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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무엘상 27장 1-4절


산만한 현대인

ADHD라는 용어는 이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익숙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ADHD는 ‘주의력결핍과잉 행동장애’를 뜻합니다.

ADHD 아이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증상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 한 가지 놀이나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쉽게 싫증을 내며 물건을 계속 잃어버리는 ‘주의력 부족’입니다.

둘째, 손발을 가만히 두지 못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게 뛰어다니고 또는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과잉행동’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의 활동을 참견하거나 방해하고 흔히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는 등의 ‘충동적 행동’입니다.

ADHD의 발생원인은 지금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합니다. 다만 주요원인으로는 뇌에서 주의집중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ADHD 아이들이 점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오늘날의 현대인들을 보면 삶의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특히 스마트폰이 나오면서부터 사람들이 너무나 산만해졌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이거 봤다가 저거 봤다가 쓸데없는 시간들을 얼마나 낭비하는지 모릅니다. 삶의 분명한 목표가 없으니까 산만하게 인터넷을 방황하고 다닙니다.

집중력이 중요하다

제가 목사고시를 보기 위해 서울에 갔을 때, 고시촌 독서실에 잔 적이 있습니다. 제가 가르쳤던 제자가 신학대학원 입시공부를 하며 거기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서, 가서 잠을 잤습니다.

저는 그런 독서실을 처음 가 보았는데, 책상 하나 있고 그 옆에 작은 옷장 하나도 있고 정말 한 사람이 발 뻗고 잘 공간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제자가 제게는 그 중에서 큰 방을 주어서 그래도 좀 나았습니다.

서울에서 고시촌으로 유명한 곳이 신림동입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고시공부를 하려고 그곳에 몰려듭니다. 제가 잔 그런 독서실에서 몇년 동안이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지냅니다.

왜 그런 불편한 곳에서 외로움을 견뎌내며 가족과도 떨어져서 지내는 것입니까?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집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집중하는 것에 외에 다른 것은 다 내려놓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시촌에 들어가서 집중해서 공부하겠다는 것은 몇 년이 될지 모르지만 가족도 잠시 뒤로 하고 사생활도 취미생활도 모두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축구선수가 되려고 축구연습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것은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결혼한다는 것은 내 아내 내 남편에게만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사람의 능력 차이는 2-3배에 불과하지만, 집중력의 차이는 10-100배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집중력이 더 중요합니다.

운동경기에서 집중력은 승패를 좌우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할지라도 운동경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경기에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능력이 없다고 변명할 것이 아니라 집중력을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집중력이 흐려진 다윗

다윗은 하나님께 언제나 집중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을 향한 집중력이 흐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 가운데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에 집중합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자신이 어떻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다윗이 사울을 살려 주었을 때, 하나님께로 향한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첫 번째 다윗이 사울을 살려주었을 때, 사울은 다윗에게 울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다시는 다윗을 뒤쫓지 않을 것처럼 말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뒤쫓는 일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다윗은 두 번째 사울을 살려줍니다. 이번에도 사울은 잘못했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말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고, 결국 사울의 손에 자기가 잡힐 것이라는 염려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집중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과 블레셋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환경과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였기에, 다윗은 험난한 인생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후 블레셋에 망명한 다윗의 삶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기스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한 번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서 떠난 이후 아멜렉족속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시글락을 침입해서 큰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었습니다.

어디에 집중하느냐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옛말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두 가지에 동시에 집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만 집중해도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가지를 집중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무리라는 것입니다.

집중력을 가진다는 것은 한 곳에 마음을 쏟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마음이 가는 곳에 돈도 행동도 따라가게 됩니다. 곧 사람이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인생의 방향은 누가 제시해 준다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방향은 자신이 잡아야 합니다.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집중한 것에 끌려가게 됩니다. 내가 집중하는 것에 마음도 시간도 물질도 쏟아붓는데, 당연히 그것이 나의 삶의 이끌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은 하나님께 향하게 됩니다. 돈에 집중하면 우리 인생의 방향이 돈을 향하게 됩니다. 권력과 명예에 집중하면 인생의 방향이 그것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인생의 방향이 어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향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환경에 집중하자 그는 살 궁리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라

지금 어디에 집중을 하고 계십니까? 코로나19라는 환경에 집중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교회와 교회와 관련된 단체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우리가 그런 어려운 환경에만 집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하게 됩니다.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듭니다. 다른 나라에서 백신 접종을 한 후에 죽거나 이상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집중하면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두려워집니다.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에 계속해서 집중하면 교회가 싫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는 만큼 하나님도 우리를 집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몰입하라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을 몰입이라고 합니다. 몰입하면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몰입을 하면 우리 안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나옵니다.

몰입한다는 것은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것과 같습니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지 않을 때는 단지 햇빛은 따뜻함을 주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면 불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산만하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이것저것 다 신경을 써다 보니 정작 해야 할 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산만하면 에너지가 분산되기 때문에 목표한 일을 이루기가 힘이 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가 몰입해서 이루어야 할 일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먼저 우리가 어디에 몰입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몰입해야 합니다.

우리 생각과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점이다

군대에 가면 사격을 합니다. 사격을 할 때 총구를 목표물에 정확하게 조준을 했다고 해서 그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격을 하는 군인들은 다 목표물을 보고 나름대로 정확하게 조준을 해서 총을 쏩니다. 그런데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목표물에서 벗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영점을 제대로 잡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총에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했을 때 명중시킬 수 있도록 가늠쇠를 조정하는 영점이 있습니다. 이 영점이 제대로 맞추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목표물을 정확하게 조준을 해도 맞출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의 영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점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우리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도, 우리의 수고는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집중해야 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셔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은 예수님께서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으면 방황한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에 보면 ‘다시는’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4절에서는 사울이 다윗이 블레셋으로 도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는 다윗을 잡는데 집중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사울의 모든 삶의 초점은 다윗을 죽이는데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다윗이 블레셋으로 도망가자 사울은 그 초점을 옮기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다윗을 향한 사울의 초점이 하나님께로 향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할 때 싸인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싸인을 알아차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초점을 옮겨야 합니다. 문제는 그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져야 하는데,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인생을 방황하며 살아갑니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막에서 나침반이 없으면 방황하듯이 인생의 나침반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것에 집중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에 집중하면 해답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할 때 인생의 해답이 있습니다.

사랑의 끈으로 묶고 계신 하나님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무엇을 할 때 먼저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블레셋으로 가는 문제를 두고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다윗은 기도한 것이 아니라 환경에만 집중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을 했습니다. 결국 그 마음에 집중함으로 블레셋 망명을 결정합니다.

이런 상황가운데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십니다. 분명히 다윗을 책망할 수도 있고 다윗의 가는 길을 막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스스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새롭게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어도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이 그 가치를 알면 그 가치를 인정합니다. 우리가 예수님만이 우리가 살아야 할 진정한 가치라고 해도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향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은 채 그가 가는 길로 그 끈을 풀어두십니다.

다윗을 묶고 있는 사랑의 끈은 우리에게도 묶여 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염려와 두려움이 있으십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매어있는 그 끈이 끊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입니다.

단순한 삶을 살라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 단순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이 능력이 있는 것은 단순함 때문입니다. 복음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복음이 복잡했다면 이렇게 빨리 온 세상 가운데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순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일로 복잡하면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려면 나의 삶의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내려놓아야 할 것 내려놓아야 하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빨리 버려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집중’과 ‘단순함’ 이게 내 원칙 중 하나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어렵다. 생각을 명쾌하게 해 단순하게 만들려면 굉장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그럴 가치가 있다. 일단 단순함에 도달하면, 산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어렵다고 말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라고 말했습니다.

단순함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함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명료합니다.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치열함이 없이 명료함을 얻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뚫어질 때까지 관찰해야 통찰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통찰력이 있어야 새로운 돌파구가 뚫립니다. 단순함은 생각이 단순하다고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은 복잡하지만 수많은 사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의 핵심만 남겨 놓고 모두 걷어낼 때, 비로소 본질만이 남아 있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에 남은 본질은 명쾌하고 단순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임 받은 믿음의 선배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삶은 단순했습니다. 단순했기 때문에 늘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계산 없이 그냥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의 가지치기를 하고 단순해질 때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묻는 훈련을 하라

둘째, 하나님께 묻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내가 필요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늘 하나님께 묻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다윗은 블레셋으로 가는 문제를 앞두고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보았다면 블레셋으로 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이 처음에는 잘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도 어떤 대답을 하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 가운데 확신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항상 묻는 다는 것은 순간순간을 기도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순간순간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하나님께 물어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는 대로 행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집중력이 십자가를 지게 하였고 그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화살은 뒤로 당겼을 때만 앞으로 날아 갈 수 있다. 삶이 너를 어려움으로 잡아끈다고 생각될 때, 그건 삶이 너를 더 멋진 곳으로 보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계속 집중하고 목표를 향해라.”

이 말을 신앙적으로 적용을 해 보면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 더 집중하라는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어려움 가운데 더욱더 하나님께 집중할 때 화살이 잡아당긴 만큼 더 멀리 날아가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더 멋지게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단순한 삶과 하나님께 묻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더 집중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는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감사인생(공저)’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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