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400여 년 전 가가야마 하야토의 순교와 오가사라와 겐야의 처벌을 지시한 호소카와 가문의 1차 사료가 최근 발견됐다.
▲일본에서 400여 년 전 가가야마 하야토의 처형과 오가사라와 겐야의 처벌을 지시한 호소카와 가문의 1차 사료가 최근 발견됐다. ⓒ해리티지데일리 보도 캡쳐
일본에서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진행됐던 기독교인 탄압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계 고고학 매체인 ‘해리티지데일리’는 1600년부터 1620년까지 고쿠라(Kokura) 영토의 영주였던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내린 두 가지 결정에 대해 주목했다.

다다오키는 당시 호소카와(Hosokawa) 가문의 수장이자 기독교인인 ‘가가야마 하야토 디에고’에 대해 처형을, 기독교 신자였던 ‘오가사와라 겐야’의 추방을 명령했다.

앞서 두 기독교인의 순교와 추방은 예수회(Jesuit) 선교사들이 로마로 보낸 보고서를 통해서만 알려졌다. 그러나 호소카와 가문에서 만든 주요 역사 문서가 발견됨에 따라, 당시 선교사들의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게 됐다.

이 매체에 따르면, 16세기 중반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자비에르(Francis Xavier)가 일본에 도착한 후, 일본 내 기독교 신자들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지역 및 봉건 영주들과 신하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특히 규슈 지방과 그곳 영주인 호소카와 가문에 많은 신자들이 생겨났다.

1614년 12월 에도 막부(Edo shogunate)가 전국적으로 기독교를 금지했고, 호소카와 가문의 다수가 신앙을 포기했지만 가신들 중 두 사람은 이를 거부했다.

가가야마 하야토는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던 세 명의 영주를 섬긴 무장이었고, 오가사와라 겐야는 그의 사위인 것으로 전해진다. 영주인 타다오키는 두 사람에게 종교를 바꿀 것을 명령했으나, 둘은 끝까지 불복했다.

예수회 선교사가 로마로 보낸 서한에 따르면, 타다오키는 1619년 9월 8일 마침내 하야토에게 참수 명령을 내렸으며, 겐야와 그의 가족을 범법자들이 사는 외딴 시골 마을로 추방시켰다. 그러나 겐야와 가족들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635년 12월에 구마모토에서 모두 처형됐다.

구마모토대학의 에이세이분코연구소(Eisei Bunko Research)는 호소카와 가문의 첫 번째 가신인 ‘마쓰이 가족문서’ 기록을 분석하던 중 이 명령이 담긴 서한을 발견했다. 연구에서 발신자는 로쿠자에몬 야노 외 3명으로 추방당한 겐야를 관리한 공무원이었고, 수신인은 호소카와 가문의 초대 영주이자 고쿠라 지역 최고 행정관인 오키나카 마츠이로 밝혀졌다.

이나바 츠구요(Tsuguyo Inaba) 교수는 이 역사 문서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로마에서 온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서만 가가야마 하야토의 순교와 오가사라와 겐야의 처벌을 알 수 있었을 뿐 정보는 여전히 불확실했다”며 “그러나 호소카와 가문이 작성한 1차 사료가 발견되면서 더 많은 사실이 알려졌다”고 밝혔다.

츠구요 교수는 이 문서가 일본의 지배계층 구조에서 기독교인이 제거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로, “일본 기독교의 위대한 역사적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이 두 사람의 처벌은 1619년 52명의 천주교 신자가 사망한 ‘교토 대순교(Great Martyrdom of Genna in Kyoto)’ 직후에 발생했다. 연구원들은 고쿠라 영주 또한 이 박해의 여파로 처형을 단행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의 기독교 박해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인 ‘겐나의 대순교(1614~1632년)’ 이후, 일본의 영주들과 사무라이 등 지배 계층에서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전면 금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