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이란,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
잘 나가던 사람들 한순간 추락, 결국 자존감 문제
성인들도 얼마든지 이타적 자존감 향상 가능해

이상준 이타적 자존감 수업
▲이상준 작가는 “구약에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은 생존적 자존감, 이기적 자존감, 이타적 자존감을 모두 내포한 말씀”이라고 말했다.
<해피닝>을 쓴 이상준 작가는 비슷한 시기에 <이타적 자존감 수업>도 출간했다. 이 책은 ‘좋은 인성이 아이의 성공을 이끈다’는 슬로건 아래 공부력과 창의력, 사회성을 높이는 인성교육의 비밀을 탐구한다.

특히 뇌과학 최신 연구 결과를 수용해 뇌 속에 이타심과 이기심을 담당하는 부위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초로 건강한 자존감 함양과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8가지 부모 역할 등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이상준 작가는 서울대 경영학과 및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10여 년 전부터 왕따 문제 등 심각해지는 우리 사회의 인성 회복 방안을 고민하던 중, 서울대 명예교수협의회 인성교육집담연구회 간사로 참여하면서 인성교육에 본격 뛰어들었다.

저자의 10년 연구를 집대성한 이 책은 ‘인성 챙기다 우리 애만 손해 보면 어떡하죠?’, ‘인성교육이 너무 방대해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등 어려움을 토로하는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 다음은 저자와의 인터뷰 내용.

이타적 자존감 수업
이상준 | 다산에듀 | 276쪽 | 15,000원

-왕따, 학원폭력 등이 만연한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인성교육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긴 하지만, 어떻게 시켜야 할지 막막한 느낌이 듭니다. 인성이라는 주제가 너무 방대하고 추상적이어서, 한 권의 책으로 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네, 잘 지적하셨습니다. 그동안 교육부를 비롯한 우리 교육계와 학부모들이 인성교육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정직, 친절, 배려 등 인성을 구성하는 하위 덕목들이 너무나 많다 보니 이걸 어떻게 다 가르치나 하고 그 실행에 어려움을 토로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인성을 ‘이타적 자존감’으로 정의했습니다. 인성이란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정의해 보니, 인성교육으로 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좋은 덕목들을 인성에 다 포함시키려 어렵게 접근하면 의욕은 생길지 몰라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시작 지점을 찾지 못해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자존감이 곧 인성’이라고 주장하실 만큼 자존감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자존감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사람도 본질적으로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명을 영위하려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이어나가려는 마음, 즉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삶의 의욕이죠.

가령 살고싶은 마음이 적으면 생명을 스스로 마감하거나 아니면 마지못해 최하의 삶을 연명하고, 심지어 남을 해하고 자신도 망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반면 삶의 의욕이 높으면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자기 발전에 힘쓰기도 하고 타인에게 잘 대해줌으로써 자신도 더 잘 되려고 합니다.

주위에서 삶의 의욕이 없는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그 삶이 엉망진창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삶의 의욕은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기도 하고, 성공과 행복 같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삶의 원동력이나 에너지라 볼 수 있는데, 사람의 생명과 삶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이런 요소들를 결정하는 근본 요인에 ‘자존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자존감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자존감’이 자신감, 자부심, 자존심 등 ‘자(自)’로 시작하는 여타 용어들과 대동소이하게 보여 그런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존감은 여타의 ‘자(自)’ 용어들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중차대한 개념입니다. 자존감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로 볼 수 있는데, 세상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문제들의 원인을 양파껍질 벗기듯 계속 파헤치다 보면 결국 그 중심에 자존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부정적 사건들은 자신의 가치가 남에 의해 깎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우리가 돈, 외모, 권력, 지위, 지식을 그렇게도 추구하는 이유도 육체적 쾌락을 얻기 위함이 있지만, 자존감을 높이려는 이유가 훨씬 더 많습니다. 명문대를 가도, 부자가 되도, 대통령이나 재벌, 스타가 되도 결국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으면 삶의 질이 뚝 떨어집니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한 순간에 추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존감의 추락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우린 하루에도 몇 번씩 자존감 문제와 부딪힙니다.

가령 누구와 기분좋게 대화하다가도 상대방의 말 한 마디에도 싹 삐치거든요. 상대방이 나의 가치를 낮췄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나의 가치, 즉 자존감에 매우 예민합니다. 가히 모든 인생 문제는 자존감으로 귀결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타인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가령 자존감이 아주 높은 사람에게 ‘다른 사람에게 한 번만 해를 끼치라, 그러면 1조원을 주겠다’ 해 보십시오.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존감의 크기와 인성 수준은 정확히 비례합니다.”

이타적 자존감 수업
-책에 자세히 나오지만, 이기적 자존감과 이타적 자존감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자존감을 두고 흔히들 ‘자존감이 높다, 낮다’는 식으로 말해 왔습니다. 이것은 자존감을 자신감과 같은 단순한 개념으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뇌과학을 공부해보니까 자존감을 그런 단순 개념으로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뇌가 전체적으로 동질적이지 않고 부위별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체 뇌는 고차원적 기능을 하는 대뇌 피질(지성의 뇌, wise brain)과 원초적 본능을 관장하는 변연계(야성의 뇌, wild brain)로 구분되는데, 지성의 뇌가 추구하는 자존감의 방향과 야성의 뇌가 추구하는 자존감의 방향이 서로 다릅니다. 따라서 자존감도 그냥 ‘자존감’을 하나로 보면 안 되고, 이기적 자존감과 이타적 자존감으로 나눠서 봐야 합니다.

한 개인이 자존감, 즉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기적으로 높이는 방법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타적으로 높이는 방법입니다.

야성의 뇌는 이기적으로 자존감을 높이는데, 이것이 곧 ‘이기적 자존감’입니다. ‘나는 남보다 가치가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입니다. 이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들은 상대를 욕하거나 깔아 뭉갭니다. 또 돈, 외모, 권력, 지위 등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함으로써 남보다 더 가치 높은 사람이 되려 합니다.

이렇게 감정과 욕망을 앞세우다 보니 까칠해지고 부도덕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질과 쾌락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지만, 만족과 충분함이 없고 공허해집니다.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지요.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했지만, 오히려 동물 수준으로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성의 뇌는 이타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하는데, 이것이 ‘이타적 자존감’입니다. ‘나는 세상에 도움을 주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의식입니다. 이타적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택합니다.

인간은 선행을 할 때 몸이 붕 뜨는 것같은,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 부르는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입니다. 자신의 가치가 보통 사람을 뛰어넘어, 천사의 수준으로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이기적 자존감의 쾌락(pleasure)과 이타적 자존감의 행복(happiness)은 별개의 메커니즘을 보인다는 사실이 최근 뇌과학적으로 입증됐습니다. 즐거움의 크기도 행복이 쾌락보다 훨씬 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기적 자존감만 높은 사람과 이타적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차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노숙자에 대해, 이기적 자존감만 높은 사람은 그를 무시하고 쫓아냅니다. 반면 이타적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불쌍하게 생각하고 도와줄 마음을 가집니다.

인성교육 관련 예를 보면, 가난한 집 아이들 중 이기적 자존감만 높은 아이는 부모를 원망합니다. 반면 이타적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꼭 성공해서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정인이 사건’을 봐도 부모가 정말 중요합니다. 부모의 ‘이타적 자존감’도 지속적인 향상이 가능할까요.

“부모의 이타적 자존감도 지속적으로 향상될 수 있습니다. 정인이 사건은 너무 마음 아픈 경우입니다. 보통 이기적 자존감만 높은 사람이더라도, 친자식에겐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정인이 사건은 친자식이 아닌데다, 양부모가 이타적 자존감이 이례적으로 낮은 사람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 같습니다. 부모가 이타적 자존감이 높을수록, 아이도 이타적 자존감이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좋은 인성의 부모에게서 좋은 인성의 자녀가 나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모 여부를 떠나서, 이타적 자존감이 높은 사람 자체가 전체 인구 중 소수입니다. 하지만 이타적 자존감이 높지 않으면 부모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이타적 자존감도 지속적으로 향상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뇌가소성(neuroplasticity)’ 때문입니다. 성인의 뇌도 얼마든지 좋게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군대에 갔다 오면 사람 된다’는 말 들어보셨죠? 그게 뇌가소성의 한 예입니다.

이타적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이타적 자존감 등의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하는 ‘지성의 뇌’가 이기심 같은 본능을 관장하는 ‘야성의 뇌’를 통제하는 힘이 약합니다. 그래서 야성의 뇌의 감정, 욕망들이 조절되지 못하고, 말과 행동으로 쉽게 드러납니다.

주변에 욕심 많은 사람, 화 잘 내는 사람들 있죠? 지성의 뇌의 통제력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쫄병이 그렇게 하면, 고참들이 가만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그래서 감정과 욕망, 이기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참게 됩니다. 즉 지성의 뇌가 억지로 통제력을 발휘하게 되지요.

그렇게 몇 년 참는 훈련을 하다 보면, 근육운동처럼 뇌의 통제력이 길러집니다. 지성의 뇌가 통제력이 강해지는 것과 이타적 자존감이 높은 것은, 둘 다 ‘좋은 인성’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의미입니다. 결국 이타적 자존감이 입대 전보다 더 높아져서 제대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가지기 전엔 잘 참지 않던 사안들이 있더라도, 부모가 되면 자식 때문에 참게 되거나 자식 교육을 위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모가 되면서 이타적 자존감이 좀 더 높아진 것입니다. 참는 훈련처럼, 지성의 뇌의 통제력 강화 노력을 많이 할수록 이타적 자존감도 비례해서 높아집니다.”

-‘주는 사랑’, ‘이타적 자존감’이야말로 성경과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질문입니다. <이타적 자존감 수업> 책이 크리스천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지만, 저술 과정에서 여러 예수님 말씀들이 생각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이기적 자존감과 이타적 자존감을 비교하시면서, 이타적 자존감이 더 좋다는 말씀을 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천국의 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만, 현세에서의 복도 의미한다고 봅니다.

‘주는 것’이 이타적 자존감이고, ‘받는 것’은 이기적 자존감입니다. 물질적 쾌락 측면에서 보면 ‘주는 것’은 손실이고, ‘받는 것’은 이득이지요. 하지만 정신적 행복 측면에선 ‘주는 것’은 이득이지만 ‘받는 것’은 이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 이슈는 자존감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자기효능감’입니다. 자존감을 자동차에 비유해 이타적 자존감을 SUV, 이기적 자존감을 세단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자동차가 엔진 같은 여러 부품으로 구성되듯, 자존감도 ‘자기효능감’ 같은 여러 요소들로 구성됩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은 자신이 무언가에서 쓸모나 효용가치가 되는 걸 말합니다. 타인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은 ‘나는 세상에 도움을 주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이타적 자존감을 향상시키는데, 특히 이타적 자존감 구성 요소 중 자기효능감을 높여줍니다. 타인에게 쓸모 있는 능력을 가진 일꾼으로서의 보람과 뿌듯함이지요.

반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기적 자존감은 높아지지만 일꾼이 아니라 일감이 되므로 자기효능감은 별로 느낄 수 없습니다. 결국 ‘주는 사람’은 이타적 자존감의 행복을 얻고, ‘받는 사람’은 이기적 자존감의 쾌락을 얻게 됩니다.

정신적 행복이 물질적 쾌락 보다 훨씬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즐거움을 준다고 했지요? 그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이 뇌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엊그제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이 보기 드물게 친절한 분이었습니다. 비가 오고 있었는데, 승객들 미끄러지지 말라고 ‘조심하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등을 지극히 상냥한 목소리로 ‘고맙습니당~’ 식으로 입에 달고 운행을 하시더군요.

미세하게 콧노래도 흥얼흥얼 하시는 걸 보면서, ‘아, 저 분은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에서 진짜 행복과 보람을 얻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타적 자존감은 사람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듭니다.

희망,  정말, 자신감
▲ⓒPixabay 제공
-인성이 좋아야 성공하겠지만, 인성을 꼭 ‘스펙’의 차원에서만 바라봐야 할까요.

“‘인성이 최고의 스펙’이라는 문구는 자녀들의 스펙에 아주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에게 관심을 받아보려고 쓴 말이니 이해 좀 해 주십시오. 저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웃음)?

사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스펙’이란 말이 내실 보다는 포장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말로 변질된 느낌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인성이 최고의 스펙’이라고 말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스펙을 본래 의미대로 개인의 장점과 특기라고 본다면, 좋은 인성이야 말로 여타의 특장점들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워렌 버핏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미래 수익의 10%를 투자해야 한다면, 가장 잘생긴 사람이나 가장 머리가 좋은 학생이 아니라 가장 인격이 뛰어난 사람에게 투자할 것’이라고요.

실제로 아무리 학벌 좋고 능력이 뛰어나도, 인성이 좋지 않다면 취업하기 어렵습니다. 벤처투자자들도 창업자의 인성을 가장 우선시한다고 합니다.

둘째로 좋은 인성을 가진 사람일수록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좋은 인성과 높은 학업 및 업무능력의 공통요소는 정서 조절력입니다. 인내심, 의지력 등의 총합을 정서 조절력이라고 하는데, 높은 정서 조절력을 가진 사람이 인성도 좋고 이타적 자존감도 높을 뿐 아니라 학업성적도 높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스펙이 겉포장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벗겨낸다면, 인성이야말로 인재를 판별하는 가장 알찬 컨텐츠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다음세대 교육에서 ‘이타적 자존감’과 인성교육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저도 교회학교 중고등부 교사 경험이 있지만, 크리스천 자녀들은 교회를 통해 성경이라는 최고의 인성교육 책으로 교육을 이미 받아왔습니다. 그럼에도 크리스천 자녀들이 불신자 자녀들보다 인성적으로 더 좋다는 평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인성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는지 여부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만일 크리스천 자녀들에게 인성 문제가 있다면, 교회 교육이 부족한 점이 원인들 중 하나라고 봐야 합니다. 교회 교육의 문제들로는 ‘원수 사랑, 십자가의 희생, 성령충만’ 같은 기독교의 핵심 키워드들이 너무나 거대해 보이고 교리 중심으로 교육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접근하기가 어렵고 자신들의 인성 함양에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몰라 그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 기독교 교육은 죽음 이후 ‘천국 소망’에 초점이 있어서 현세의 행복과 성공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빛과 소금을 화두로 제시하셨습니다. ‘세상에 도움을 주고 해를 끼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현세에서의 이타적 자존감의 실천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우선 좋은 인성, 높은 이타적 자존감을 가지면 세상에서 성공과 행복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부터 아이들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인성교육에 대한 관심이 생길테니까요.

그 다음 교회학교 교사들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교회 선생님들은 봉사직이므로 전문적인 능력을 바랄 순 없더라도, 아이들의 애착 형성과 감정 인정 등은 부모들을 보완 내지 대체하는 개념으로 충분히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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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인성교육을 못 시켜주는 부모를 대신해 교사가 각별한 애정을 쏟아 훌륭한 인성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경우들이 꽤 있습니다. 또 친절 베풀기-이타적 자존감의 행복 체험 같은 것은 가정보다 오히려 학교나 교회에서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인성교육의 핵심인 ‘이타적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엄청난 훈련과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근육을 만든답시고, 처음부터 과부하가 걸리는 운동을 무리하게 하면 안되잖습니까?

인성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생, 봉사 등의 덕목들을 분명 가르쳐야 하지만, 너무 강조하면 어린 아이들에게 버거울 수 있습니다. 가볍고 쉬운 것들부터 시작해 이타적 자존감의 실천과 체험을 서서히 확대시키는 방향이 좋을 것 같습니다.”

-건강하게 양육됐음에도 부모의 부족한 재력 등으로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집이 가난하다고 왕따까지 당하는 경우가 많진 않겠지만, 소위 흙수저 집안 아이들은 부모가 웬만큼 정신차려서 가정교육을 하더라도 집이 가난하다는 그 사실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모가 인성교육을 하든 본인이 스스로 깨닫든, 다음과 같은 점들을 유념하면 자존감 높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가난한 성장환경은 ‘나는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것이 숙명이야’라는 사고를 무의식 중에(정확히는 야성의 뇌에서) 심어줍니다. 아주 뿌리깊게 심어줍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생명과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어 노력을 하지 않게 됩니다. 아니 못하게 됩니다. 자기를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비록 집안 형편은 어렵지만, 나는 다르다. 분명히 잘 살 수 있다’는 의식을 말로든 글로든 반복적·지속적으로 심어야 합니다. 세뇌를 시킬 정도로 해야 합니다.

둘째, 지속적으로 자신감을 심어줘야 합니다. 조그만 성공에도 크게 기뻐해 주고, 과거 성공 경험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주면서 용기를 북돋아줘야 합니다. ‘너 그 때 그 일 멋지게 해냈잖아? 너는 될 사람이야’ 하고 아이가 의기소침할 때든 언제든 수시로 그 이야길 꺼내놓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자녀의 인격을 존중해야 합니다. 애착 형성과 감정 인정 등이 인격 존중의 핵심 방법들로 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 특히 강조하고 싶은데, ‘이타적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집안은 가난하지만 너는 장차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인류를 위해,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라’는 위대한 목표와 사명을 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재벌이나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애, 박애 정신 같은 이타적 정신을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성의 뇌가 강해지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등지능과 같은 잠재능력도 깨어나게 됩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싶은 열망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과 아울러 일상생활에서 남을 돕는 일에 항상 발 벗고 나서는 삶의 자세를 가지게 해야 합니다.

사람을 강력하게 옭아매는 무의식의 굴레는 운명과 동일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지만 어려운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가 힘을 합쳐 치열하게 노력한다면, 운명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자존감 향상을 위해 자주 들려주면 좋은 말과, 자주 쓰지만 해로운 말을 3가지씩 꼽아 주신다면.

“​특정한 말을 꼽아보는 것도 좋습니다만, 부모들마다 자주 하는 말이 굉장히 다를 것이므로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큰 범주로 묶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존감 향상을 위해서’라고 잘 말씀하셨듯, 자존감을 높이는 말들과 낮추는 말들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먼저 자주 들려주면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좋은 말 3가지는 축복의 말, 돕고 살라는 말, 무조건적 존중의 말입니다.

축복의 말은 ‘넌 앞으로 잘 될 거야’, ‘위대한 사람이 될 거야’ 등 덕담을 자주 해주면 이타적 자존감의 상승과 더불어 잠재능력이 깨어납니다.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따분하게 들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가슴 속에 미세한 감동을 주면서, 이타적 자존감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말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존중해주는 말은 ‘너는 존재 자체가 부모에게 행복이다’,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처럼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말썽을 피우든 안피우든 아이의 외적 조건에 상관 없이 존중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기분이 좋을 땐 좋은 말이 나가지만, 아이들이 마음에 안드는 행동을 하거나 잘못했을 땐 돌변해서 안 좋은 말들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의 조건과 상황에 관계 없이 변함없는 애정과 존중의 말을 해준다면, 아이들이 부정적 상황에 처했을 때 회복탄력성이 높아집니다.

자존감을 낮추는 좋지않은 말 3가지는 고함 소리, 부정적인 소리, 잔소리입니다.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야단치면(고함 소리) 공포감을 증폭시키고 이타적 자존감을 낮추게 됩니다. 정서가 불안해지고 자신감을 떨어뜨립니다.

부정적인 소리란 ‘그러니까 네가 축복을 못 받는 거야’, ‘잘도 되겠다’ 등의 악담을 비롯해 ‘망한다’와 같은 모든 부정적인 단어들을 최대한 자제하여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정적 단어는 야성의 뇌를 부정적 방향으로 이끌어,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부정적인 상황으로 몰고갑니다.

잔소리는 아무리 작은 핀잔이라도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켜, 아이의 지성의 뇌를 미세하게 손상시킵니다. 그래서 이타적 자존감과 지능을 떨어뜨립니다.

꼭 고쳐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쓴소리도 하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웬만한 잘못들은 개입이 필요한 시점까지 침묵을 지켜주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