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영지주의 이단의 영혼선재설 그대로 채택
몸과 영혼 이원론적 구분, 현실 윤리 도외시할 위험
본회퍼 창세기 해석, 인간은 존재의 기원 알지 못해
오로지 하나님만 창조 섭리와 존재 원리 모두 파악

영화 소울
▲최근 극장가에 개봉된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
◈신학과 영혼: 애니메이션 <소울>이 채택한 영혼선재설

최근 코로나 확진자 급증으로 인해 주변에서 영화관을 방문하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기대작들은 줄줄이 개봉을 미루고 있는 가운데, 그 틈새를 노린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주간 일별 박스오피스 1위에 디즈니-픽사의 <소울>, 2위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3위에 <명탐정 코난: 진홍의 수학여행>이 올라 있다.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상위권을 모조리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디즈니-픽사의 <소울>은 인간의 영혼과 존재의 목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서사 면에서 관객들에게 상당히 높은 평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적 인간이해 관점으로 볼 때 서사보다 더 관심이 가는 바는, 이 작품이 선보이는 인간의 영혼과 탄생 원리에 대한 설정이다.

애초 디즈니 작품인 까닭에 기독교적 영혼론을 반영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사뭇 놀란 점은 <소울>이 기독교 역사상 숱하게 등장했던 영지주의 이단들이 수용해 발전시킨 플라톤주의 영혼선재설을 그대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울>의 시나리오 작가가 영혼선재설에 대해 충분하게 인지하고 서사를 풀어나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혼선재설이란 영혼들이 모여 있는 세계가 따로 있어, 이 땅에 인간이 새로 태어날 때마다 그 영혼들이 태아 혹은 신생아의 몸에 깃든다는 믿음을 통칭한다.

한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그 영혼이 앞서 존재하고 있다는 이 가르침은 플라톤의 환생 이론을 해명하기에 적합하다.

죽은 이의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갔다가 물질세계의 유혹에 끌려 새로운 몸으로 환생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었으니, 환생 이론과 영혼선재설은 완벽하게 서로를 보완하는 영혼론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영혼유전설을 정설로 지지해 왔다. 물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유전설이 스토아 유물론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전적으로 지지하는데 주저함을 보였지만, 이후 중세 가톨릭 교회는 영혼유전설이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데다 플라톤주의 환생 이론이나 영혼선재설을 반박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하여 영혼유전설을 올바른 믿음으로 인정했다.

영혼선재설은 고대에는 기독교 내부에서 자생한 영지주의 이단들이 주로 지지했고, 오늘날에는 통상 몰몬교라 불리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와 신흥종교 사이언톨로지에서 확고히 믿고 있다.

사이언톨로지 같은 경우 애초 플라톤주의 환생 이론과 유사하게 외계인에 의한 영혼 환생을 가르치는 까닭에, 어떤 의미로는 영혼선재설을 믿는 것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사이언톨로지는 그들의 교세 확장을 위해 미국의 연예,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집중 공략했다. 그 덕에 유명 배우, 프로듀서, 감독, 시나리오 작가 중 사이언톨로지 신도들을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출연하거나 제작한 영화나 TV 시리즈 가운데는 사이언톨로지의 교리를 반영하는 작품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소울> 역시 이와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듯하다. 실제로 미국에서 <소울>을 관람한 관객들 중에는 이 작품이 사이언톨로지 교리를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표명한 이도 존재한다.

톰 크루즈 사이언톨로지 scientology
▲사이언톨로지의 집회에서 강단을 맡은 영화배우 톰 크루즈. 미국의 연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사이언톨로지 신도들이 여럿 존재한다. ⓒ유튜브
◈신학과 윤리: 본회퍼의 창조론이 가르치는 기독교 윤리적 인간 이해

그렇다면 디트리히 본회퍼는 인간의 영혼과 존재에 대해 어떤 견해를 선보이고 있는가? 1933년 출간된 <창조와 타락>에서, 본회퍼는 특유의 실존론적 인간 이해에 입각한 기독교 창조론의 새로운 해석법을 선보인다.

여기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갈등은 전혀 논제가 되지 않는다. 본회퍼에게 있어 창세기에 기록된 인간 창조의 핵심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성립을 위해 하나님께서 어떤 섭리를 정해놓으셨는지, 그리고 그 섭리가 어떻게 인간에게 순종과 죄악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본회퍼의 창세기 해석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존재의 기원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유한성을 지니고 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인간과 세계를 창조하신 섭리, 그리고 그 존재 원리를 모두 파악하고 계신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존재를 지적으로, 의식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에 몰두하기보다, 스스로의 무지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계시와 계명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데 삶을 바쳐야 한다.

물론 이 계시와 계명은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실존적 현실 안에서 주어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와 계명의 핵심적인 내용은 신성과 세계의 존재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타인과 맞부딪치며 그들을 존중하고 자기중심적 인식 욕망과 지배 욕망을 포기하도록 하시는 것,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의 현실을 통해 주어지는 계시의 핵심이라는 것이 본회퍼의 주장이다.

본회퍼
▲본회퍼의 창조론을 담은 신학서, <창조와 타락>.
본회퍼는 무엇을 알아내고, 그 알아낸 지식으로 앎의 대상을 이용하고 지배하고 조작하려 하는 인간의 욕망이 끝내 선악과 계명을 범하는 원죄로 현실화되었다고 지적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든, 인간에 대해서든, 아니면 세계에 대해서든 자기 지식을 채워 만족하는 일에 집착하기보다 자기를 부인하고 타자와의 열린 관계에 헌신하는 순종에 힘쓸 것을 권고한다.

본회퍼는 인간을 바라봄에 있어 자신의 시대 독일 철학계 및 신학계를 주도하던 실존론적 입장을 따랐다. 실존론적 관점에서는 한 인간의 탄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현상적 지평 외에 달리 인간이 알거나 논할 수 있는 차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세 즉 천국이나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인 관점에서 그에 대해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실존론적인 인간 이해 관점에서 인간의 존재를 지탱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정황, 그 속에서 경험하는 체험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타자와의 관계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삶을 이루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이루는 존재자들과의 관계가 인간의 존재를 지탱하고 그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

실제로 이러한 사고는 내세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사르트르나 카뮈 같은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은 그들의 철학 체계를 내세에 대한 믿음을 전면 부정하는 데 활용했다.

본회퍼 역시 이런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론적 인간 이해에 입각해서 성경의 창조 기사를 해석한 이유는, 내세에 대한 믿음 못지않게 중요한 신앙의 요소, 즉 삶의 현실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책임지고 실천해야 할 신앙의 양심과 타자윤리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는 1933년 당시 나치의 정권 장악에 동조하고 환호하던 독일 내 기독교인들에 대한 경고와 자성의 목소리를 내려는 목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영화 <소울>에 대한 감상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볼 때, 이 작품이 채택하고 있는 영혼선재설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기독교의 전통 교의인 영혼유전설에 어긋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혼선재설처럼 몸과 영혼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사고가 자칫 인간 실존 가운데 맺어지는 현실의 관계, 현실의 윤리를 도외시하고, 자기 존재를 마음대로 누리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표출하는 데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소울
▲애니메이션 <소울>에 반영된 영혼선재설은 자기 존재를 중심으로 타자와 세계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지배하려는 비윤리적 삶의 방식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나’라는 존재가 우리 삶과 무관하게 이미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곧 자아의 존재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초월해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믿음은 곧 자아가 자기 삶에 관여된 모든 것에 대해 독존적 주체라는 확신을 낳기 때문이다.

이는 타자에 대한 자의적 판단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모든 비윤리적 사고의 대전제가 된다. 나치가 아리아 민족을 제외한 모든 민족을 존재 가치가 없는 열등한 민족으로 간주한 데는, 자신들만이 초월적이고 우월한 존재라는 존재적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본회퍼의 실존론적 인간 이해는 영혼에 대한 이론들을 자의적으로, 섣부르게 정립하는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처사를 비판하는 가운데, 타자에 대한 기독교적 윤리와 사랑의 실천을 신앙의 핵심 가치로 설정하는 지혜를 선사하고 있다.

이는 <소울>과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에 엿보이는 각종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인간 이해 방식의 맹점을 밝혀내고, 그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