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강의 후 기도하고 있는 권율 목사.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이 말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이다. 해당 구절을 모두 쓰면 이렇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특히 이 구절은 장애인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섭리로서 장애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한다. 하나님께서 말 못하는 사람, 못 듣는 사람, 못 보는 사람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들의 연약함을 비장애인 입장에서 난도질하는 의도로 악용되면 안 되고, 그들의 인생을 하나님이 책임지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겸손한 고백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성경 인물 중 모세와 바울을 좋아한다. 그들의 영웅적인 면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는 연약함 때문이다.

모세와 바울은 혀가 둔하고 말이 시원치 않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이 모세를 사명자로 보내실 때 그는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라고 고백했다.

바울은 또 어떠한가? 대적자들이 그를 두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고후 10:10)”고 조롱하지 않았던가? 현재 우리가 글로 대하는 바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감히 비할 수 없지만, 그들의 연약함이 필자에게도 있다. 원래는 없었는데, 친모의 가출을 즈음하여 ‘유창성 장애’를 앓게 되었다. 일종의 언어장애이다.

물론 모세와 바울이 그런 장애라고 하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생각보다 스피치가 어눌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능자가 그들의 입을 그렇게 지으셨다. 필자의 입 역시 전능자가 그렇게 되도록 섭리하셨다.

친모가 가출하고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5학년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지명하여 오늘 배울 본문을 큰소리로 읽어 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순간적으로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한 문장도 읽을 수 없었다. 갑자기 말더듬 증상이 생겨서, 입 밖으로 말이 전혀 튀어나오지 않았다. 억지로 말을 하려고 시도하면 머리를 상하로 흔들거나 얼굴에서 희한한 제스처가 나오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심히 당황하셨는지, 다른 친구에게 나 대신 책을 읽으라고 하셨다. 수업시간 내내 정말 수치스럽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쉬는 시간이 되어 고개를 푹 숙인 채 밖으로 뛰쳐나가 한없이 울기 시작했다.

“하… 하나님, 갑자기 왜 나를 이런 모습으로 만… 만드시는 겁니까? 엄… 엄마가 집 나가서 안 그래도 마… 마음이 힘든데, 또다시 저한테 이런 수치감을 왜 안… 안겨 주십니까? 예… 예수님은 도대체 어디 계… 계십니까?”

그 후 친구들과도 제대로 대화할 수가 없었다. 친한 친구와 단 둘이 대화할 때는 그나마 말을 뱉을 수 있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책을 읽거나 발표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만일 강제로 그 일을 누가 시키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렸다.

전능자의 손길을 경험한 첫 대가는 입이 닫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쓰러짐, 엄마의 가출에 이어 말이 어눌해지는 일련의 결과들이 전능자의 손길 안에 있었다.

그런데 뭔가 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병든 자를 치유하고 장애를 온전함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전능자의 능력 아니던가? 적어도 우리 입장에서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능자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지는 법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통해 당신의 전능함을 드러낸다.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모세를 통해 이집트 왕에게 당신의 말이 전능함을 드러내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은” 바울을 통해 로마 제국에 당신의 말이 복음임을 계시하셨다. 인간의 어눌한 말이 전능자의 능력의 말을 대변하는 ‘채널’이 된 것이다.

이런 연약함의 능력을 어린 소년에게도 맛보게 하셨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마하나임(Mahanaim)이라는 기독교 동아리를 알게 됐다. 물상 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하나님의 군대’가 있다고 종종 자랑하셨다.

마하나임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몇몇 선생님들과 여러 친구들이 음악실에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임이었다. 아름다운 찬양으로 모임을 시작했고, 찬양이 끝나면 물상 선생님이 은혜로운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부담스럽게도 내가 앞에서 간증을 하게 되었다. 엄청나게 긴장해서 말을 제대로 못했지만, 내게 부어 주신 은혜를 친구들 앞에서 더듬더듬 증거하였다.

“하… 하나님께서 어… 어젯밤에 ‘내가 너를 사… 사랑한다’는 세미한 음성을 저… 저의 마음속에 들려 주… 주셨습니다. 비… 비록 내 모습은 보… 보잘것없고 초… 초라할지라도, 저는 하… 하나님께서 언… 언제나 저를 붙… 붙드시고 사…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 확실히 믿습니다. 여…여러분도 이 하… 하나님을 굳게 신… 신뢰하시기를 바… 바랍니다.”

갑자기 오른쪽 구석에 있던 영철이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장로님 아들인데도 평소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이 친구가 얼떨결에 참석했는데, 무슨 까닭으로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걸까?

영철이가 우는 바람에 나는 더듬더듬 간증하다가 무척 당황하고 말았다. 우리 모두는 영철이가 보여준 눈물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회개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하늘에 떠있는 구름 사이에서 태양이 갑자기 얼굴을 드러냈다. 음악실 안에 있는 우리 모두를 환하게 비추었다. 아까부터 내리던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하더니, 절묘하게 자취를 감추고 때마침 태양에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을 기쁘게 받으셨다고 알리는 하늘의 징표 같았다. 보잘것없는 말더듬이를 통해, 성령께서 은혜를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입을 사용하려고 입을 막으시는 전능자의 섭리가 이런 것일까. 인간의 연약함을 통해 당신의 전능함을 드러내는 방식이 과연 이러한 것일까.

소년의 어눌한 입을 통해 당신의 무슨 말을 앞으로 세간에 전하려고 그 입을 막으시는 걸까. 혹시 바울처럼 그 말은 시원치 않아도 필력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려는 섭리일까. 전능자의 손길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권율 목사
경북대 영어영문학과(B.A.)와 고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치고 청년들을 위한 사역에 힘쓰고 있다. SFC(학생신앙운동) 캠퍼스 사역 경험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결혼예비학교 등을 섬기고 있다.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폭력 및 부모 이혼 등의 어려운 환경에서 복음으로 인생이 ‘개혁’되는 체험을 했다. 성경과 교리에 관심이 컸는데, 연애하는 중에도 계속 그 불이 꺼지지 않았다. 부산 부곡중앙교회와 세계로병원 협력목사로 섬기면서 가족 전체가 필리핀 선교를 준비하는 중이며, 4년째 선교지(몽골, 필리핀) 신학교 집중강의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저서는 <21세기 부흥을 꿈꾸는 조나단>, <올인원 사도신경>, <올인원 주기도문>, <올인원 십계명>이 있고, 역서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영한대조)> 외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