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사랑하는 우리교회(예장 합동)에서 부교역자로 청년 사역하고 있는 노재원 목사의 글을 연재한다. 노재원 목사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Div),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석사)했으며, 현재 ‘알기 쉬운 성경이야기’, ‘기독교의 기본 진리’, ‘영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대중문화를 통해 읽는 성경이야기’ 등을 유튜브를 통해 연재하고 있다.

속 보이는 교회
노재원 목사의 <성경으로 공간 읽기> #2


노재원 목사 건축
ⓒpixabay



근래에 유리로 된 건물이 많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 네모난 창을 뚫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유리로 외장을 하는 것이죠. 이런 건물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속 시원하게 보여주겠다는 태도를 지향하는데요. 실내를 시각적으로 개방함으로서 건물 안에서 사악한 모의를 하거나 꿍꿍이를 벌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합니다. 반면에 모텔에는 창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작은 크기일 뿐입니다. 실내를 보이기 싫은 것이죠.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함과 공명정대함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건축물의 외벽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맞는 건축적 방식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리라는 재료는 그 목적에 잘 부합하지요.

투명한 공중화장실이 주는 교훈


노재원 목사 건축
ⓒnippon-foundation.or.jp



일본에서는 공중화장실을 유리로 만들기도 합니다.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이 도쿄 시부야 일대에서 추진 중인 공중화장실 프로젝트에서는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 화장실’이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로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반 시게루(63)가 설계한 이 화장실은 투명한 유리벽으로 지어져서 비어있을 때는 속이 다 들여다보입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들어가서 문을 잠그면 투명했던 유리벽이 불투명하게 변하지요. 들어가지 않고도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크를 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밤에는 아름다운 등불처럼 주변을 밝혀주니 도시경관에도 이바지하는 셈입니다. 이 화장실의 가장 큰 장점은 사용자로 하여금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고 떠나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당을 투명하게 짓는다면

지금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도마 위에 올려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시기에 실내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예배당을 상상해 봅시다. 물론 외벽을 유리로 하게 되면 대체로 냉난방 부하가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려야 할 곳이 불가피하게 노출될 수도 있겠지요. 굳이 보기 싫어하는 행인들로 하여금 보게끔 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종교건축물 특유의 신비감이 부족해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냉난방 부하나 시선 차단 문제는 기계적 장치를 비롯한 여러 방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뿐더러 설령 부하가 더 들더라도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은 소요비용 못지않게 중요할 것입니다. 게다가 기독교 측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외부에서 기독교를 보는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측에게 필요한 건 다짜고짜 우리가 옳다는 자긍심이 아니라 당당하게 속을 다 내보일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정돈하는 일이겠지요. 마치 건물의 외피를 자신 있게 투명유리로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안이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된다’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마치 현대인들이 SNS로 자신을 다 드러내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공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현대 건축물들이 투명한 유리를 즐겨 사용한다고 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투명하고 공명정대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교회 건물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참된 교회를 세우겠다는 정신적, 신앙적 가치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당의 외피를 투명하게 짓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를 감안해야 하고 제약요인도 많겠지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바는 분명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투명해지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는 일이 아닐런지요.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린도후서 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