뒹굴며 주 찬양하는 나귀 예찬
▲ⓒ크투 DB
예전엔 목사로서 주님 앞에 뭔가 작품을 만들어 내놓고 싶었다. 30대와 40대였을 때, 그 생각이 많았다. 내가 목사로 교회를 개척하고 사람들을 세워 일군으로 만들고, 멋진 성경적 공동체를 만들어서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이 열매라고 생각했었다.

아마 지금도 많은 목사들이 이런 생각들 하면서 목양하지 않을까 싶다. 이게 비교적 건강한 가치관이라고 여기고 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 인생 60이 넘고, 목회 30년이 넘고 깨닫고 보니, 성경을 더 깊이 깨닫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크게 성경을 오해했다.

주님이 성경에 수없이 강조하시고 반복하신 열매는 그게 아니었다. 주님이 원하신 열매는 우리 목양의 외적 작품이 아니었다. ‘너희가 어떤 목회를 했느냐?’ 그게 아니었다. ‘소위 목회 성공했냐?’ 그런 게 아니었다.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는 내가 주님 만나는 그날까지 끝까지 신실했는가, 그거였다. 주님의 성품이 내 속에 열매로 가득 맺혔는가, 그거였다. 하나님 형상이 내 속에, 성령의 열매가 내 속에 맺혔는가 그거였다.

이걸 오해하면서 목양의 길 가는 이들이 이 땅에 엄청 많을 거 같다. 목회를 잘하면 주님 상급 받을 거라고 여기고 진력하는 이들이 많을 거 같다.

그런데 그거 아니다. 마지막 날 주님이 우리에게 보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목회 잘했나 못했나, 그게 아니다. 니네 성도 몇 명인가 그건 더욱 아니다.

끝까지! 신실하라! Be faithful! Even to the point of death! 이게 중요하다. 끝까지 신실한가? 온유한가? 따뜻한가? 순수한가? 끝까지 진실을 담았는가?

목양하다 배신당하고,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결단한 눈물이 있는가? 주님 종이었던 것이 황송해 끝까지 감사가 가득한 모습으로 섰는가?

이런 거다. 이런 것이 열매다. 그런 종을 품어주시고, 눈물 닦아주시고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겠다고 하신 거다.

배영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용인 하늘문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