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카타리나로 보는 결혼의 동기와 과정과 결과
첫눈에 반해 불꽃튀는 사랑에 결혼하지 않은 것 확실
지금과 반대, 서서히 시작해 점점 자라는 눈덩이 사랑
결혼은 선택한 사람과 인내하며 바로 서려는 긴 싸움

루터 카타리나
▲루터와 아내 카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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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 사제였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가톨릭이 금지한 사제 독신 의무를 거부하고 결혼을 감행했다.

그가 비텐베르크 교회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고 항거한지 8년 만이었다. 42세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의 아내는 역시 수녀였던 26세의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였다.

종교개혁 운동에 감명받은 카타리나는 동료 수녀 11명과 함께 루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1523년 청어 장수로 위장한 루터의 친구가 수도원을 오가던 청어통 안에 숨어 탈출했다. 이들 수녀들은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의 주선으로 결혼도 하고 취직도 했다.

그런데 카타리나는 맨 마지막까지 결혼을 안 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 결혼 제안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지만, 그녀는 루터와 또 다른 개혁가 폰 암스도르프가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며 버텼다고 한다. 루터는 현상금이 걸릴 정도로 가톨릭의 핍박을 받던 시절이라, 결혼은 자기 인생에 없는 일로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수녀 출신의 젊은 여성 카타리나의 끈질긴 구혼에 루터도 결혼을 결정하는데, 결혼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손자를 부모님께 안겨 그간 걱정을 끼친 불효를 만회하고 싶었고, 사제와 수녀의 결혼이라는 충격적 이벤트로 교황에게 한 방 먹이고 싶었던 것. 어쨌거나 카타리나는 루터와 결혼을 해서 지역의 제후가 선물로 준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1525).

종교개혁의 역사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결혼의 동기와 과정과 결과의 관계를 말하려는 것이다.

루터는 당시 맥주를 즐기던 습관 때문에 비만이었다. 카타리나도 초상화를 보면 그다지 미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외모다. 그래선지 다른 수녀들을 다 결혼시킬 때까지 둘은 남았다.

이것은 두 사람이 서로만 바라보았다는 추측도 가능한 상황이지만, 그보다는 둘만 남아서 서로가 서로를 구제해 주었다는 추측이 더 설득력 있는 상황일 것이다.

주변에 보면 이런 커플들이 간혹 있다. 어울리던 친구들이 다 다른 사람을 선택해 시집 장가를 가고 둘만 남는 오랜 친구나 동료 관계인 사람들, 소개팅을 주선하는 등 남 좋은 일만 두루 시키고 두 사람만 노총각 노처녀로 남았다가 그냥 둘이 결혼하는 케이스다.

실제로 루터 부부도 2년 동안 다른 수녀들이 귀족과 좋은 혼처를 만난 뒤에 남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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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의 과정보다 이후의 삶이다.

이미 지금은 결혼에 대한 많은 기대가 물 건너 간 시대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결혼을 이상적인 사람과 운명적으로 만나 인생의 일대 전환기를 맞는 일로 생각한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젠 외로움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결혼하는 순간 일장춘몽으로 끝날 철없는 생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 기대는 상당 부분 현실화되기도 한다.

또한 그런 꿈도 없다면 세상에 결혼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초기에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섭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긴 연애일수록 결혼 성공률이 낮아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기대와 단꿈을 꾸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사고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혼자들이 뒤늦게 알게 되거나 영영 깨닫지 못하는 것을 미리 알면 좋다.

의외로 많은 부부들이 불꽃이 튀어 결혼했다가 실망하고, 돌아서거나 억지로 살아가거나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들이 비슷하다.

속았다.
그럴 줄 몰랐다.
결혼 전과 말이 다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 안 했다.
내가 미쳤지.
나 돌아갈래!!

다는 아니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다른 방법을 택한다. 이별이나 별거, 일탈, 방관, 무관심, 비난과 조롱, 다른 일에 몰두하기, 현상 유지만 하기 등등.

그런데 루터와 카타리나는 서로 한눈에 반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아니면 안 된다고 못 박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동료들을 다 결혼시키고 자신들만 남을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결혼을 결정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첫눈에 반해 불꽃튀는 사랑으로 결혼한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루터 가족
▲루터가 가족들과 함께 찬양하는 모습.

그런데도 루터는 “행복한 결혼 생활보다 더 감미로운 연합은 없다”고 말했다. 기록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은 자녀 6남매를 낳고 4명을 더 입양했으며, 조카들과 페스트로 고아가 된 아이들 10여 명까지 기른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루터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음악을 연주하며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고자 애썼다고 한다.

루터는 천재이면서 왕성한 정력가였다. 단기간에 엄청난 저술을 하고 성경을 번역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집에서는 대가족을 거두었다. 로마 가톨릭이 집요한 방해와 협박에 생사를 오가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마다, 카타리나의 도움으로 버텨나갔다.

카타리나는 살림을 하면서 농사를 지어 아이들을 기르면서도 루터의 개혁운동을 지지하고 동기부여를 해준 내조의 여왕, 아니 여장부였다.

수도원에서 맥주 만드는 기술을 배운 카타리나는 결혼 후에도 수제 맥주 제조를 계속했다. (물론 그때는 맥주는 독주 개념이 아니라 서민의 음료였으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술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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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극심한 가톨릭의 압박 속에서 사역하던 마르틴 루터가 신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기댄 유일한 존재가 아내였다.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나는 카타리나를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 만약 그녀가 아이들과 더불어 죽어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이다.”

부부 사이에 지칠 때나 갈등할 때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루터는 또 다른 때에 이런 말도 했다.

“내가 마귀와의 싸움을 견딜 수 있다면, 그녀의 짜증도 견딜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서로 아끼고 의지했다. 그들이 한 일은 사명감이나 의무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힘은 이 부부의 사랑의 힘과 가족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순간 사랑에 빠져 뭐든 다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연애하지만 얼마 못 가 헤어지고, 결혼했지만 세상에 치여 아이 하나나 둘을 겨우 낳고 단산해 버리는 시대에, 그들의 인내와 거기에 따르는 깊은 행복을 다 알 수 있을까 싶다.

지금 16세기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연애와 결혼을 말한다고 하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 사는 일은 다 비슷하고 또 그 원리는 똑같다. 다만 그런 원리가 시대상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내고 있을 뿐이다.

루터와 카타리나가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요즘 우리가 하는 것과 반대로 생각하고 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루터 부부의 사랑은 서서히 시작해 점점 자라는 눈덩이 같은 사랑이다. 처음엔 하찮아 보이지만 갈수록 아무도 깰 수 없는 견고함으로 크게 자라난다. 반면 우리 시대의 사랑은 뜨겁고 거창하게 시작된 큰 눈덩이가 점점 녹아 사라지는 형태라고 할 것이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힘을 합쳐 굴려서 키워가는 사랑은 단단하고 든든한 산과 같아서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다. 하지만 제법 크게 시작한 것 같아도 굴리지 않고 방치하면 많은 삶의 도전에 깨지고 부서지며 녹아버린다.

하나님은 사람이 배우자로 누구를 선택하는지에 관심이 없으시다. 누구하고만 결혼해야 한다고 콕 집어주시지도 않는다. 물론 신중하게 신실한 사람을 선택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후를 더 중시하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약하고 하나가 된 뒤의 삶과 그 과정에서 얼마나 애쓰고 신실하게 노력했는지를 보신다고 믿는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다. 어느 학교를 갈지, 어느 직장, 어느 교회를 선택할지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과 태도, 그리고 삶을 대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은 사람을 찾는 게임이 아니라, 선택한 사람과 인내하며 바로 서고자 애쓰는 긴 싸움이다. 마르틴 루터와 카타리나는 타락한 종교만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 아니라, 결혼의 진정한 의미와 그 원형을 바로잡는 일에도 좋은 모범을 보여준 것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등 40여 종
www.woogy6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