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훈
▲백성훈 목사가 비대면 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시편 76편


하나님 나라는 결코 추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같이 이 은혜를 온전히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도망 중에도 예배했고, 투옥 중에도 찬양했으며, 갇혀 있어도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을 가진 시편의 시인들이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백으로 시를 썼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편 76편은 앞선 시편 74편과 75편의 내용들과 연결됩니다.

이제는 그 찬양의 대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말할 때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그 나라가 존재하는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 추상적인 개념이 과연 지금의 힘들고 지친 나의 인생에 얼마나 실제적인 도움이 될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 나라를 외치면 큰 소리로 아멘으로 화답하지만, 누군가 다가와서 정말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물으면 아무 대답도 못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그렇게 추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시편을 통해 시인이 이해한 하나님 나라를 알아보며,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개념을 이해하게 될 것이기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가장 먼저 2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시편 76:2)”.

여기서 ‘장막’과 ‘처소’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장막( סֹךְ, 소크)과 처소(מְעוֹנָה, 메오나)는 사자와 같은 야수들이 사는 굴을 의미합니다.

흔히 사자와 같은 야수는 세상의 악인들을 말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인데, 여기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크고 강하신 속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신 악인들을 표현할 때는 3절에서 화살, 방패, 칼, 전쟁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사자와 같은 야수처럼 강하시기 때문에, 화살과 방패, 칼과 전쟁에 모두 승리하신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묵상할 때, 가장 먼저 위대하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며,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힘과 권력을 가지고 대적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시인은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건을 묘사합니다.

“마음이 강한 자도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 장사들도 모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손을 만날 수 없도다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시편 76:5-6)”.

이 장면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과 역대기에서 앗수르 산헤립이 침략했을 때를 연상하게 합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홍해를 만났던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광야를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나서 더 이상 전진할 수 없게 됩니다. 뒤로는 애굽의 왕이 군대를 이끌고 말을 타고 쫒아오던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행하셨고, 애굽의 군대는 흑암 속에 가두어 꼼짝도 못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뒤늦게 따라온 애굽 군대는 홍해를 건너다 다시 차오른 홍해의 깊은 물속에 빠져 모두 죽게 됩니다.

시인은 이 상황을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라고 표현합니다. 또 역대서에서 앗수르 산헤립이 침략했는데 이사야와 히스기야 왕이 함께 기도하니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 진영을 초토화시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현실적으로 이기기 불가능했던 상황에서도 대역전승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구약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신약 시대로 와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에 의해 전쟁의 승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쫒았으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그 나라에 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않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이 외에도 전쟁터에서 대적들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을 계속 반복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전쟁의 결과 하나님이 대적들을 심판하시고(8절), 온유한 자를 구원하십니다(9절). 또 세상의 왕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12절)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현실에 이미 임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면 2가지 중요한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로 가는 축복, 또 하나는 하나님 나라가 찾아오는 축복입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로 가는 축복은 우리 육신이 죽으면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고, 그 다음 하나님 나라가 찾아오는 축복은 그 나라의 은혜가 우리 현실에 임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는 은혜가 그것입니다. 우리 현실에 찾아온 그 은혜는 때로는 우리의 대적을 물리치고,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을 채우며, 때로는 우리가 죄로부터 돌이키게 합니다.

지금 현대 시대에 임하는 은혜는 어쩌면 구약의 전쟁과 신약의 치유 사건들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은혜로 찾아오는 것 같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오히려 성경의 많은 역사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요즘은 전쟁의 시대가 아닙니다. 질병도 의학의 발달로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마음의 병을 통제할 수 없고, 마음이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시대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그 마음을 온전하게 회복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가 임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우리 현실에 이미 임했고, 또 임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은혜를 사모하며 악인의 형통과 조롱 가운데서도 우리는 인내할 수 있고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임하고 있습니까? 혹시 내 눈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그 은혜가 임하고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은혜 가운데 나의 영혼이 평안하며 기쁨과 소망을 발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시편의 위로>, <시편의 소망>, <팀사역의 원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