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트리 나무 열매 저주 예수님 성경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 ⓒ픽사베이
본문: 요한복음 2장 15절

성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님께서는 가나 혼인잔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그 형제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워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성전을 지나다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15절)”.

1. 변질된 신앙을 바로 잡으려는 행동
성전의 목적에서 벗어난 목적상실을 질타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지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성전의 무질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사람들은 주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는 부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등 엉망진창이 된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알면 겉모습만 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무슨 청소 대행업체도 아니기에 더 깊은 뜻이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경배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원근 각처에서 소나 양, 비둘기 등을 몰고 예루살렘으로 오는 수고를 덜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조치가 성전 가까운 곳에서 정결하고 흠이 없는 짐승들을 팔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성전 구내에까지 버젓이 개장되어 향토 풍물시장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조치가 성전을 더럽히는 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근본 원인은 신앙이 변질된 것입니다. 변질된 신앙이 성전의 존재 목적을 벗어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는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본래 성전이 존재하는 목적에서 빗나간 것을 바로 잡으려는 행동입니다.

2. 제사 실종을 바로 잡으려는 행동
올바른 제사의 경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가축시장이라는 주객전도를 질타하시는 장면입니다.

성전은 제사를 드리는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그런데 지금 문전성시(門前成市)를 방불케 하는 가축시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이렇게 난장판이 되어버린 가축시장에서, 원래 성전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한 마디로 처지가 뒤바뀌어 버린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상태입니다. 본래 성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는 성전의 제사 실종, 경배 실종을 바로잡으려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성전의 본래 모습이 짐승으로 돈벌이를 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기에는 자연발생적으로 브로커가 활개를 치고 있음이 당연합니다.

제물검수관인 제사장에게 “잘 봐 달라!”는 뇌물 정도는 필수적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흠이 있는 제물로 트집이라도 잡아 불합격 판정이라도 내릴라 치면 장사는 끝장이 날테니까요. 흑색선전이 나무하고, 제물 검수관 직책의 노른자위 쟁탈과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상납봉투가 날이 갈수록 그 두께를 더했을 것입니다.

성수기의 피크를 맞아 값이 뛰는 것을 잡으려고, 성전 제사는 뒷전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눈으로 목격하신 주님께서 보다 못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온통 뒤엎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실종된 제사, 즉 경배하기를 바로 잡으려는 상징적인 행동을 취하신 것입니다.

3. 형식화된 신앙생활을 바로 잡으려는 행동
하나님 경배는 없고 제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현장을 질타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 경배의 모습은 없고, 오로지 장사하는 것만 중요시되는 현장입니다. 그것도 성전 안에서까지 장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난장판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주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환전상의 돈을 쏟으셨다고 했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에서 우리는 주님의 상징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형식화된 신앙생활을 바로 잡으려는 행동입니다.

신앙이 형식주의에 빠지다 보니 경배의 진정성이 실종되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물론 성전 뜰에서 제물을 파는 것은 먼 거리에서 오는 순례객들에게 편리해서 좋았을 것입니다.

본래 성전에서 드릴 제물은 그 값을 야박스레 깎지 않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입니다. 이것을 교묘히 이용하여 폭리를 취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유대인 화폐인 세겔로만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 밖에서 통용되던 로마 화폐인 드라크마에는 가이사 황제의 화상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환전상이 판을 쳤을 것입니다.

신앙이 형식주의에 빠질 때 거기에는 인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타락된 모습이 나타날 뿐입니다.

김충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에서 만난 김충렬 박사.
4. 정리

무엇이든지 간에 오래하게 되면 타성에 젖기 마련입니다. 신앙생활도 오래 하다 보면 형식만 남고 내용은 없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형식만 남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내용이 충실하게 살아 있는 믿음으로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로 신앙의 목적이 상실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으로 살게 하소서. 형식화된 죽은 믿음이 아니라, 내용이 충실한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 있는 산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