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교회 23일 비대면 예배
▲비대면 예배 당시 현장 예배 참석 불가를 알리고 있는 한 교회 모습(본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크투 DB
지난 1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월 2일 0시를 기준으로 7만 8,844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격리되었고, 그들 대부분은 존엄사의 기본적 예우도 받지 못한 채 무려 1,435명이나 사망하여 화장되고 말았다.

이러한 위기로 인해 언택트 사회는 지속되고 있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강제 방역지침에 지쳐가고 있고, 국민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여당 대표가 2일 오전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 양극화 심화, 불평등의 심화를 비롯하여 비일상적인 위기 상황이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에서 신앙인들은 환난 중인 이웃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교회가 세상의 아픔을 염려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도리어 세상이 교회를 싸잡아 걱정하는 거꾸로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일 뉴스에 거듭 보도되는 종교모임에서의 코로나 확산과 관련하여,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 간의 심각한 반목과 대립구도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신앙인들의 예배 습관을 집중 공격하는 상황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종교로 인해 겪고 있는 환난을 이스라엘과 비교해 보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이스라엘 3대 왕 솔로몬의 정책 실패로 야곱의 자손은 분열하게 되었다.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다윗왕조의 혈통으로 뭉쳐진 유다 지파와 베냐민 반지파가 연합하여 통치하는 남 유다, 그리고 남유다에 맞선 11지파가 똘똘 뭉친 북 이스라엘로 분단되었다.

남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역 밖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하듯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사야가 이사야서 9장 1절에서 언급하듯, 스불론과 납달리 땅 곧 갈릴리 지역이 이방인들의 땅이라고 유다인들은 멸시했던 것이다.

훗날 앗시리아 제국은 갈릴리인들과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바빌로니아 제국은 남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은 불타 버렸고 성전 제사가 강제 중단되고 말았다. 포로가 된 이들은 회당에 모여 야웨 신앙을 후손에게 전수하게 되었고, 이렇게 디아스포라(diaspora)가 시작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든든히 서 있을 때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숭배를 비롯한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삶을 살았다. 안식일만 준수하면 율법적으로 의롭다고 착각하는 영적 교만에 빠져 버렸다.

구약의 예언자들만 아니라 예수가 지적한 것이 바로 이렇게 성전의 본질적 기능과 의미를 벗어난 종교의식 집중에 대한 비판이었다. 결국 이들은 금빛으로 찬란한 예루살렘 성전이 빼앗기고 파괴된 후에야, 초라한 벽돌 건물의 회당을 통해 소수의 신앙을 회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아픔을 겪은 후 포로에서 귀환한 뒤 이스라엘에는 두 부류의 운동이 발생하였다. 하나는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솔로몬 성전 수준으로 화려하게 재건하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소박하게 회당을 세워가는 일이었다.

여전히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성전을 보유하고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기에 의롭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하는 갈릴리 회당의 사람들은 경멸하곤 하였다. 그들의 영적 교만은 깨트려지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갈릴리는 지정학적으로 바빌로니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교차하는 통과지역이었기에, 예루살렘 사람들에게는 ‘이방의 갈릴리’로 불렸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갈릴리를 폄하했던 것에는 종교적 우월감이 내포된 영적 교만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정작 예수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자랐고, 사역의 대부분을 그들과 함께 하였다. 그리고 예수는 부활 후 승천하기 직전에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디아스포라를 명령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예루살렘 성전 제사 중심이 아니라 흩어지는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스어 ‘διασπορά(디아스포라)’는 파종한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원인에 의해 타 지역으로 흩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 2천년 역사는 디아스포라의 역사이다. 땅끝까지 찾아가는 디아스포라!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작은 공동체 전체의 기존 질서와 형식을 파괴시키고 있다. 온라인으로 재택근무를 대체하는 온택트, 비대면 소통의 언택트 시스템이 일상화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발작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는 곳 가운데 하나가 교회이다. 교회는 예배 모임을 근본으로 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향후 1년간 더 집합금지가 진행되면, 교회의 절반 이상이 저절로 폐쇄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교회 성장의 발목을 잡고 십자가가 사라지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 정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금으로 치장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동물 제사 중심의 열정을 비판했던 예수의 기본 마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 회복을 외치기는커녕,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이 몽땅 무너질거라고 선포했던 그 뼈아픈 메시지의 핵심을 성찰해야 한다.

예수는 진정한 인애를 잃어버린 종교인들이 형식적 습관에 따라 날마다 동물 제사로 피비린내나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종식을 선언함과 동시에, ‘내 이웃에 대한 관용과 포용과 사랑’을 적극 실천하는 기독교 정신을 확장시키는 운동을 주창했다.

그래서 갈릴리 지역을 다니며 3년간 제자를 선발하고 가르치기 시작했고, 예수의 그러한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에클레시아’로 확장시켜 나가게 되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회의 양적 성장이 무너지고 있음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본질을 벗어난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유럽의 중세 교회가 박물관이 되어 있음도 역사적 산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한국교회도 예루살렘 성전이나 유럽교회의 모습과 판박이가 될 수도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교회 중심의 예배 모임을 디아스포라로 승화시켜야 한다. 내 자신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먼저 만드는 시간이 될 시점이다.

그리고 코로나19의 구덩이에 빠져 죽어가는 이웃의 아픔에 함께 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에게 생존의 희망을 꺾는 코로나 확산이라는 실수를 혹시라도 범하지 않도록 신앙인으로서 행동거지를 정말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감사-존중-나눔’ 운동을 확산시키는 행복 코디네이터 운동도 누구나 적극 동참해야 할 힐링과 웰빙의 솔루션이라고 제안하면서!

김용진
▲김용진 교수.
김용진 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복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