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조국 전 장관. 불의한 정치지도자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공의의 판단을 위해 기도하며 선거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권리를 ‘반드시’ 행사하는 것이다. ⓒ크투 DB
대한민국은 검찰 개혁 이전에 의식 개혁이 필요한 나라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정직성과 상식을 구비하는 것이다.

25년의 미국 생활 후에 수년 전 고국에 처음 왔을 때, 옛 친구들을 만나보고 꽤 놀랍게 여겼던 일이 있었다. 한 친구의 경우는 미국에 유학을 보낸 아들에게 뼈빠지게 송금을 해주는데도, 정작 아들이 학업은 등한시하면서 유학 온 다른 친구처럼 좋은 차를 타고 다니지 못하는 걸 불만스러워하며 전혀 부모에 대해 고마움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또 한 친구는 대학원과 군대까지 마친 신체 건강한 아들이 종일 놀고 먹다시피 하고 취미 생활로만 세월을 보내는데도, 철부지 아들 건사하듯 부모가 의식주를 다 뒤치다꺼리 하는 것이었다.

의아해 하는 필자에게 친구는 한국 청년들 세태가 다 그렇다며, 지난 날 가정 형편상 아들의 유학을 도중하차 시킨 걸 미안해 하며 요즘 한국의 청년 세대가 제일 불쌍하다고만 했다.

또 다른 두 경우는 아들들이 다 검정고시 등으로 고졸 후 대학 진학을 안한 경우였다. 필자게 인상 지워진 지난 날 한국의 분위길 생각하면 너무도 의외였지만, 내심 그간 한국에도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 고졸도 얼마든지 사회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살아가는 분위기가 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더욱 놀라웠던 것은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뉴스가 터지자, 전반적으로 달린 댓글들의 내용을 보고서였다. 내용인즉 저렇게 다 갖춘 장관 부부도 자식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토록 노력을 기울이건만, 그만도 못한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과연 한 게 뭔가라는 자책조의 뉘앙스를 풍기는 댓글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관의 딸도 특이한 행색의 김 아무개 방송에 나와서 “어머니가 절 위해 모든 걸 뒤집어 쓰시고 희생하시는데 …” 라며 말끝을 흐렸다.

부모 공경은 옳은 것 같은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래도 한국 사정이 납득이 안 갔다.

그런데 시간이 더 흐른 요즘, 전 법무부 장관 부인과 검찰총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 후 정말 이상한 것은 정계 인사들–좌파 의원들과 법무부, 사법부 관계자들의 발언과 태도였다.

검찰총장의 가처분 소송에 대해 극히 상식적이고 정당한 법원의 판결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총장의 징계를 주장하는 어떤 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검찰이 휘두른 무소불위의 권력에 의해 노 대통령이 죽지 않았는가”라는 것이었으니.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초기 때 필자가 감지했던 것은, 많은 좌파 정계 인사들과 상당수 국민들이 노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트라우마성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필자는 노 대통령 시절 당시 한국에 없었지만,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 좌파 의원들과 언론이 과거 노 대통령 자살 사건의 전적인 책임을 검찰에 지웠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같은 검찰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과 더불어 사무친 피해의식 때문인지, 최근에 이들은 검찰에서 현재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객관성을 잃은 듯 보였다.

결국 지난날 불행의 여파가 아직도 정치 현실로 이어져 새로운 시대에 바른 국민적 도덕질서를 세우려는 검찰 개혁에 되려 역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검찰 개혁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의식 개혁이다. 전자가 하드웨어라면, 후자는 소프트웨어이다. 트라우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목숨을 끊은 자는 공개적인 진술을 포기할 정도로 자신의 과오의 결과를 감당치 못하여 스스로 공직자로서 최고의 가치적 명분을 두었을 청렴이나 명예 같은 자신의 정체적 존엄성에 먼저 사형선고를 내리고 만 것이다.

물론 외부적으로 받았던 자극으로 인한 모욕감이나 수치감, 이에 대한 반발심이나 원망감도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차 요인은 자신의 신조와 행위의 결과적 괴리로 인한 내적 붕괴가 큰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사심없는 듯 순박하고 소탈한 표정의 고인의 모습을 보았을때, 필자도 몹시 마음이 울적했고 유감스런 국민적 공감대를 이해할 만도 했다.

그러나 자살은 우울증 환자나 자살이 강요된 환경이 아닌 이상 의지적인 자기 살해이므로, 자살을 실행한 사람에게 1차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공직자라면 국민에 대한 책임감의 유기라 할 만큼 불명예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자살 심리엔 남은 자들에 대한 복수심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니 말이다.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초기 진행 중, 유 아무개 씨는 방송에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 노 대통령 같이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섞인 말을 하며 자신의 불안감을 자주 드러냈고, 검찰 수사에 역행하는 주관적 억측과 편파적인 두둔으로 일관하며 과잉 행동을 전격 취하기도 했었다.

생각컨대 정치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정리와 치유가 안 된 후유증의 여파가 악순환의 고리처럼 후임인 전직 두 대통령에게도 이어져, 역시 과거 못잖은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데 일조한 면이 크다. 이에 대한 역성토가 결과적으로 기독교계 안에서도 거국적인 규모로 일어나지 않았던가?

최근 대한민국 사회정의와 법질서를 왜곡하는 의견들이 난무한 현상에도 두 가지 원인적 요소가 들어있다고 본다.

하나는 전술한 바대로 정치적인 면에서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씻기지 않은 앙금 떄문이고, 또 하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대중적 불만 때문이다.

소위 ‘입시지옥’이란 스트레스를 겪고 살아온 현재 부모 세대는 지나치게 경쟁적인 교육 환경에 대해 상당한 유감을 품고 있어서, 될 수 있으면 자녀들을 입시 스트레스가 없는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려 하거나 대안적인 방법들을 찾고자 노력해온 추세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전 법무부 장관 부부의 입시 비리를 바라보는 일부 대중들의 시각이 의외로 관대한 것엔, 투사적 심리기제가 작용된 것 같다. 즉 너도 나도 여건만 되면 자식들을 위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 공범이 아니냐는 식의 자조적인 저항감의 표출 말이다.

이는 한국적 교육 현실이 낳은 잠재적 트라우마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력을 저해하는 사회 병리 현상으로 까지 드러나게 된 것으로 밖엔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한국적 교육 현실의 문제가 단지 시스템만의 문제일까? 검찰 개혁과 마찬가지로 교육 시스템 개혁 에서도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의식 개혁인데, 진정한 교육의 본질을 깨닫고 개선하고 회복하는 것이 우선 순위이다.

5년 동안 한국에 줄곧 살아온 20대 아들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전 법무부 장관 입시비리 이슈에 관한 뉴스에 대해 불쑥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서 그런 일은 전부터 누구나 다 해오고 있는건데, 요번 그 사람들은 재수가 없어서 걸린거래.”

아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예상치 않았던 필자로선 당황한 나머지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냐고 잘못된 정보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한편 대중들의 정서가 얼마간 그렇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미국에선 한 2년전 대형 대학 입시 스캔들이 일어났다. 로리 롤린과 팰리시 호프만 두 여배우를 포함, 33명의 부모들이 가담해 윌리엄 릭 싱어라는 캘리포니아 브로커에게 거액을 주고 스탠포드와 예일에 자녀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SAT, ACT 같은 중요한 입시 서류와 성적을 가짜로 만든 것이었다.

싱어는 그들의 자녀들을 엘리트 선수로 꾸미기 위해 유명한 스포츠 무대에서 활약하는 사진을 만들어주거나 인터넷의 사진을 이용하기도 했고, 선수의 사진 얼굴 위에 아이의 얼굴을 끼워넣는 수법 등도 썼다.

또 학생들이 다쳤다는 거짓말로 시험 시간을 연장시키거나 시험관에게 뇌물을 주거나 제3자를 시험보는 아이와 같은 시험 장소에 앉게 하여 아이에게 정답을 알리게끔 했다. 입학 사기 공모에 연루된 사람들은 대학 선수 코치들과 대학 입시 행정가들을 포함하여 50명이나 되었다.

렐링 변호사는 “이들 부모들은 이미 부와 특권을 누리는 계층들로서 자녀들에게 얼마든지 정당한 유익(legitimate advantage)을 제공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교육 제도를 오염시키고 조작하는 일을 하기로 의지적으로 선택했다(they chose to corrupt and illegally manipulate the system for their benefit). 그러나 부자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입시제도는 없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또 부자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사법제도도 없는 것이다(There will not be a separate admissions system for the wealthy. And there will not be a separate criminal justice system either)”라고 했다.

재판부는 사건에 연루된 대학과 총장을 부지간에 특정인에 의해 피해를 당한 걸로 판단했고, 대학 측도 수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또 많은 경우 입시를 치룬 학생들은 부모들이 스펙을 속이기 위해 꾸민 사실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싱어를 비롯한 모든 관계자들은 전부 자신들의 유죄를 인정했다.

미국에서 사문서위조는 경범죄가 아닌 중범죄에 해당하므로, 보통 3년에서10년까지의 투옥이 적용된다. 한편 미국에서 금융사기에 관한 수사는 금융 생태계를 비롯해 내외적인 회계감사와 환경규제 등에 대한 위험성이 높아, 치밀한 수사 팀이 구성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밝혀내기가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미루어 짐작컨대 전 법무부 장관 부부의 수사엔 입시비리 외에도 금융 관련 수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초기부터 검찰 측은 일반 국민들의 이해를 넘어서도록 전문적 채비를 갖추고 수사를 시작했던 것 같다.

문제는 리더들이다. 일반 국민들은 몰라서 오해할지라도, 사법부와 검찰 수사의 내용과 성격을 아는 국회의원들과 언론인들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정치인과 언론인 이라면 사욕을 버리고 좀 더 신중하고 솔직해야 한다.

이들이 공정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정당적 이익에만 급급해서 얄팍하게 연약한 국민들의 정서를 부채질하는 식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이는 국민의 공복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이고 그들이 그토록 기리고자 하는 고 노 대통령의 애국지심과도 한참 어긋난 일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오류와 많은 악영향에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르게 컨트롤하는 방법은 욕심과 선입견을 버리고 소통의 장으로 나오는 것이리라.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 않고, 모두 드러나지 않은 죄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이 땅에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양심을 보전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믿는 자로서 마땅히 믿음 없는 자들의 연약함을 기도의 눈물로 감당해야 하는 빚을 지고 있다.

모쪼록 전 법무부 장관 부부와 자녀들에게도 인생의 어두운 시기를 통해 참 빛으로 오신 주님을 전격 만나는 새로운 기회가 선물로 주어지길 기도 드린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모두가 새해에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교회와 나라에 진정한 치유와 화합이 일어나도록 소통과 겸양의 미덕을 갖추는 회복의 전령사가 되길 진정 소망하고 기도하는 심정이다.

박현숙
▲박현숙 목사.
박현숙 목사
인터넷 선교 사역자
리빙지저스, 박현숙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9awEs_qm4YouqDs9a_zCUg
서울대 수료 후 뉴욕 나약신학교와 미주 장신대원을 졸업했다. 미주에서 크리스천 한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시집으로 <너의 밤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