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다가오는 좌절·불행, 행복으로 바꿔주면 ‘첩첩행복’
기적같이 놀라운 능력, 유머를 ‘최고의 영성’으로 보는 이유
‘거룩과 진지함’ 일관해선 견디기 어려워, 설교에도 유머를

해피닝 이상준
▲이상준 작가는 “오늘날 성경은 예수님 말씀의 핵심을 잘 담고 있지만, 너무 딱딱하게 묘사하고 있다”며 “단언컨대 유머 화법의 최고 스승은 예수님이다. 그 분은 유머와 상극인 고난의 삶 속에서 유머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고 환한 빛을 발했다”고 말했다.

<해피닝: 예수에게 배우는 행복의 여덟 계단>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산상수훈의 ‘팔복’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20여년간 스피치 유머 기법을 연구한 저자가 독일의 반려동물용 사료 제조회사 CEO 훈트 씨가 말과 행동으로 직원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다가, 유머의 대가 ‘멜랑주 박사’를 찾아 ‘휴머신(Humachine)’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2천년 전 예수님의 설교를 직접 들으면서 한 단계씩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저자가 지어낸 설정이다.

독자들은 훈트 씨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성경에 문자로만 남아있는 2천년 전 예수님의 설교 분위기와 말투가 어떠했는지 간접 체험하면서 ‘대화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당시 군중들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셨는지 상상해볼 수 있다. 특히 예수님 말씀을 반복적·지식적으로 접하면서 언제부턴가 잃어버렸던 감동과 깊이를 자연스럽게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저자 이상준 작가는 서울대 경영학과 및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20여년간 고품격 유머를 연구해 온 전문가이다. CEO와 공무원, 정치·법조·의료계 인사 등 2천여명의 리더들이 회원으로 있는 품위유머닷컴(best.kr)을 운영하고 있으며, 오피니언리더 대표이사로서 최신 시사 이슈와 사회 트렌드를 담은 유머를 꾸준하게 발표하고 있다.

책 제목 ‘해피닝(Happining)’이란 행복의 명사형인 ‘Happiness’에 ‘ing’를 더해 저자가 만든 신조어로, 우연히 일어난 ‘해프닝(Happening)’이 아니라, 행복이 겹치고 겹치면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첩첩행복(疊疊幸福)’을 의미한다. 저자는 행복의 지속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의 화법’에서 발견했다.

저자와의 인터뷰는 2회로 나눠 게재된다. 첫번째 이야기는 <해피닝>에 대한 내용이며, 두번째 이야기는 저자가 최근에 함께 출간한 <이타적 자존감 수업> 관련 내용이다. 다음은 저자의 ‘여덟 계단’에 맞춰 준비된 여덟 가지 질문.

해피닝
이상준 | 다산북스 | 276쪽 | 15,000원

-‘유머 화법’의 최고 스승으로 예수님을 꼽으신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세계사 속에 여러 많은 스승들이 있는데, 그 분들과 비교도 가능할까요.

“보통 4대 성인으로 예수님과 더불어 부처, 공자, 무함마드를 꼽습니다. 이 성인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유머였습니다.

공자는 제자들이 어록을 정리할 때 우스갯소리가 많아 정리자들이 당혹스러워했고, 그의 체통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오판해 대부분 삭제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오늘날 유교의 엄숙한 이미지와는 달랐던 것입니다.

부처의 경우 설법을 할 때 좌중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무함마드도 유머 감각이 탁월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분의 유머들은 어록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4대 성인들 중 유머감각 순위가 2등이라면 섭섭할 정도로 탁월한 분입니다.”

-책 내용처럼 예수님 말씀을 성경 그대로가 아니라 그 시대 상황에 맞게 풀어서 다시 읽으니 달라 보입니다. 이런 방식을 생각하시게 된 동기와 방법이 있다면.

“예수님이 유머감각이 탁월한 분이셨다는 것은 제가 처음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유머를 연구한 책들이 외국에서 이미 몇 권 나왔습니다.

그 중 얼 F. 팔머(Earl F. Palmer) 목사님의 <예수님의 유머> 같은 책은 국내에도 번역된 유명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들이 예수님의 유머를 소개하면서도 논문처럼 딱딱해서, 그 유머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예수님의 유머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도록 쓴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유머 이론을 연구하면서, 유머 감각이 있는 설교자라면 예수님 말씀을 이렇게 진지하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좀 더 재미있고 재치있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군중 앞에 서면 사람들에게 웃음을 끌어내고 싶은 욕심이 들게 마련이거든요. 인류 최고의 유머 감각을 가지신 예수님이라면 더더욱 그러셨을 겁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존감 욕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존감 중에서도 자기효능감입니다. 거의 본능적인 것입니다.

강사들은 청중들 앞에서 주목받고 싶고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는데, 유머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웃길 수 있는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는 것이 문제지, 떠올랐는데 하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 말씀들을 유머있게 직접 바꿔본 것입니다.”

해피닝 이상준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이미 내용을 알고 읽어서 놓치고 있는 예수님의 위대한 가르침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죽음 이후의 천국도 말씀하셨지만, 현세에서 하나님 자녀들의 행복과 성공에 대해 결코 소홀하게 생각하신 분이 아닙니다.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라’든지, ‘리더가 되려면 남을 섬기라’ 등과 같은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곧 1등, 현세에서 최고의 성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성공의 방법이 상식적 방법이 아니라 역발상적 방법입니다. 가령 ‘원수를 사랑하라’ 같은 혁명적인 발상이죠. 이게 유머의 반전과 같은 이치입니다.

결국 예수님 당신도 유머의 달인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성공하려면 고난을 기쁨으로 여기는 유머러스하고 긍정적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삶의 태도뿐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처럼 유머와 웃음 그 자체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 훨씬 몰입도 되고 이해도 쉽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방식을 차용하신 것인가요. 예수님의 스토리텔링의 특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이야기는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몰입하게 합니다. 설교자들이나 글 쓰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 때 능력이나 창의성이 부족해 스토리텔링으로 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것이지, 스토리텔링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설득방법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거의 모든 주장에 풍부한 사례와 이야기들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도 유머러스한 것들로 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못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못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오늘날 사람들은 익숙해져서 웃기지 않지만 당시 사람들에겐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스토리텔링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런 식의 읽기가 십자가의 사랑의 역설적 정신을 흐리거나, 예수님 말씀 자체를 너무 희화화하거나 가벼워지게 하진 않을까요.

“<해피닝>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예수님 말씀 내면의 메시지인 구원과 사랑과 정의를 조금이라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철칙은 철저하게 지키면서 표현은 최대한 유머러스하게 했습니다.

알약의 알맹이 약효 성분을 충실하게 채워놓기만 한다면, 알약의 겉부분을 보기 좋은 색깔과 먹기좋은 맛으로 최대한 꾸미더라도 약효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색깔이 알록달록해서 보기에 매력적이고 맛까지 좋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약을 먹으려고 몰려들 것입니다. 또한 쓴 맛의 고역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더 많이 먹을 것입니다.”

-책에서 첩첩행복(疊疊幸福)이라는 ‘해피닝’을 말씀하셨는데, 예수님 말씀의 어떤 부분에서 이 ‘해피닝’을 발견하고 배울 수 있을까요.

“복음서엔 역발상, 발상전환, 유머적 반전 등이 무궁무진하게 많은데, 이 부분들에서 ‘첩첩행복, 해피닝’의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삶은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가 아닙니다. 흔히들 ‘꽃길만 걸어’ 하고 덕담하지만 항상 꽃길만 걸을 순 없습니다. 삶은 좋은 일이 가끔 있고, 고통과 시련은 더 많고 그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 투성이가 바로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언제나 좌절하고 분노해야 상식적으로 맞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역발상과 유머적 전환을 통해 그 모든 시련과 고난을 기쁨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고,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섬기고, 원수를 사랑하라 등등이 그런 사례들입니다.

물론 천국의 소망을 품는 것 자체로도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되지요. 다만 실제적으로 해야 할 행동은 나에게 푸대접하거나 막 대한 사람, 나를 올라타려는 사람과 상황에 호의와 웃음으로 대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발상이고 발상의 전환이고 유머적인 반전입니다.

가령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욕을 하고 보복을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행동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말고 역으로 복을 빌고 잘 해주라고 하십니다.

원수에게 ‘당신은 참 귀한 분입니다’ 하고 긍정적으로 말을 하면, 우리 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 대신에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어 증오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단번에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는 건 아닙니다. 얼음 녹듯 서서히 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삶에서 벌어지는 숱한 역경들을 유머적인 발상 전환을 통해 기쁨과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삶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고된 일들이 모두 행복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겹겹이 다가오는 좌절과 불행들을 행복들로 다 바꿔주면, ‘첩첩행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기적같이 놀라운 능력 때문에 유머를 최고의 영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산상수훈 브뤼헬
▲16세기 플랑드르 화가 브뤼헬의 1598년작 ‘산상설교’.

-목사님들도 설교 속 유머에 관심이 굉장히 많으십니다. 설교에서 유머를 사용할 때 유의해야 할 점과 함께, 설교 속 유머의 농도와 빈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몇 년 전 목회자들 대상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의 70%가 설교 시간에 재미있는 유머를 사용한다고 답했습니다. 설교에서 유머는 필수입니다.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이 ‘오늘 설교 유머 뭐하지’ 하고 한두 개 유머를 찾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품위 있는 유머라면, 열 개든 스무 개든 최대한 유머를 넣어줘야 합니다. 설교자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 입장으로 바꿔 생각하실 줄 알아야 합니다.

유머 없는 딱딱한 설교를 30분, 한 시간 듣고 앉아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지루한 일입니까? 예배 시간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 성도의 의무니까, 유머를 하든 안 하든 가만히 듣고있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삭막한 세상에서 부대끼며 지내다가 쉼을 얻으러 온 성도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으로 숨통을 터줘야지, 지루함으로 또 하나의 고문을 해선 안 됩니다.

물론 웃음을 얻기 위해 예배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또 설교 메시지를 놓치면서까지 유머로 채워선 안 되겠지요. 하지만 웃음을 줄 수 있는데 굳이 딱딱하게 지루하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은 최대한 웃음을 주면서 뜨거울 땐 뜨겁고, 진지할 때 진지하고 거룩할 때 거룩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진지함으로만 일관해선 사람이 견디기 어렵습니다. 성도들도 성도 이전에 인간이니까요.

말씀이 좋으면 부흥하는 것처럼, 웃음을 많이 주는 것도 부흥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은혜도 없는데 유머마저 없는 설교는 성도들이 설교 시작 전부터 두려워하고, 설교가 시작되면 ‘언제 끝나나’ 하기 마련입니다.

반면 유머가 풍부한 설교는 시작 전부터 기대가 되고, 끝나면 ‘더 했으면’ 하고 아쉬워하게 됩니다. 어느 쪽이 부흥과 복음전파에 유리할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유머에 훨씬 더 신경써야 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설교 속 유머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는지요. 그리고 어떤 점을 좀 더 발전시키면 좋을까요.

“깨어있는 목회자 분들은 유머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유머를 단순한 농담이나 우스갯소리로만 생각하는 고루한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설교에서 유머의 중요성을 모르는 분들은 빨리 깨달아야 하고,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설교 유머를 선정할 때의 문제 중 하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케케묵은 유머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은행에 온 할머니에게 창구직원이 비밀번호가 뭐냐고 묻자 ‘비둘기’라고 대답했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구구구구’ 했다는 이런 유머처럼, 사람들이 많이 알고있는 유머는 좋지 않습니다.

물론 아무리 잘 알려진 유머라 하더라도 대중들은 유머에 약하기 때문에, 참석자 절반 이상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분들은 웃을 것이지만, 그 유머를 이미 알고 있는 적지않은 사람들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불쾌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안 웃기거나 다 아는 유머를 하면 ‘썰렁하다’고 표현하는데, 이 썰렁하다는 것은 뭔가 행복(웃음)을 기대했다가 얻지 못하고 실망했을 때 우리 뇌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 때 경험하는 느낌입니다. 행복과 애정을 느끼면 훈훈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지고 뜨거워지기까지 하지만, 실망하면 냉랭해지고 마음이 차가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이 웃는다고 안심해선 안 됩니다. 안 웃는 사람들에겐 고역이기 때문입니다. 새롭거나 많이 알지 못하는 유머를 사용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며, 다 아는 유머 밖에 없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누군가에겐 약이지만 누군가에겐 병이 된다면,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본인만의 경험담이나 일상생활에서 겪은 재미난 일들은 그럴 염려가 없기 때문에, 평소 잘 메모해 두는 습관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