이다. 조부모의 주일예배와 총기 소유가 낯설지만, 아빠와 남매는 이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보이후드
▲영화 <보이후드> 중 한 장면.

다름에 대한 존중과 이해와는 달리, 현재 미국의 정치적 반목은 남북전쟁 이래 최악이다.

다양한 층위의 다각적 원인을 제시할 수 있겠으나, <보이후드>와 관련하여 지목하고 싶은 요인은 민주당의 궤도 이탈이다.

이전 정부의 크기와 역할에 대해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견해 차이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큰 틀 내에 공존했다. 이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국가비전을 존중하며 헌정과 반공에 동의했다.

질문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미국의 헌법 정신과 대다수 시민이 추구하는 국가이익을 수호하는가?

지금 민주당의 핵심은 깜빡깜빡하는 POTUS가 아니라, 극좌(Far-left)이다. 50명의 상원의원 중 가장 급진적이었던 부통령 외에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와 그의 키즈는 민주당의 슈퍼 파워들로, 기후변화를 주장하며 그린 뉴딜을 핵심 아젠다로 삼는다.

국경 해체를 원하는 이들에게 성 주류화 정책과 낙태 합법화는 논의의 대상조차 아니다. 이들에 비하면 대기업 해체와 학자금 탕감을 주장했던 엘리자베스 워렌은 온건한 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의 민주당은 흑인의 생명이 중요하다며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폭력 시위대와 결탁했고, 계정 폭파와 삭제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빅텍과 공조했다.

민주당에는 훌륭한 정치인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미국적 가치와 삶을 지키기 위해 세계 3차대전을 각오했던 케네디의 민주당과는 일정한, 아니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금 민주당의 주력은 커다란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당당히 주장하며, 창조론을 폄훼한다. 이는 작고 약한 정부를 만듦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고자 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의 의도와 상반되며, 유토피아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다 전체주의로 변질되었던 사회주의자의 컴백이다.

영화 속 엄마는 싱글맘의 삶을 학업 재개로 시작했다. 엄마는 왜 공부를 해야 하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공부를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대답한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 신선하게 들린다.

결과의 차이는 불공정한 나쁜 것이기 때문의 평등을 이뤄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내가 분배의 주체’라는 정부의 뻔뻔한 주장이 용인되는 현실이 우려된다. 또한 이러한 큰 정부의 필망(必亡) 정책 하에 기업과 개인이 가난해지며 각고의 열심이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을 하면, 더 공부를 많이 하면, 더 성공할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상식이었던 전설 같은 시절이 그립다. 백 세 시대이니, 작은 정부와 공정한 법치가 제공하는 리워딩 시스템이 활발하고 투명하게 작동하는 시대를 기대해도 되는지 궁금하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MAGA 랠리에 참여했던 미국 시민의 바람도 필자의 이상과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뭔가 수상쩍은 글로벌 슈퍼 엘리트들의 거대한 담론이 아닌,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가를 즐기며 주일에 예배 드리는 책임감 있고 소중한 개인의 삶 말이다.

MAGA 티셔츠와 모자로 꾸며진 이들의 알록달록한 행진은 세련과 시크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진정한 분별은 멋과 난해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같은 심플한 진리이다.

포스트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한 세련된 유럽인이 네오 막시즘과 다원주의에 매료되었을 때 우리 하나님은 ‘만들어진 신’으로 격하되었고, 유럽은 이슬람화되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이 거대한 전선을 형성하는 이 시대의 소망은 IT 천재도 정·재계 엘리트도 아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와 같은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다. 거저 주신 재능을 중보를 통해 꽃 피우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들 말이다.

<보이후드>는 이들이 별 고민 없이 각자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립게 만드는 영화이다. 이제 전선이 드러났으니, 그리움이 회복되는 역사가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한동대 김지현
▲한동대 김지현 교수.

김지현
한동대 국제어문 겸임교수
정치외교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