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연설 모습.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가 있다. 이럴 때면 사람들은 ‘언제 한 번 내 인생에 따뜻했던 날 있었느냐’며 불평하기 일쑤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겨울은 다르게 다가온다. 겨울은 나에게 상상의 계절이다. 눈 덮인 세상, 나뭇가지만 앙상히 남은 풍경은 나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뼈대만 스케치된 하얀 도화지에 나는 봄꽃들의 찬란함과 풀내음 향긋한 여름의 신록들과 황금빛 가을 낙원을 마음껏 채색해 본다.

겨울은 무한한 삼계절을 품은 계절이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추운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다. 이것이 내가 내 인생의 차디찬 바람 부는 시간을 거침없이 사랑하는 이유이다.

바야흐로 120여 년 전, 망국을 코앞에 둔 1904년. 시체더미가 쌓여가는 한성감옥 안에서도 매서운 바람 끌어안으며 새로운 봄날을 상상했던 죄수 한 명이 있었다.

29세 청년 죄수 이승만. 그는 ‘독립정신’이라 제목 붙인 종이 위에 조선을 위한 봄의 축제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유, 기독교 정신 그리고 독립’이 그가 그린 봄날이었다.

자유와 기독교는 독립을 향한 치정관계이다.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존엄성. 그 존귀 안에 개인의 자유가 싹튼다, ‘개인을 강조한 자유’는 ‘공동체 의식’에 저항한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기독교 정신은 타인을 품는 공동체를 결집한다. 이 ‘집단적 사랑’은 ‘개인의 자유’에 저항한다.

자칫 ‘이기주의’와 ‘전체주의’로 왜곡되어 화합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역설적 관계는 서로를 죽이지 않고 끌어안는다. 이 아이러니한 화해의 산물은 ‘독립’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자존(自存)케 한다.

이승만은 한반도에 ‘독립정신의 씨앗’ 하나를 심었다. 그 씨앗은 척박한 땅에서도 생명의 열매를 맺었다. 대한민국 독립은 사회현상이 아니라 생명 현상이었다. 세상은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 불렀고 우리는 그 따스한 봄 햇살을 누리며 살아 왔다.

독립정신
▲이승만 전 대통령이 과거 한성감옥에서 집필한 책 ‘독립정신’. ⓒ이승만기념관
‘봄이 되면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봄의 흙은 헐겁다. 봄 햇살 아래 긴장 풀린 얼음이 녹아 흙은 헐거워진다. 헐거워진 흙이 땅을 단단히 잘 잡아주지 못하면 이 시기 보리가 새로이 날 수가 없다. 이 마음 잘 아는 농부는 온 식구들을 불러 모아 보리밟기를 시작한다. 단단해진 토양에서 보리의 생명이 자라난다.

처음 맞이한 대한민국의 봄은 몹시나 헐거웠다. 긴장 풀린 세대는 생명 나는 이 시기를 등한시 했다. 그들은 보리 밟기를 해주지 않았다. 다음 세대의 생명이 자라나기에는 땅의 토양이 그리 단단치 못했다.

찬란한 봄만을 경험한 다음 세대들은 겨울의 길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이 따스한 봄날만을 누린 세대는 역사의 추운 뒤안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따윈 도무지 묻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땅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누가, 어떻게 투쟁해 쟁취해 냈는지 알 리 없다. 사실 이들에겐 어둡고 쓰라린 기억들, 기나긴 터널 속의 아픔들을 함께 견뎌낼 힘조차 없다. 자신의 어둠을 직면할 용기조차 없다. 그래서 있는 것마저 지우고 잊는다. 반복한다.

슬프게도 어둠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빛의 시간들은 소멸되고 만다. 요즘 뼛속까지 소름 돋게 하는 차디찬 겨울바람이 다시 대한민국에 불어오고 있다.

매서운 바람에 우리는 또다시 원망을 내뱉으며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아니다. 이럴 때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봄날을 다시 그려야 할 때이다. 다시 봄날을 상상해야 할 때이다. ‘다시, 독립정신’으로 말이다.

‘개인. 개인의 자유. 개인과 공동체, 노동, 노동의 가치, 영적이고 도덕적인 훈련, 그리고 개인과 책임’, 이와 같은 정신들로 대한민국을 다시 채색해야 한다. 나는 믿는다. ‘다시 독립정신’으로 ‘다시 찬란한 봄’을 되찾을 수 있다고.

김진
▲김진 청년.
김진
청년한국 아카데미 회원
정암 리더십스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