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부교역자로 청년 사역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노재원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석사)했으며, 현재 ‘알기 쉬운 성경이야기’, ‘기독교의 기본 진리’, ‘영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대중문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등을 유튜브를 통해 연재하고 있다.

성경으로 공간읽기
대형건축물과 권력
노재원 목사의 <성경으로 공간 읽기> #4

인간은 거대한 건축물을 지음으로써 권력을 과시하려 합니다. 지구라트(Ziggurat,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의 건조물)는 고대사회에서 신전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거대한 규모는 제사장을 위시한 종교권력을 뒷받침해 주었을 것입니다. 지구라트의 발전적 형태라고도 볼 수 있는 피라미드 또한 왕의 절대권력을 표상했음은 알려진 사실이지요. 규모에 대한 욕구는 자연히 높은 건축물을 지향하게 했는데요.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벨탑이 그 원조격이라고 하겠습니다. 높은 탑을 쌓음으로서 명예욕을 채우려는 인간들의 허망한 야심을 보여주었죠.

높이에 대한 욕구에도 불구하고 건축재료가 갖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건축물을 높이 올릴 수 없었던 인간들은 수평적으로라도 건축물의 크기를 키우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세기 들어 강철과 콘크리트라는 현대적 재료가 고안되면서 인간은 건축물을 높이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뚝 솟은 건축물은 새로운 기술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동시에 인류의 진보를 시각화하는 수단이었죠.

기술적인 제약이 없어지자, 건축물은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오늘날 지어지고 있는 초고층 건축물은 그 사회의 경제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홍보의 수단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건축물은 단지 추위나 더위를 피하고 잠을 잘 수 있는 쉘터(shelter)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정신을 담고 있는데요. 특히 대형건축물은 그 자체로 권력자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두었던 종묘는 왕조의 권력과 위엄을 장엄하게 웅변하는 좋은 실례라고 하겠습니다.

종교건축물의 권위

건축물이 권위를 상징한다는 것은 종교에 있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중세 성당의 높은 실내 공간은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신의 권위를 은유적으로 암시했구요. 첨탑, 종루, 뾰족창, 이런 수직적인 요소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하늘에 존재하는 신을 앙망하게끔 했습니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당시 하층민들에게 중세 성당은 성경책과도 같은 기능을 했던 것이죠. 위압적인 건축물이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해 주는 권위를 가졌던 겁니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건축물을 통해 권위를 확보하려 하며 또한 과시하려 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염병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건물에 모여서 종교의례를 갖는 것이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종교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무너진 성전, 그 이후

성경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은 성전 건물의 화려한 외관을 보고 호들갑을 떱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마가복음 13:1 / 새번역)

헤롯 대왕이 건축한 성전은 규모가 엄청났는데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성전에 사용된 대리석 하나의 크기가 가로 11.4m, 세로 3.7m나 되는 엄청난 규모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감탄할 만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마가복음 13:2 / 새번역)

예수님은 성전의 아름다움이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실상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가 아닐런지요.

강철이든 콘크리트든 재료 자체의 물리적 수명이란 100년, 길어도 200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아무리 근사하고 견고하게 짓는다고 해도 수백 년이 지나면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수많은 건축물들이 한때의 위용을 자랑하다가 사라져 왔습니다. 하지만, 문자로 기록된 내용은 오늘날까지도 굳건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엄연한 사실에 주목한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지평이 열리지 않을까요.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영광은 들의 꽃과 같아서 그 풀이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주의 말씀은 영원히 존재한다.’
(베드로전서 1:24-25 / 현대인의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