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훈
▲백성훈 목사.

시편 74편

악인들이 교회를 조롱하며 비난 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디아스포라(Diaspora)의 삶을 살고 있을 때, 자기 민족의 멸망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해석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인도 1절에서 이런 민족적 낙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시편 74:1)”.

우리도 인생을 살며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배신감은 하나님이 이 실패를 어떻게 인도해 가실지에 대해 불신하게 만들고, 기도하던 마음에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사단은 하나님보다 그 실패를 더 크게 보이도록 우리 마음을 공략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하나님의 복음을 거부하고 그 복음을 조롱하는 사람이 나타나 나의 실패를 비난하면, 우리의 낙심은 더욱 커집니다. 그 조롱과 비난이 많을수록, 실패라는 산은 더욱 크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점점 하나님은 작게 보이고 그 빈자리에 원망의 마음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시인도 바벨론에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어 살면서, 바벨론 민족의 조롱을 들어야 했습니다. 시인도 마찬가지로 그 조롱 앞에 자신의 민족이 경험한 실패가 더욱 크게 보였습니다.

바벨론의 조롱이 그 실패를 두 손으로 떠받들고 세상의 수많은 민족들 앞에 비웃으며 조롱하는 것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런 시인의 마음은 다음 구절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시편 74:5)”.

여기서 말하는 ‘도끼’는 바벨론 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렸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성전의 모든 벽들과 장식들, 그리고 제사에 쓰이던 성물까지 모조리 부수고 파괴하고 불살라 버렸습니다.

그때 바벨론의 군사들은 성전을 부수면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는데 시인은 그 모습을 4절에서 소리를 지른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 군인들의 환호는 시인의 귀에 분명 조롱하는 비웃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살면서도 그 성전의 파괴와 더불어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는 그들의 환호가 트라우마가 되어 매일 괴롭혔습니다.

악인들의 조롱 앞에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시인은 이런 조롱 앞에서 낙심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이 마음을 들고 나가 기도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출애굽의 역사를 강조하며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지금도 다시 이스라엘로 인도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특히 13-15절에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때를 연상케 하는 상징적인 표현들이 등장합니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 주께서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시며 주께서 늘 흐르는 강들을 마르게 하셨나이다(시편 74:13-15)”.

여기서 표현된 ‘용들의 머리’와 ‘리워야단의 머리’는 고대 근동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표현들로, 보통 애굽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사막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것과 바위 사이에서 물이 터져 나왔던 광야 생활의 대표적 사건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시인은 그때의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에도 이런 간구가 정말 필요합니다. 출애굽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3천 4백년도 더 오래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르고 세상도 변했지만, 우리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며 여전히 동일한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사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몸과 마음이 아플 때 기도를 통해 치료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십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우리 마음에 있던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사라지고, 의심은 확신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 동안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던 나의 실패와 세상의 조롱도 이제는 하나님 앞에 피조물에 불과하여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시인의 기도에 자신의 확신이 깃든 기도가 있었는데, 그 확신의 근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출애굽기를 통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변치 않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동일한 은혜를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시인은 지금 그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는 중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주십니다. 만약 지금 내 마음에 이런 두려움이 있다면, 이 책을 내려놓고 바로 그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조롱과 비난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향해 있어야 합니다

주원이(가칭)는 어릴 때 부모님을 사고로 먼저 잃고 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독실한 신앙으로 혼자 아이를 키웠던 할머니는 주원이가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도 신앙심을 가지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황을 하는 모습에 많이 슬퍼하셨습니다. 그래도 매일 새벽기도 나가서 손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할머니는 주원이가 청년이 되어 취직을 했을 때,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할머니는 주원에게 인생의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 유언은 하나님의 약속을 꼭 붙들고 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약속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는 주원이에게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원아,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란다. 그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 믿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해 주신다는 약속이야. 세상을 살면서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잖니? 그런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믿음만 보시고 그의 나라로 초청을 하신단다.

그러니 성공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말거라. 오직 하나님 약속을 꼭 붙들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성경을 배우며 알아 가거라.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 나라에서 너를 만나는 것이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란다”

주원이는 그 할머니의 유언을 듣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주원이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복음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는 형이상학적이고 초자연적인 나라, 그리고 만화 속에 나오는 신비한 나라가 아닌, 그의 마음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나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로 향해 있으면 이 세상의 어떤 일들도 우리를 그 희망의 확신에서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까? 악인의 조롱 앞에 더욱 빛이 나는 그 나라를 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알게 하고, 은혜가 느끼게 할 것입니다.

시편의 소망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시편의 위로>, <시편의 소망>, <팀사역의 원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