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죄에 대한 당연한 질타조차 못 받아들이고
정치적 선동과 공격으로 몰아가는 적반하장 자세
정당한 질타에는 내부 돌아보고 반성하는 태도를

히틀러 괴벨스 나치 독일 유대인 박해
▲유대인들에 대한 악의적 오해 조장을 통해 독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히틀러와 그의 최측근 괴벨스. ⓒmilitary.com 캡처
◈오해의 조장: 폐쇄성이 키운 악의적 오해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유럽인들 대부분은 유럽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이민족, 이방인들에 대해 결코 개방적인 이들이 아니었다.

1500년대부터 전 세계에 식민지와 거점 항구들을 세우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원주민들과 활발하게 교역하며 유럽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있던 좁은 세계관을 개혁해 나가기는 했지만, 유럽인들이 유럽 바깥 사람들을 대할 때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는 항상 자신들이 침략자이거나 혹은 지배자의 위치를 점할 때일 뿐이었다.

유럽 바깥 사람들과 대등한 관계에 서 있거나 유럽 바깥 사람들의 위세에 위축되는 경우, 유럽인들은 항상 방어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즉 유럽인들이 주도하는 문화 개방과 교류는 허용하지만 유럽 바깥 사람들이 주도하는 관계는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유럽인들의 기본적인 태도였다.

이러한 태도는 유럽인들의 역사 기술방식에도 나타나는데, 유럽의 우월성 중심으로 세계사를 기술하고 세부 사건들을 평가하는 이런 편협한 태도를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라고 한다.

사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민족이든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기중심성과 폐쇄성이고, 오늘날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민족 간 혹은 국가 간 교류와 통신이 활성화된 시기조차 온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어쨌든 1932년 의회 장악을 통해 독일 제1당으로 등극한 나치의 지도자 히틀러와 그의 최측근 괴벨스는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던 이 민족적 자기중심성과 폐쇄성을 자극해서 유럽 내 유대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이 때 주로 활용된 방법이 유대인들에 대한 악의적 오해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오래 전부터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킬 때 자주 사용되어왔던 전략이다.

독일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오해와 적개심을 증폭시키는 나치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대인들이 유럽 전역의 정치경제 주도권을 확보하고서 원래 유럽 땅의 주인인 유럽인들을 노예화하고 있다고 선동하여 그렇지 않아도 전통적으로 반유대주의 성향을 갖고 있던 독일인들의 마음 속에 유대인들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나치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의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 ⓒbritannica.com 캡처
물론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극소수의 유대인 혈통 엘리트들이 유럽 정계와 금융계에서 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히틀러와 괴벨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유럽인들 전체의 운명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지배적 위치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유대인 엘리트 계층은 유럽 내 유대인 혈통 후예들 가운데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유대인 후손들은 각 나라의 서민과 중산층으로 평범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1920-30년대 독일 국민들은 타민족을 기본적으로 멸시하는 자기중심성과 폐쇄성,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패전의 분노를 돌릴만한 대상을 찾으려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거짓된 믿음을 조장하는 나치의 선동에 그대로 속아넘어가고 만다.

◈오해의 극복: 악의적 음해와 정당한 질타의 분별

본회퍼가 1929년 <행위와 존재>를 집필하여 독일 철학계 및 신학계의 인식적 자기중심성을 질타한 이유도 이러한 당대 독일의 사회적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독일의 전신, 프로이센은 19세기 들어 유럽 계몽주의의 주도권을 잡은 나라로 급부상했다. 학문적으로는 칸트에서 헤겔로 이어지는 계몽주의 철학의 중흥기를 맞이한 데다, 정치·경제적으로는 호엔촐레른가 출신의 명민한 계몽군주들, 그리고 명재상 비스마르크의 지도 하에 유럽 대륙 내 신흥 강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런 근대적 발전은 독일인들의 민족적 자기중심성과 폐쇄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원래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던 사람들이 국가 경영에서 커다란 성공을 맛보고 나니 자부심까지 더해져 더 기고만장해진 것이다.

본회퍼는 독일인들의 이런 민족적 자기중심성과 배타성을 인간 타락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이라고 진단했다.

교회사 전체를 보더라도 배타성과 악의적 오해는 기독교 신앙인들을 직접적으로 위협해온 가장 큰 적이라 할 수 있다.

로마제국 당시 교회가 박해받은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 정권에 반역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으며, 예배를 위해 모일 때마다 갓난아이를 죽여 찢어먹고(“살과 피를 받아먹으라”는 주의 만찬의 명령에서 비롯된 오해) 집단 난교를 벌인다는(“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에서 비롯된 오해)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오해는 대부분 로마제국 집권자들이 그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기독교인들을 대규모로 박해할 때 지어낸 거짓말들이었다.

로마 박해 기독교
▲로마제국 집권자들은 기독교인에 대한 대규모 박해의 명분을 세우기 위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악의적 오해를 부추기곤 했다. ⓒearlychristians.org 캡처
최근 한국 사회를 보면, 로마 제국 당시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비슷한 성격을 가진 악의적 오해가 기독교인들과 교회를 표적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이라는, 근거가 빈약한 악의적 오해가 정권 지도부와 언론에서 반복적으로 회자되는 상황은 자신들과 다른 것을 배척하는 폐쇄성에 붙들린 이들이 흔히 범하는 어리석음의 또 다른 예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문화가 아니라 무속, 유교, 불교, 그리고 한국 고유의 폐쇄적 민족 문화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은 늘 이질적인 문화요소, 이방인들의 행습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든 자체적으로 방역을 강화하며 예배를 이어 나가려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악의적 오해와 음해의 최우선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오해와 음해에 대한 기독교계 일각의 잘못된 대응 방식이다. 순전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와 음해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그친 적이 없었다.

다만 역사상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공격에 대항해 인내와 겸손, 그리고 선행을 강화하여 진정한 승리를 얻어낸 것과 달리, 작금의 한국교회 곳곳에서는 교회 스스로의 배타성과 폐쇄성, 그리고 선민의식을 강화하는 가운데 악에 대해 악으로 맞불을 놓는 악수를 두고 있는 듯하다.

“정부 따위가 감히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교회에 맞서느냐”는 식의 고압적 자세를 신앙으로 포장해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극적인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전광훈 목사를 비롯해 교계 지도자급 인사 일부가 다분히 감정적인 어조로 정부의 예배 및 모임 규제를 지탄하고 멸시에 가까운 발언을 일삼는 모습은, 신앙의 인내와 지혜를 상실한 행태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고압적 행태가 교회에 대한 정부의 악의적 오해를 인내심을 가지고 불식시키려는 대다수 교회 지도자들의 노력을 퇴색시키고 있는 듯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해 및 음해에 어리석게 대응하여 세간에 이를 정당한 질타로 비춰지게 만드는 상황을 한국교회가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최근 교회들과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각종 비신앙적, 비윤리적 행각들 때문에 더 강화되고 있다.

세상이 교회를 판단할 수 없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적용해서 정인 양 학대치사 사건 같은 범죄에 대한 세간의 비판을 교회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정치적 공격으로만 치부하는 행태가 교계 전반에서 수용되는 한, 한국교회는 결단코 외부에서 가해지는 선동과 오해들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정인이 정인 양
▲양부모의 학대로 죽음에 이른 정인 양과 학대를 주도한 양모 장모씨. 장씨는 포항지역 목회자 자녀로서 기독교인으로 살아왔지만, 조사 결과 전남편을 살해한 고유정과 유사한 성격장애를 가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누가 봐도 정당하다 할 만한, 흉악범죄에 대한 당연한 질타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다가, 그런 범죄가 교인들의 손에 의해 발생하기까지 신앙 교육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무책임함을 비판받을 때에도 반성의 자세로 수용하기보다는 이를 교회에 대한 정치적 선동과 공격으로 몰아가는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한국교회 일각의 현실이다.

이러한 한국교회가 코로나 확산의 주범으로 몰리는 음해에 대해 스스로를 변호하려 할 때, 그것도 고압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로 스스로를 변호하려 할 때, 과연 그 변호 내용에 공감할 수 있는 이가 교회 바깥에 존재할지 의심스럽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폐쇄적이다. 교회를 이방인 취급하는 정서가 지배적인 사회이다. 그런 가운데 인내와 선행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고 음해를 물리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배타성으로 맞대응하면서 교회 내부 반성을 촉구하는 정당한 질타에 대해서도 귀를 막아버리는 행태가 과연 세간에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질 것인가.

본회퍼는 교회 바깥, 자기 중심성과 배타성의 원죄적 본성이 지배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곳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지만, 값싼 은혜에 심취되어 세속의 자기중심성과 배타성을 답습하는 교회 내부의 원죄적 행태 역시 강하게 지탄했다.

교회 외부로부터 오는 악의적 음해에는 신앙의 지혜와 인내를 발휘해 대응하며, 역시 교회 외부로부터 오는 정당한 질타에는 신앙의 양심을 발휘해 내부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태도의 전환이 뒤따르지 않는 한, 한국교회에 대한 세간의 따돌림과 오해는 결코 불식될 수 없을 것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