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들에게도 음악은 결과물일 뿐
모든 고민의 출발점은 종교였을지도
예술가들에게도 종교는 의지의 대상

바이블 클래식

바이블 클래식

김성현 | 생각의힘 | 308쪽 | 19,000원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는 1921년 6월 한적한 휴양지인 잘츠부르크 인근 마트제로 휴가를 떠났다. 작곡가는 여기서 오라토리오 ‘야곱의 사다리’를 완성하고 1911년 출간한 자신의 저작 <화성학(Harmonielehre)>도 손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는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유대인은 환영하지 않는다”고 적힌 포스터가 나붙더니, 급기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마을을 떠나 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었다. 작곡가는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스스로를 오스트리아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쇤베르크의 확신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히틀러가 총리로 취임하기 10년도 전의 일이었다.

정치에 무관심한 편이던 쇤베르크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민족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오니즘(Zionism)에 급속하게 경도됐다. 그 즈음 그가 구상했던 종교 곡은 ‘모세와 불붙은 떨기나무’였다. 당초 오라토리오나 칸타타 형식으로 쓸 생각이었지만, 극적 구조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오페라로 작곡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모세와 아론’이라는 제목을 붙인 뒤 직접 대본을 썼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던 반유대주의를 고대 이집트의 유대인 박해에 비유하면, 모세의 가나안 행은 유대인의 독립국가 건설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집트(애굽) 탈출’을 의미하는 출애굽기는 유대인에게 종교적 복음이자 정치적 지침이었다.

쇤베르크
▲아르놀트 쇤베르크.

오페라 ‘모세와 아론’에는 현대음악의 ‘예언자’ 쇤베르크가 대중과의 관계에서 겪었을 법한 고뇌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는 일찌감치 조성의 법칙을 버리고 무조(無調) 음악과 12음 기법으로 나아갔지만, 그때마다 평단이나 대중의 적대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보이지도 않고 상상할 수도 없는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설파해야 했던 모세와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을 쓰고자 했던 쇤베르크의 처지가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준 단 한 권의 책, 바로 성경이다. 일간지 클래식 전문 기자가 쓴 이 책은 바흐와 헨델부터 스트바린스키와 번스타인까지, 클래식 거장들이 성경을 주제로 만든 곡들을 소개하고 있다.

성경 속 내용들을 주제로 만든 유명 클래식 작품들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눠 작곡가들의 시대 순이 아닌 성경 순서대로 배치했다. 칸타타와 수난곡, 오라토리오 같은 종교음악부터 교향곡과 오페라처럼 세속 음악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지극히 종교적인 작품들도 포함시켰다.

그간 종교음악을 작곡가나 시대별로 소개하는 도서들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성경 중심의 정리는 장점으로 다가온다.

2018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
▲2018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헨델의 ‘메시야’ 중 ‘할렐루야 합창’을 연주하는 모습. ⓒ크투 DB

저자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음악의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것이 출발점이자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관점의 전환이 일어났다”며 “어쩌면 작곡가들에게도 음악은 결과물일 뿐, 모든 고민의 출발점은 종교였을지도 모른다”고 머리말에 썼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에 종교 서적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해당 성경 내용을 그린 대가들의 명화를 시작으로, 작곡가의 간략한 일생과 시대상을 통해 배경을 설명하고,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해당 성경 내용, 가사 등을 소개한 다음, 초연부터 주요 공연들도 곁들이고 있다. 마지막에는 해당 작품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음반과 영상도 알려준다.

저자는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믿음이 충돌할 때, 경제적 궁핍과 예술적 자각 사이에서 방황할 때, 작곡가들이 삶의 결정적 순간마다 종교적인 곡을 썼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며 “종교에 ‘귀의(歸依, 돌아가 기댄다)한다’는 표현의 의미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가들에게도 종교는 ‘돌아가 기대는 대상’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클래식과 종교음악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성경을 주제로 한 여러 클래식 작품을 알고 싶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입문서로 적절하다. <바이블 클래식> 같은 작업들을 통해, 음악계에서 ‘찬밥 신세’인 종교음악이 제 자리를 잡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