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이(The Wound)’라는 필명의 그리스도인이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코너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이 네 번째 칼럼입니다.

주택 정책을 풍자한 청와대 국민청원 ‘시무 7조’로 큰 화제를 모은 ‘진인 조은산’의 ‘기독교 버전’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필명 ‘다친 이’ 님은 범상치 않은 글솜씨로 교회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주요 이슈들을 쓴소리와 함께 성경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대안을 모색해볼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보통 사람으로서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한 마디 지껄여 보는 것입니다.)

백조 새끼 호수 물 헤엄 동물 새
▲새끼를 품고 헤엄쳐 가고 있는 백조. ⓒ픽사베이
‘탁란(托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뻐꾸기와 찌르레기 등 아주 특별한 새들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일종의 보모(保姆)로 하여금 알을 기르게 합니다. 당연히 알을 맡긴 새의 입장에선 자기 알을 키워주는 보모가 정말 고마운 존재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가끔 보모가 웅크리고 앉은 둥지로 날아와 자기 알이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모가 실수로 탁란의 새들의 알들을 깨트린 경우,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보모 새의 둥지를 초토화시킨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차 없이 보복을 행하는 이유로 이들을 일명 ‘마피아 새’라 부릅니다.

새들만 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애완동물로 가까이 데리고 사는 고양이는 보복 행위의 대표주자입니다. 고양이는 가족 중 한 사람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했거나 해코지를 했다면 잘 기억해 두었다가 반드시 보복을 하는 동물로 유명합니다.

가령 배설물을 적대자의 문 앞에 흘려 놓는다든지, 쥐를 물어다 신발 옆에 놓는다든지, 정원에 핀 곳들을 파헤친다든지 하는 귀여운 복수혈전(?)을 펼쳐 보입니다. 이런 고양이의 보복 행위는 에드가 엘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라는 소설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사자 세계의 적대 행위는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암사자는 숫사자가 힘이 빠지기라도 하면, 철저히 숫 사자를 외면하고 버립니다. 어린 사자 새끼들은 어미 사자의 품에서 평화롭게 잘 자랍니다.

그러나 장성한 후 각자 독립한 사자들은 어쩌다 부모와 다시 만나도 서로 으르렁거리며 적수로 지냅니다. 혹시 부모 사자가 오랜만에 보는 자식 사자들이 반갑다고 포옹이라도 시도하면, 순간 목을 물어뜯어 죽입니다.

발정기가 된 암사자들은 서로 숫사자를 가로채기 위해 동료 사자들을 연적으로 보고, 늘 싸움을 하고 공격을 감행합니다. 만약 동료 사자 중 하나가 병이라도 걸려 시름시름하면, 서슴없이 목을 물어 안락사시킵니다. 동물의 왕으로 군림하는 사자 세계에서의 생존투쟁이 눈물겹기만 합니다.

사자
▲머리를 맞댄 사자들의 모습. ⓒ픽사베이

어디 새와 짐승들 세계에만 이런 일들이 있겠습니까? 인간 세계에서 일어나는 잔혹 행위들에 비하면, 동물들의 행위는 신사적 행위들입니다.

그래도 동물들은 오랜 세월 속에서 녹아내려져 온 자기들만의 범과 규율과 관습을 지키고 삽니다. 먹이가 생기면 서로 적당히 분배하고 나누어 먹습니다. 순서도 지킵니다.

먹잇감을 잡은 자가 먼저 먹고 나면 하늘의 새들이 그 다음을 차지합니다. 뼈만 앙상한 먹잇감의 마지막 처리는 수많은 땅벌레들의 차지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세상에는 법을 무시하고 위반하는 사례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위법한 존재입니다.

가령, 조폭들을 보세요. 그들은 법을 어기는 그 자체가 그들의 생존전략 중 하나입니다. 결국 인간도 먹고 먹히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지요. 아마 미래사회는 모두가 조폭이 되거나 아니면 ‘빅 브라더(Big Brother)’로 불리는 절대 강자에 의해 지배되는 ‘신 니므롯의 시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성경은 인간 사회 최초의 용사이자 정복자인 함의 자손 니므롯을 ‘낍볼(힘센 사냥꾼)’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추정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는 다가오는 시대는 ‘호모 데우스’의 시대라고 명명했습니다.

물론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로서 그가 언급하는 ‘데우스’는 성경에 계시되고 우리가 믿는 그런 ‘데우스’가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데우스’는 새로운 지배자의 다른 이름입니다.

즉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인공지능 같은 첨단과학을 통해 ‘슈퍼 휴먼’이 된 극소수의 부자들이나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초인간’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문명의 혜택들을 독차지하고 인생의 행복과 불멸의 특권과 신적인 고유 권리들을 누리며 하층민들을 지배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김용규 박사는 ‘호모 데우스’에 의해 나머지 인구는 ‘호모 유스리스(Homo useless)’가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3.1절
▲1일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군 사열을 받으며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징후가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 나타나 보이는 것은 웬일입니까? 지금 한국 사회의 주류 세력들이 추구하는 일들을 면밀히 보면, 이들의 가장 분명한 목적은 자신들에 의한 계속적인 집권과 통치입니다.

이들은 현재의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이 일을 매우 정교하고 치밀한 전략하에 시도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국민을 섬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국민을 하층민으로 보고 무시해도 되는 양 행동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근본부터 뒤집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기초부터 잘못 형성되었고 그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단정하고 있음이 역력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그들만의 역사관에서 비롯됩니다. 가령 이들은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해석합니다. 그 전쟁은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원래부터 남북을 분단한 것이므로 당연히 민족통일을 이루기 위해 김일성정권이 벌인 전쟁은 미국으로부터의 해방전쟁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또 일본의 조선 침탈도 조약에 따라 미국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를 지배하고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도록 미국의 사전 양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억지스러운 인식과 주장들이 이 정권 하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북한 정권을 반대하거나 멸시하는 집단에 대한 조롱과 저주와 처단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친일파에 대한 낙인은 더욱 교활합니다. 친일역사 청산이라는 미명으로 죽은 자의 무덤까지 파묘하려 합니다. 더불어 자신들이 설정한 목표를 반대하거나 방해한다고 생각되는 반대의견이나 행위들을 철저히 뭉개버립니다.

소위 ‘문빠’로 알려진 집단은 공공연하게 문자폭탄이라는 신종 테러를 감행합니다. 신상털기로 위협합니다. 이들에 의해 지금 기존의 질서들이 하나씩 파괴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니편 내편’으로 완전히 두 동강 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국교회의 무지와 무사안일은 심각합니다.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없이 자기만의 성에 갇혀 있는 듯 합니다.

교회는 그 시대의 나팔수입니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요 세상의 타락과 부패를 막는 소금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애국자 집단입니다. 나라의 근본이 악한 의도와 목표와 목적을 가진 집단들에 의해 부정되고 역발적 행위로 가득 차다면, 교회가 이를 최일선에 서서 막아야 합니다. 속히 한국교회가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다행히 합동 측 등 현명한 분들이 모여 한국교회의 개선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는 소식은 단비 같습니다. 이 작은 노력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다친 이(The Wou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