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만 강호
▲연하상자를 받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김일만 씨, 강호 목사(왼쪽부터).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설날, 추석... 가족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날이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가 더욱 생각나요.”

2012년 갑작스레 쓰러져 뇌사에 빠진 故 이현규 씨. 깨어날 가망성이 없다는 의료진의 이야기에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 신장, 간, 각막 등을 기증해 5명에게 생명을 나눴다. 당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이 씨의 첫째 딸 규린 양은 이제 18살이 되었다. 학창시절 대부분을 아버지가 없이 보낸 규린 양은 ‘졸업식’과 같은 행사나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에 아버지의 빈 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명절 기간, 떠나간 가족의 빈 자리를 크게 느끼는 사람은 이규린 양 뿐만이 아니다. 많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이 명절과 같은 날이면 기증인의 부재를 더욱 크게 느낀다고 했다. 그나마 다른 해 명절에는 떠나간 기증인을 함께 추억할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그러기 어려운 실정이어서 그리움은 온전히 가족들을 몫으로 남았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며 장기기증을 결정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이하 도너패밀리)을 위해 연하상자를 전달했다. 도너패밀리 230가정에 전달된 연하상자는 햅쌀로 만든 떡국떡, 종합 비타민제 4개월분, 핫팩과 KF94 마스크 등으로 채워졌으며, 장기기증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이식인들의 감사편지를 동봉했다. 다가오는 설날, 기증인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된 선물이다.

지난 2004년 뇌사로 세상을 떠나며 신장, 간, 췌장 등을 기증해 4명의 생명을 살린 故 오철환 씨의 아내 박미정 씨는 뜻밖의 선물을 받고 눈물을 훔쳤다. 박 씨는 연하상자를 받은 후 곧바로 본부로 전화를 걸어 “떠나간 남편이 정말 많이 보고 싶었는데, 남편이 제게 설 잘 보내라고 보내 준 선물 같아 정말 감동을 받았다”라며 “남편이 떠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벌써 서른이 되었지만 그리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라는 말과 함께 작은 위로를 전해 준 본부에 감사의 뜻을 밝혔다.

2007년 2월 9일, 설 연휴를 한 주 앞두고 보석세공사였던 29살 김광호 씨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장기를 기증하며 장기이식 대기 환자 4명의 목숨을 살렸다. 아들과 단둘이 의지하며 살던 김 씨의 아버지 김일만 씨는 아들의 죽음 후 혼자가 되었다. “설 연휴쯤이 아들의 기일이라 항상 설날이면 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는 김일만 씨는 연하상자와 편지 덕분에 오랜만에 마음의 온기를 느꼈다고 전했다. 특히 김 씨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다른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과도 만날 수 없어 외로웠는데, 아들의 기일에 맞춰 온 연하상자를 보니 아들의 나눔을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위로가 된다”라고 말했다.

본부는 지난 2013년부터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인 ‘도너패밀리’를 운영해오며 지역별 소모임, 이식인과의 1박 2일 캠프 및 연말모임 등을 통해 유가족들과 이식인 간의 교류를 추진해 왔다. 이 뿐 아니라 1일 추모공원, 기증인 초상화 전시회, 창작 연극 공연 등 기증인을 예우하는 프로그램과 심리치유 프로그램 제공 및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를 위한 장학회 운영 등 유가족을 지원하는 사업 등도 활발히 진행해 왔다.

올해 설을 맞아 처음으로 도너패밀리에게 전달한 연하상자는 신한은행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신한은행은 2012년부터 네이버 해피빈과 함께 ‘신한가족 만원 나눔기부’를 통해 임직원들이 매달 급여에서 1만 원씩을 기부하며 사회 곳곳에 아름다운 온정의 손길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