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추위로 더 힘든 대표적 판자촌 구룡마을
“다음 달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라” 인사 나눠
40여 세대 직접 심방, 손과 발로 사랑과 복음 전해

김명혁 구룡마을
▲김명혁 목사가 소망교회 문양금 목사, 문순자 할머니와 함께한 모습. ⓒ이대웅 기자
설 명절을 앞둔 5일 오후, 김명혁 목사(84, 강변교회 원로)가 익숙한 발걸음으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강남 개포동 구룡마을을 찾았다. 코로나와 추위로 더욱 힘들 판자촌 동네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다.

김명혁 목사는 지난 6월 문득 구룡마을 생각이 났다고 한다. 강변교회 담임 시절 2-3번 봉사차 다녀갔던 곳이었는데, 코로나19로 힘든 지금 주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곧장 성금과 선물을 챙겨 택시를 타고 달려간 마을에서 처음 만나 길을 물었던 사람이 문순자 할머니(83)였다. 30여년간 이곳에 살며 통장을 지내기도 했던 문 할머니는 이곳 지리와 함께 동네 사람들 사정을 꿰뚫고 있었다.

김명혁 구룡마을
▲김명혁 목사가 문순자 할머니(오른쪽부터) 도움으로 선물과 성금을 나눠주고 있다. ⓒ이대웅 기자
문 할머니의 인도 아래 그는 선물과 성금을 골고루 나눠줬다. 이후 매달 첫째 주 토요일 오전마다 손수 낡은 승용차를 타고 구룡마을을 직접 찾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아 선물을 건네고 있다.

구룡마을은 30여년 전인 1980년대 도심 개발로 쫓겨난 철거민들이 집단 이주한 곳으로, 제대로 된 건물 하나 없는 상태였다. 비포장 골목 사이사이로 뼈대만 남은 집들, 추위를 막으려 덕지덕지 붙어놓은 각종 나무와 구조물이 즐비했고, 매캐한 냄새와 함께 곳곳에 연탄이 쌓여 있었다.

김명혁 구룡마을
▲마을 너머 보이는 초고층 건물들. ⓒ이대웅 기자
특히 지난 2014년 11월과 2017년 화재가 발생해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했고, 그나마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1,600여 세대에 달하던 사람들은 이제 300-400여 세대만 남아 있다. 지척에 보이는 도곡동의 즐비한 고층건물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이 벌써 9번째 방문. 이날은 여느 달과 달리 금요일 오후에 마을을 찾아 ‘깜짝 방문’이 됐다. 그래서 동네 사랑방 구실을 하는 곳에도 여느 때보다는 사람이 적었다.

김명혁 목사는 동네 곳곳을 직접 누비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반갑게 인사한 뒤 3만원과 직접 사온 빵을 하나씩 전했다. 김 목사는 선물을 나눠준 후 악수와 포옹을 하기도 하고, ‘하하하 호호호’를 외치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김명혁 구룡마을
▲구룡마을을 지키고 있는 소망교회. 성도 5-6명이 출석하고 있다고 한다. ⓒ이대웅 기자
김 목사의 방문이 익숙해진 주민들은 스스럼없이 그를 맞이하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령의 주민들에게는 “다음 달에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일을 나가 집에 없는 주민들 집에는 문순자 할머니가 성금과 빵을 지정된 장소에 놓아두기도 했다.

그곳에는 나사렛 교단 ‘소망교회’가 여전히 주민들과 함께하기 위해 남아 있었다. 김 목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올해 81세의 문양금 목사는 “예전부터 설교집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았던 목사님께서 이렇게 매달 직접 찾아와 섬겨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이곳을 지키는 이유를 묻자 “성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추운 날씨에도 그렇게 40여 세대를 1시간여 동안 직접 ‘심방’한 후, 그는 다시 차를 몰고 떠났다. 말 대신, 손과 발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한 것이다.

김명혁 구룡마을
▲김명혁 목사가 구룡마을을 가가호호 방문하는 모습. ⓒ이대웅 기자
이 외에도 김명혁 목사는 지난 20여년간 연변 조선족 고아 150여명을 도왔으며, 회장으로 섬기던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매년 12월마다 장애인, 노숙인, 탈북민, 홀사모와 선교사 등에게 사랑의 성금을 전달하는 일을 주관하는 등 이웃 섬김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목회 은퇴 후에는 직접 차를 몰고 전국 곳곳의 작은 교회들을 찾아 말씀을 전하면서 선물을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