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인간의 죄성을 ‘자기 안으로 구부러진 마음’으로 규정했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vision.org 캡처
루터가 이신칭의라는 벼락같은 사상을 ‘똥통 위에서 경험함’으로 새로운 시대의 돌파구가 열렸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의 양심은 내가 읽고 붙드는 그 말씀에 매여 있을 뿐”이라는 ‘신앙의 자유’를 천명하였다.

황제고 뭐고, 교황이고 나발이고…, “나는 내 양심이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신앙의 길을 갈 뿐이다”는 보름스 의회의 선언,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표지였다.

이에 가장 열광했던 이들이 바로 독일의 하층 농민들이었다. 온갖 착취와 압제 속에서도 부여된 교회의 교리를 따라 순종과 복종이 강요되던 그들에게 ‘루터의 복음’은 새 시대의 서광과 같았다.

여기저기서, 황제와 교황 앞에서까지 담대히 신앙의 자유를 외치는 루터의 영웅담이 농민들 사이에 불길처럼 번졌다.

1524년부터 2년 동안 농민들의 데모와 봉기는 독일의 여러 곳에서 마치 도미노처럼 빠르게 진행됐다. 물론 농민들은 삽과 곡궹이를 들고 일어났기에 칼과 활과 창으로 무장한 귀족의 군대들을 당할 수는 없었지만, 루터로 말미암아 시작된 새 시대―하나님 나라 혹은 천년왕국―에 대한 기대가 그들을 일어나게 했다.

농민들은 루터가 자기들을 이끌어 주기를 원해 여러 번 도움을 구했다. 루터는 처음에 자신을 영적인 지도자로 인정하는 이들을 사뭇 동정적으로 보고 귀족들이 이들을 너무 심하게 다루어 왔음을 인정하며 크리스천의 사랑으로 대하라고 권면하기도 했지만, 자신과 더 밀접하게 연이 닿아있는 귀족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면서 농민들의 요구가 너무 심하다며 그들을 억제하기 시작한다.

이 때 농민들이 귀족들에게 요구한 12개조 요구 사항이 남아 있다.

1. 모든 마을은 자체적으로 그곳 설교자가 그릇된 행위를 하는 경우 그 설교자를 선출하고 해임할 권리가 있다. 설교자는 부를 추구하지 말고 복음을 단순하고 곧고 명료하게 전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참된 신앙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얻을 수 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설교자는 성도들의 큰 십일조(토지 십일조)로 봉급을 받는다. 잉여금은 마을의 빈곤층을 돕고 전쟁세를 납부하는 데 사용한다. 작은 십일조 (목축 및 노동 수입 십일조)는 인간에 의해 발명되었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 주 우리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가축들은 무상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3. 지금까지 우리가 농노 취급을 받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우리 모두―미천한 자들이나 귀족들이나―를 예외 없이 다 자신의 귀한 피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자유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고 선언한다.

4. 가난한 사람들이 사냥이나 새 사냥, 낚시를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비형제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부터,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와 물 속의 물고기를 지배하게 하셨다.

5. 귀족들이 숲을 독차지해 왔다. 가난한 사람이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그는 그것을 두 배 가격으로 사야 한다. 결과적으로,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은 모든 숲은 마을의 소유가 되어야 하며 그래야 목재와 장작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6. 하루가 다르게 우리에게 요구하는 과도한 강제 노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 부모가 요구 받던 양으로 줄여야 한다.

7. 귀족들은 우리에게 합의된 것보다 더 많은 강제 노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8. 많은 논이 높은 임대료를 지불할 만큼 충분히 생산할 수 없는 상황이다(따라서 열심히 일을 해도 농부들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다). 정직한 귀족들은 이 땅들의 상황을 검사하여, 농부들이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임대료를 적정하게 책정해야 한다.

9. 새로운 벌금을 부과하기 위해 새로운 법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처벌은 범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벌금은 변덕스럽게 정할 것이 아니라, 정해진 법에 따라, 사건의 경중을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10. 많은 귀족들이 마을에 속하는 초원과 밭을 전용했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11. ‘부당 상속세’는 전면 폐지하고 다시는 과부·고아가 하나님 앞에 수치스러운 강탈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

12. 여기에 열거된 것 중 하나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될 경우….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설명한다면 우리는 양심상 그것들을 철회할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결정이고 최종적인 의견이다.

만약 위의 어떤 것이라도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고 이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이 나중에 나타난다면, 그것들은 무효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다른 어떤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으로 나타나면 같은 식으로 무효가 될 것이다.

이것들은 지금 읽으면 너무 당연하기도 하고 오히려 귀족의 지위를 인정하며 그저 정당한 대가만을 요구하는 겸손한 요구 같지만, 귀족들의 귀에는 그리고 귀족들의 편에 선 루터의 귀에는 가당치 않은 요구들이라고 들렸던 것 같다.

루터는 <도둑질과 살인을 일삼는 농민 떼거지들에 반대하며>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귀족들은 신속하면서도 강력한 공권력으로 정부에 반기를 드는 농민들을 제거하라고 조언한다.

“저 불순종하는 농민들을 보면, 몰래하든 공식적으로 하든, 반드시 몸을 베고, 목을 조르고, 칼로 찔러서 죽이되, 미친 개새끼 죽이듯 반드시 죽이시오(like one must kill a rabid dog).”

루터도 늘 그렇듯 자신이 심하게 말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이미 농민들은 무자비하게 제압되고 살육된 뒤였다. 그 때 죽은 농민의 숫자가 작게는 10만 명, 많게는 30만 명이라 한다.

루터가 뿌려놓은 종교개혁, 양심의 자유는 이후 150여 년 동안에 걸친 핍박과 전쟁으로 최소 1천만 명에서 2천만 명의 희생을 가져왔다. 종교개혁의 희생이었을까, 아니면 미친 개들을 위한 심판이었을까?

신동수
▲신동수 목사.
신동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미국 플로리다 성빈센트 병원 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