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서 <귀멸의 칼날>로, 2년간 무슨 일이?
민간 부문 양국 분위기 개선, 적폐청산 앞세운 현 정부 부담됐나
상호 발전 무산 아쉽지만, 즐거움 중심 교류에 반성 기회도 제공

항거 유관순 이야기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2019년 2월에 개봉된 <항거: 유관순 이야기>(왼쪽)와 2021년 2월에 흥행중인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
◈반일 조류 속 일본문화: 2019년의 <항거>와 2021년의 <귀멸의 칼날>

한국의 2019년은 말 그대로 ‘반일’의 해였다. 2018년 10월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한국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나자, 일본 정부는 1965년에 양국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한국 대법원 판결에 반대해 격렬한 항의 표시를 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한국 사법부 판결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이렇게 2019년 초반부터 고조되기 시작한 양국간의 외교적 긴장은, 그해 7월 한일 무역분쟁 발발을 기점으로 절정에 달했다. 노재팬 운동, GSOMIA(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파기 논란이 시작됐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반일 감정이 극단에 이르렀다.

이후 2020년 초반 코로나 창궐로 인해 화제성 측면에서 뒤로 밀리기는 했지만, 당시 극대화된 반일 감정의 여파는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2019년 국내 영화계 역시 정부의 외교적 방향성에 발맞추어, 항일운동과 관련된 작품을 여럿 양산해냈다. 2019년 3.1절을 전후해 개봉된 국내영화 목록 가운데는 <항거: 유관순 이야기>와 《1919 유관순》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항거>는 고조되는 반일의 열기를 반영하듯 흑백 화면의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100만 관객을 넘기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광복절을 전후해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군의 활약을 그린 <봉오동 전투>가 개봉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코로나 창궐 국면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국내 극장가는 참으로 뜻밖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부터 일본의 청소년 대상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되기 시작해 TV판 애니메이션으로 일본 내 신드롬을 일으킨 <귀멸의 칼날>(鬼滅の刃)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근 2주째 관람객 수 1위를 차지하며 누적 관객수 100만에 접근하고 있다(82만).

이는 최근 국내 극장가에 개봉된 영화 및 애니메이션 중 디즈니-픽사의 <소울> 다음으로 많은 수치이다.

일본 애니 귀멸의 칼날
▲2016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해 2020년과 2021년 일본 내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만화 <귀멸의 칼날>, 다이쇼 시대(1912-1926)를 배경으로 삼는 시대극이다.
<귀멸의 칼날>의 장르는 시대극이다. 이른바 ‘왜색’이 짙은 작품이다. 작품 전체가 일본식 풍경, 복식, 풍습, 전설, 활극 장면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시대 배경이 다이쇼 시대, 즉 1912년부터 1926년의 일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과 동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런 애니메이션이 2021년 3‧1절 직전 국내 극장가에서 제법 오랜 기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체 2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런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그저 국내의 일본문화 매니아들, 소위 ‘오타쿠’들이 총출동해서 관람하는 바람에 저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82만이라는 관람객 숫자는 오타쿠들만 동원해서 기록될 숫자는 아닌 것 같다.

아무리 국내 극장가가 코로나로 인해 대작 개봉이 줄줄이 취소된 상황이고, 그래서 그 틈새로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반일 열풍이 지속되고 있는 나라에서 왜색이 짙다 못해 일본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은 기이하기 그지없다.

◈반일조류 속 일본 이해: 기독교인에게는 부담스러운 일본 문화

2019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반일 기조가 강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 이전 몇 년간 양국간 외교 및 민간 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점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시기 정부 차원의 한일 관계는 순탄한 편이었는데, 이는 아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 정계 인물들과 상당히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 근처의 참모진 가운데도 친일 성향이 의심되는 인물들이 여럿 포진되어 있었기에, 대통령 본인의 일본 정권에 대한 인식 역시 국민들 사이에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은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사태로 인해 극대화된 바 있다.

이렇듯 박근혜 정권 당시 정권 수뇌부가 과도한 친일 성향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국민들 사이에 존재했지만, 한편으로는 한일 양국 정권 간 순탄한 관계가 양국의 민간 교류를 크게 활성화되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앞서 말한 2019년 국내 반일 분위기 고조 시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한국은 일본 내 K-Culture 및 음식 문화 전파에 큰 성과를 올렸고, 일본은 한국인 관광객 유치에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아베노믹스로 인해 일본 내 경기 및 취업 상황이 개선되자, 한국인 유학생들이나 구인자들의 일본 현지 취업도 2015년을 기점으로 크게 늘어났다.

관광 부문은 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2019년 7월 한일 무역분쟁 발생 직전까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해외 여행지로는 36개월 동안 일본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이전까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던 해외여행지는 중국이었는데, 2015년을 기점으로 그 순위가 역전된 것이다. 이후 3년 동안 2,125만명의 한국인이 일본 여행에 나섰다. 전 국민의 2/5가 일본여행을 경험한 셈이다.

한국 일본 여행 문화 교류 노재팬
▲2014-15년부터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이 급증해, 2018년에는 전 국민의 2/5가 일본여행을 경험했다.
이렇듯 정부 부문에서만 아니라 민간 부문에서 한일 양국간 분위기가 크게 개선되고, 특히 일본 여행 경험자들이 그동안 막연히 적대적으로만 생각했던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개선된 이미지를 갖게 되는 상황은 반일 적폐 청산을 국정 모토로 내세우던 현 정권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부담감이 2019년 한일 양국 정부 사이 외교관계 악화에 하나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한국 기독교인 관점으로는 현 정권의 이런 외교적 방향이 꼭 나쁘게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물론 민족주의를 자극해 우리의 심성을 개방보다는 독단에 기울게 하고, 타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조시켜 정치적 이익을 취하는 계산적인 행태가 달갑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한일 양국간 발전적인 상호 작용을 위한 기회를 급하게 무산시켰다는 점에 있어서도 큰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향유’, 즉 즐거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양국 간 문화적 교류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순기능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인 입장에서 일본의 정신문화와 대중문화는 선교적 차원에서 상당한 부담감을 선사한다. 이는 단순히 일본의 전통문화가 신토와 정령숭배 사상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는 것, 즉 우상으로 가득한 문화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점은 서유럽 및 북아메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다 마찬가지 입장이다. 한국 역시 무속신앙 기반 정신문화를 상속해 왔다는 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일본의 정신문화 및 대중문화가 한국 기독교인에게 부담이 되는 보다 큰 이유는 일본의 정권이 대대로 기독교 및 기독교 문화에 대해 보여온 경계심 및 거부감, 그리고 자국 문화에 대한 과도한 자긍심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 처음 기독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543년 포르투갈인들이 일본에 방문해 무역과 선교를 개시하면서부터이다. 물론 당시 일본에 전래된 기독교는 가톨릭이었다. 당시는 일본 전역이 무려 100년 가까이 내전에 휩싸여 있던 센고쿠(전국) 시대였다.

일본 1500년대 핍박
▲1500년대 당시 포르투갈인들의 일본 방문을 기록한 그림.
이 센고쿠 시대를 종결하고 일본 전역 재통일의 기반을 다진 오와리의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에게 반발하던 일본 국내의 정치화된 불교 세력을 억압하려는 목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허용할 뿐 아니라 장려하기까지 했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기독교 선교를 적극적으로 가로막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 내 가톨릭 교세 확장이 매우 급속하게 이루어진 점에 경계심을 갖기는 하였다.

일본 내 기독교 선교가 거의 완벽하게 좌절되기 시작한 시점은, 전국을 완전히 통일하고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 당시부터였다.

도쿠가와 막부의 최고 정책 목표는 ‘안정’이었다. 무려 150년에 걸친 내전 시기를 겨우 종식시킨 직후인지라 일본 내부의 정치적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야스의 눈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포교된 가톨릭은 그 무엇보다 일본 내부의 정치적 안정을 뒤흔드는 요소로 비춰졌다. 그리하여 그는 1614년 기독교 금교령을 내린다.

이때부터 일본 내부에서는 참혹한 기독교 박해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이 바로 이 시기 가톨릭 박해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계속>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