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니시우스 | 오현미 역 | 죠이북스 | 148쪽 | 9,000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8-373) 는 로마 황제 4명을 극복한 위인이기에, “세상에 맞선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ontra mundum)”라는 명칭을 얻었다(묘비명이다 -편집자 주).

이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를 주도했던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가 부여한 명칭이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교회의 신학자’라는 별칭이 있는데, 아타나시우스는 ‘세상을 극복한 위인’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작품은 김용준 박사가 『아타나시우스의 성령론』(조인, 2017년)을 번역한 것이 있고, 김소일 선생이 쓴 아타나시우스의 전기문 『사막으로 간 대주교』(서해문집, 2010년)도 매우 좋다. 아타나시우스가 감명을 받은 안토니의 생애를 다룬 『성 안토니우스의 생애』(KIATS)는 전경미 선생이 2019년 번역했다.

아타나시우스의 글이 번역되어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큰 유익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김소일의 전기문이 좋다.

우리는 아타나시우스가 제언한 신약성경 목록을 정경으로 삼고 있다. 신약성경을 볼 때 아타나시우스를 생각해도 된다. 아타나시우스는 이집트 나그함마디(Nag Hammadi)에서 발굴된 ‘도마복음’을 인정하지 않는 문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집트에서 사역한 아타나시우스가 정경 목록을 결정할 때 그러한 잡다한 내용들을 알았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경범위를 교회에 제언했고, 교회는 그대로 순서만 약간 바꿔서 결정했다.

그런 아타나시우스의 글이 번역된 것은 매우 큰 복이다. 367년 아타나시우스는 신약성경 정경 범위(27권)와 목록(히브리서 바울 저작)을 제안했고, 397년 카르타고 공회의에서 신약성경 27권(히브리서 저자 미상)을 확정했다. 우리나라에는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성을 믿는 연구자들이 얼마간 있다.

이번에 죠이북스에서 아타나시우스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를 출판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은 아타나시우스의 『De Incarnatione Verbi Dei』를 잉글랜드 성공회 마리아회의 피넬로피 로슨 수녀가 영역(英譯)한 것을 오현미가 다시 중역(重譯)한 것이다.

번역에서 중역을 표현한 것도 생소한 모습이다. 영어 번역이 다양하기 때문에, 영어 번역을 표시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영어 번역은 제공되고 있기에, 영어 번역과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좋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한글로 번역된 아타나시우스의 저작은 은성과 카이츠, 분도출판사 등에서 출간한 『성 안토니우스의 생애』와 이 책이 전부다.

초대교회 교리사를 공부한 분들이라면 ‘아리우스’와 ‘유사본질’ 논쟁을 익히 알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유사한 본질이 아니라 ‘동일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니케아 공의회
▲니케아 공의회 모습. ⓒ티스토리 캡처

이 책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언하는 ‘동일본질’의 선언문과 같은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면서 왜 육신을 입으셔야 했는가를 주장한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는 9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세 부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창조와 타락, 둘째 부분은 하나님의 딜레마의 그 해법인 성육신 1, 2, 그리스도의 죽음, 부활(2-5장), 셋째 부분은 유대인 논박, 이방인 논박 1, 2, 결론이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이지만, 내용은 복음 전체(창조와 구원)와 변증(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시대에는 “복음이란 무엇인가?”로 부제를 달아도 될 것 같다.

아타나시우스의 글은 4세기 이집트 대주교의 글이다. 당시 그리스도교 신앙 지도자의 신학 제시에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당시 대주교의 글은 ‘신학’이라고 하지 않고, ‘말씀’이라고 했을 것이다. 서신은 회람 문서로 읽혀지고 반복되는 문서이다.

집필의 제목을 ‘성육신’이라고 한 것은 고대 교회가 ‘성육신의 신비’에 착념된 시대이기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성육신의 신비에 대한 이해는 중세기 초반까지 진행되었고, 신학에서 교회 사상 자료를 체계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4세기 교부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향취가 지워지지 않았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는 신학생인 아들과 함께 읽고 있다. 한 번 읽어서 해결될 내용이 아니다. 고전(古典)은 반복해서 읽을수록 힘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또 고전은 처음 읽을 때 쉽게 다가오지 않는 난점이 있다. 시간과 환경의 차이도 있지만, 영적 깊이의 차이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의 글을 기쁘게 수용한다면, 그의 영적 깊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는 얇다. 내용이 짧은 글이기 때문에, 수없이 반복하면서 읽으면 깊은 영적 세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죠이북스가 고전을 번역해서 출판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신학전문 도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들도 신학 고전들을 다양하게 출판해주길 기대한다.

독자들이 신학 고전을 구매해야 출판사들도 출판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아타나시우스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가 잘 판매되어, 많은 출판사들이 기독교 고전을 번역 출판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고경태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광주 주님의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