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부르짖는 이들 더 많은 불법·탈법과 축재와 악행
‘내로남불’ 위선과 적폐들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 경악
치부나 잘못 드러나면 부인할 뿐, 부끄러워할 줄 몰라
“실수, 죄송합니다” 한 마디 말 기대한 사람들 바보 돼

촛불혁명 민주정권 무슨 자격으로 비난하느냐 삿대질
개혁은 자기 부인부터 먼저… 남들 눈 속 티만 잘 찾아

문재인 조국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다친 이(The Wound)’라는 필명의 그리스도인이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코너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갑니다. 범상치 않은 글솜씨로 교회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주요 이슈들을 쓴소리와 함께 성경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대안을 모색해볼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보통 사람으로서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한 마디 지껄여 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는 그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오래 전 북한군 병사 하나가 배가 고파 임진강으로 뗏목을 타고 탈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유 대한민국의 실황을 목격하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시종 “여기는 천국입니다”를 되뇌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한국 기자회견장에 나타났습니다. 한 기자가 대뜸 그에게 “제아무리 꽉 막힌 사회라 해도 김일성의 폭정을 분별할 수 없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로 그때 북한군 병사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면서 좌중을 향해 비통한 심정의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지금도 그 말이 귀에 생생합니다. “제가 아무리 배가 고파 탈북을 했지만 위대하신 아바이 수령 동지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김일성 수령을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는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는 김일성에 대한 세뇌교육(洗腦敎育)을 받고 자랐습니다. 한 번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것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쉽게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입니다. 세뇌된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존재가 김일성을 대체하지 못합니다.

세뇌는 문자적으로 ‘머리(뇌)를 세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brainwashing’이라 합니다. 라틴어에선 이를 ‘comecocos’라 하는데, ‘이성을 잃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불어로는 ‘쎄뉴(saigneux)’라는 말이 ‘세뇌’라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피가 좀 모자란다’는 뜻입니다. 이런 단어들을 의미적으로 연결해 보면, 세뇌는 ‘결국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삭감하거나 멸절시켜 좀 모자란 인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집단은 자신에게 속한 무리를 일정한 법칙과 가치관 혹은 강령 등으로 일치시키기 위해 훈련하고 규범적 집단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집단적 규범과 가치들이 이웃 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가치관과 동떨어지거나 상이한 양상으로 실존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사건건 보편적 사회와 부딪치기 마련입니다.

혹자는 이러한 보편 사회에서의 별스러운 일탈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혹은 반드시 누려야 하는 특별한 자유라고 항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혹자는 감상적인 측면을 부각시키어 예술적으로 혹은 아름다운 파격으로 승화시켜 긍정적으로 평가할지 모릅니다.

좋습니다. 인간에게 부여된 사상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권입니다. 그러나 그의 세뇌된 사고와 가치관과 행동 등이 반사회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기존 사회의 규칙과 정신을 부정하고 대항하고, 되레 기존 사회의 질서를 뒤엎어 반동적인 혁명을 추구하려 한다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과연 이런 부류가 정상적인 존재인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이런 파열음을 내는 목소리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함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갑자기 몇 가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엔 그들이 내건 ‘적폐청산’을 지난 정권에서 일어났던 모든 잘못된 일들에 대한 깨끗한 청소작업이라 믿고 많은 국민들이 지지했습니다.

오랜만에 맑고 청렴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듯했습니다. 커피잔을 들고 참모들과 청와대 뜰을 거니는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들을 흐뭇하게 만든 그림이었습니다.

그 결과 선거에서도 정부 여당은 일방적으로 지지를 받았습니다. 국회 의석을 거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는 일에 국민들이 크게 한 턱 쏜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점점 이들에 대한 꿈과 기대가 깨지고 있습니다. 혹시 이들이 가짜가 아닐까 의구심을 가집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가 아닐까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합니다.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이 오히려 더 많은 불법·탈법과 축재와 악행과 위선과 적폐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이 경악하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이 이들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학자들은 이들의 행태를 두고 ‘아시타비(我是他非)’라 조롱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자기들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은 자신들의 치부나 잘못이 드러나면 하나같이 부인하거나 숨기거나 왜곡하거나 본질을 흐리거나 엉뚱한 곳으로 공격의 화살을 날리면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조국
▲‘자유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자’라는 답변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 장면(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크투 DB
수십 개의 혐의를 받고 수사를 받고 재판에 처한 전직 장관은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고 있습니다. “살다 보니 실수하고 잘못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을 기대한 보통 사람들이 바보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특정한 사상에 세뇌되어 여전히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저주합니다. 자신들의 모든 행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의라고 강변합니다. 감히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민주정권을 너희들이 무슨 자격으로 비난하느냐고 삿대질을 합니다.

무엇보다 이들의 개혁은 시종 반성경적입니다. 주님은 개혁이 자기를 부인하는 일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남의 눈의 티는 잘 찾아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눈 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이보다 더한 별종들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저는 가끔 예수님의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읽고 묵상하기를 좋아합니다. 주님은 철저히 이 땅에서의 사역들이 모두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7장 12절에서 특별한 말씀을 언급하십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고 선언하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주님은 모든 사람이 다 보전되어야 함을 언급하시면서, 오직 ‘멸망의 자식(the son of destruction)’만은 멸망해야 함을 언급하셨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도 우리 가운데 우리와 전혀 본질이 다른 족속, 이른바 ‘별종(human of another kind)’이 있음을 알리면서 우리는 이들과 어울릴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6:15-16)”.

저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배운 대로 이 나라의 대통령과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기도하는 대로의 대통령이 아니라, 남의 다리 긁는 소리만 하는 대통령이라서 정말 속이 상합니다.

하나님, 우리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지도자들과 이 땅의 못난 정치인들을 고쳐 주옵소서. 아멘.

다친 이(The Woun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