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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로마서 12장 15절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씨가 쓴 ‘수선화에게’라는 시가 있습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씨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뿐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시인의 고백대로, 우리가 외롭다는 것은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군중 속의 고독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1950년에 발간한 저서에서 ‘겉으론 사교적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묘사한 말입니다.

곧 ‘군종 속의 고독’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어도 여전히 외롭다는 의미입니다.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외로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은 많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인기 많은 가수나 연예인들이 가끔씩 대마초나 마약에 손을 대는 모습을 봅니다. 왜 그렇게 인기 있는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일까요? 군종 속의 고독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무대에서는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만, 무대를 내려오면 너무나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각박한 세상

어르신들이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살기가 좋아졌지만,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반기문 전 UN 총장도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건물(建物)은 높아졌지만 인격(人格)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高速道路)는 넓어졌지만 시야(視野)는 더 좁아졌다.
소비(消費)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家族)은 더 적어졌다.
생활(生活)은 편리(便利)해졌지만 시간(時間)은 더 부족(不足)하고, 가진 것은 몇 배가 되었지만 소중(所重)한 가치(價値)는 더 줄어들었다.
돈을 버는 법(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法)은 잊어버렸고, 평균수명(平均壽命)은 늘어났지만 시간(時間) 속에 삶의 의미(意味)를 넣는 법(法)은 상실(喪失)했다.”

반기문 전 UN 총장은 겉으로는 이 세상이 더 잘 살고 발달한 것 같지만, 사람들이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좋은 소식은 거의 없고 나쁜 소식만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전쟁의 공포가 한반도를 위협하고,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5포 세대니 7포 세대니’ 하면서 자신들을 포기한 세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나라를 ‘헬 조선’이라고 하면서 떠나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졌습니다. 이런 나쁜 소식만 듣다 보면 더 이상 이런 세상가운데 살고 싶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살 만한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은 꼭 그런 세상만은 아닙니다. 여전히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7년 8월 9일 밤 10시 35분쯤 승객 20여명이 탄 한 시내버스가 서마산IC 사거리를 지날 무렵에 20대 승객 1명이 갑자기 발작 증세를 보였습니다.

운전기사 임채규(43) 씨는 한 승객이 가방을 떨어뜨리고 고개를 의자 뒤로 젖힌 상태로 의식을 잃은 모습을 백밀러를 통해 보게 됩니다.

기사는 즉시 차를 세운 뒤 119에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데, 일부 승객이 “상황이 위급한데 여기서 기다리기보다 버스를 몰고 가까운 병원으로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기사가 나머지 승객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이구동성으로 “빨리 병원으로 가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나는 여기서 내려야겠다”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곧바로 기사는 정해진 노선을 벗어나 버스를 가까운 병원으로 몰았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일부 승객은 몸을 뒤틀며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는 환자에게 심폐소생 조치를 했습니다. 버스는 출발 5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고, 환자는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무사히 치료를 받아 퇴원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따뜻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리스도인이 앞장서야 한다

살 만한 세상,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누가 앞장서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을 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면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따뜻한 세상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까요? 그것에 대한 해답을 바울은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을 때 이 땅은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공감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을까요? 공감하면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뇌 속에 ‘거울 뉴런’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거울 뉴런이란, 남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행동할 때처럼 똑같이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말합니다.

이 거울 뉴런은 파르마대학 자코모 리촐라티 교수가 1996년, 행동신경세포에 관한 원숭이 실험 중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자코모 교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모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거울 뉴런 덕분이다.”

화창한 봄날, 사랑하는 연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가슴이 다 설레고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모두 거울 뉴런 때문입니다. 만약 거울 뉴런이 없다면 인간은 공감을 할 수 없습니다.

공감을 영어로 ‘empathy’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흙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empathy’시는 ‘em+pathy’의 합성어입니다. ‘em’은 ‘안’이라는 뜻이고 ‘pathy’는 길을 뜻하는 ‘path’에서 왔다고 합니다.

언어적으로 보면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길을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다른 사람의 길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간 길을 걸어 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타인을 위한 진통제

세상에는 너무 가난해서 큰 병에 걸려도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만 먹으면 쉽게 낫는 병인데, 단지 돈이 없어 꼼짝없이 아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위해 정치, 종교, 인종, 이념을 초월한 민간의료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경없는 의사회 스페인 지부에서 진통제를 만들었습니다. 이 진통제는 환자가 아니라 그 환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대신 먹는 진통제입니다. 바로 ‘타인을 위한 진통제’입니다.

이 진통제의 주성분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러멜입니다. ‘타인을 위한 진통제’는 한 세트에 8알이 들어 있습니다. 가격은 1유로로, 우리나라 돈으로는 1,350원 정도 됩니다. 이 수익금은 전액 가난한 환자들에게 전달된다고 합니다.

‘타인을 위한 진통제’는 출시 3개월 만에 300만개 이상 판매되어 스페인 베스트셀러 의약품에 등극하였습니다. 지금도 1만 5천개 이상의 약국에서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타인을 위한 진통제’ 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고 타인의 아픔을 함께 하고자 사람들의 동참으로 인해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울 뉴런을 통해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하고 항상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유익만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기는 원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힘든 것은 남이 알아주기를 원하지만, 상대가 힘든 것은 알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4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라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먼저 공감하고 함께 나누고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할 때, 이 세상은 따뜻한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테레사 효과

심리학 용어 중에 ‘테레사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테레사 효과’는 하버드 의대에서 실시한 실험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하버드 의대에서는 한 그룹의 학생들은 돈을 받는 노동을 하게하고, 또 한 그룹의 학생들은 아무런 대가가 따르지 않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연구진들은 노동을 마친 후 두 그룹의 체내 면역 기능 변화를 검사했습니다. 그 결과, 봉사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에게서 나쁜 병균을 물리치는 항생체가 나타났고 면역기능도 크게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마더 테레사의 전기를 읽게 한 다음 인체변화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봉사활동에 참가하지 않고 ‘마더 테레사’의 전기를 읽은 것만으로도 인체의 생명능력은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실험을 마친 후 타인에 대한 봉사를 생각하거나 보기만 해도 신체 내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면역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두고, 하버드 연구진들은 ‘마더 테레사 효과’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공감하고 나눌 때 나도 상대도 행복하다

우리는 ‘마더 테레사 효과’를 통해, 남의 고통을 함께 공감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은 곧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시는 분들의 얼굴들을 보면 참 밝고 행복해 보입니다.

실제로 ‘마더 테레사 효과’의 증거를 보여준 사람이 미국의 대부호였던 록펠러입니다. 록펠러는 의사로부터 암에 걸려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통고를 받았습니다.

그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곧 세상을 떠날 텐데 마음껏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선사업이나 하고 가렴.”

록펠러는 그때부터 자선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아낌없이 돕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니까 가슴이 트이면서 마냥 행복해졌습니다.

결국 록펄러는 의사의 선고에도 불구하고, 그 후 무려 40년이나 더 생을 누렸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나눌 때 상대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합니다.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감의 본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늘 즐거워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셨습니다. 한 번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로 끌고 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이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께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아니하시고 땅에 무엇인가를 쓰신 후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 사람들은 하나씩 돌을 버려두고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간 후에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 다시 죄를 범하지 말라”. 이 예수님의 이 한 마디가 간음한 여인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 여인의 처지를 공감해 주셨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터치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그대로 보여 주셨습니다.

타인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다

미치 앨봄은 ‘에디의 천국’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다.”

이 말대로라면 오늘 만난 버스 기사가 우리의 삼촌일 수도 있고, 지나가는 학생이 내 조카일 수도 있습니다. 신문 배달하는 청년이 내 동생일 수도 있고, 거리를 지나는 행인이 내 누님일 수도 있고, 지나가는 노부부가 우리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타인이 남이 아니라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남이 아니라 정말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더 공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나누고 물질을 나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 된 우리 모두가 이웃의 마음을 공감하고 사랑함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 ⓒ크투 DB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감사인생(공저)’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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