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정인 양
▲기독교인 양부모의 학대로 죽음에 이른 정인 양의 입양 전후 모습. ⓒ유튜브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은 받들지 않는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마가복음 10:13-16)”.

지난 2020년 10월 일어났던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학대 및 살인 사건이 SBS ‘그것이 알고싶다(그알)’를 비롯해 연일 뉴스 매체를 통해 공론화되면서, 나라 안에는 온통 ‘정인이 사건’으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정인이 양부모는 목회자 집안의 자녀로 태어난 같은 대학 캠퍼스 커플로, 자신이 낳은 첫째 아이도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해 2년간 베이비 시티 손에서 자라게 했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는 2020년 2월 초,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이 양부모는 생후 8개월 무렵의 아기를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친모가 지어준 정인이란 이름의 아이였습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주제에 입양까지 하게 되었으니, 정인이의 미래는 어쩌면 불 보듯 뻔했을까요? 차라리 입양을 하지 않았다면 정인이는 학대의 고통을 겪지 않았을 테고, 죽음조차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인이는 짧은 생애 동안 심한 고통과 학대 속에서 죽음으로 생애를 마감한 비운의 아이가 된 것입니다.

학대 중에도 살인자는 유방확대 수술을 하며 3개월간 친딸은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정인 이는 어린이 집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때 정인이가 가장 많은 학대를 받고 폭행을 당했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등교했을 때는 수없는 상처와 폭행의 흔적들이 발견됐고, 이를 여러 지인과 어린이집, 병원에서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 측에서는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망 당일 오전에는 집에서 큰 소리가 났고, 이후 정인이는 구급차 119가 아닌 콜벤에 실려 병원에 갔지만 당사자인 양부모는 급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아이는 췌장 파열과 여러 가지 학대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더 기가 차는 것은, 아이가 사망에 이르는 아픔으로 병원에 갔을 때조차 엄마인 장 씨가 SNS 공유 글에 댓글을 달면서 태연하게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량을 낮춰보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빠져나갈 궁리만 했습니다.

미궁에 빠져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궁금한 이야기Y’에 방영되면서 공론화되고 나서야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민중의 지팡이’로 최선을 다하는 경찰도 많지만, 이러한 일부 의식 없는 경찰들에 대해서는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번 정인이 사건 당사자는 당연히 엄하게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한 법 개정도 시급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하늘나라로 간 정인이가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가슴이 아파, 북받치는 눈물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생후 492일만, 입양 254일만에 숨진 정인이를 죽인 양부모를 중형으로 해달라는 국민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연일 들려오는 이때, 어떤 형편이나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정인이를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겼던 친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게 아플까요, 아이를 맡긴 어머니도 한평생 죄책감과 응어리를 가슴에 묻고 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더구나 정인이를 입양했던 부부는 기독교 가정에서 목사님의 자녀로 자라온 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런 이들이 어찌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했을까요.

세상의 소금과 빛이 아니라 세상에 씻지 못할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도하기 힘든 세상이요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까지 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 참으로 기가 막히고 속상한 나머지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며칠 전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중에, 왜 기독교인들은 어린아이를 그렇게 핍박하고 학대하느냐고, 특히 목사 집안의 자녀들이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일을 저지르냐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잊었고, 대신 사과를 했습니다.

목사의 자녀로서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모태신앙이나, 유명 지도자의 자녀들이 빗나가는 행동에는 부모의 영향이 클 것으로 압니다.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그리고 교회에서와 집에서의 인격이 다를 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요?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 지도자들은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의식 없는 신앙생활이 독버섯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가정에서 훈육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을 품고, 베풀고 나누는 인격적인 헌신의 삶을 지켜 나가도록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마당만 밟는 수순으로 겉과 속이 다른 부모를 보면서 종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 정인이와 같은 억울한 일이 발생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성경에는 아이들을 처참하게 죽인 사건들이 나옵니다. 가나안 땅에서 극심한 흉년으로 양식이 다 떨어졌던 야곱의 식구들을 요셉이 구원하여 애굽으로 데려왔고, 이후 자손들이 430년간 그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날이 갈수록 점점 불어나자 위기를 느낀 애굽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며 학대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는 더 늘어났고, 결국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들을 나일 강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애굽 왕인 바로가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너희가 해산을 도울 때, 아들을 낳으면 죽이고, 딸을 낳으면 살려두라”고 명령했지만, 이 산파들은 그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살렸던 것입니다.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고 물을 때, 산파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답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산파는 바로 왕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 하였더이다”라고 바로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바로는 그의 모든 백성에게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태어난 아이가 범상치 않은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겼지만, 더 숨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모세를 위해 갈대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갓난아이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모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찌감치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침 바로의 딸인 공주가 상자에서 우는 아이를 건져 바로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생명을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일은 계속 진행되었고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의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아무리 인간의 통치가 강력하다 해도, 하나님의 목적과 작정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지도자인 모세를 이미 예정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바로 왕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모세를 제외한 모든 유아들이 희생됐음을 기억합니다.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정인이와 같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이 희생되는 일을 더 이상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헤롯 왕 때에 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무렵,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했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게 되었습니다.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었는데,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가서 경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게 와서 아기가 탄생한 장소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아기를 제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사들은 경배를 마친 후,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자신에게로 돌아오지 않자, 헤롯은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을 보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처럼 자신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마음 아파하십니다.

특히 유대인의 아이들은 회당에서 랍비에게 축복을 받는 풍습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는 것은 고대 사회 여러 국가들의 공통된 경향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돈을 벌거나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부모들이 주는 것을 받아먹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와 마찬가지로, 당시 바리새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인간의 공로나 선행으로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조건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자신의 마음을 비워내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본능적으로 예수님을 찾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주일학교는 장년 예배 시 한두 시간 아이들을 돌보다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함께 보내주는 ‘보관소’로 전락한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겉으로 사랑하는 모양과 경건의 모양은 갖춰졌으나 능력이 소멸된지는 퍽 오래된 것입니다. 아이들의 영혼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내어 던지는 교사가 많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와 약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신앙인들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을 위해서는 열정을 쏟아내며 싸웁니다. 그 싸움의 최대 피해자는 당연히 힘없는 약자나 어린아이가 됩니다.

다들 자신들의 아픔만을 쳐다보며 자기만 살겠다고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다니지만, 어린 영혼들과 힘없고 연약한 사람은 그들 눈에 보이질 않나봅니다. 교회가 약자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이 지금 우리 모습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의 명령을 어겨가며 남자 아이들을 살려 냈던 십브라와 부아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는 놀라운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 태어날 즈음 헤롯 왕이 자신의 왕권 지위를 고수하기 위해 단행했던 살인 사건과, 모세가 태어날 때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죽였던 당사자들의 최후는 참으로 비참했음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다시는 정인이와 같은 어린아이들에게 학대나 모진 고통을 안겨줘서는 안될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세상 최고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정인이 와 같은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아이들은 물론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모습으로 그 사랑을 나누며 실천하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