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의 혼인잔치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
▲가나의 혼인잔치 그림 중 일부. 이 그림에서도 극명한 차이가 좌우 구도로 나타난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표정이 안 좋고 이쑤시개로 이빨이나 쑤시고 있다.
본문: 요한복음 2장 7-9절

주님의 첫 기적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주님은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가지고 포도주로 만들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기적의 사건에서 연회장과 하인들이 대비되어 나옵니다. 연회장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조달되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물 떠온 하인들은 알고 있다는 역설적 문맥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바탕으로 ‘하인들의 기적 체험’이라는 제목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체험이 확실한 지식이다
체험보다 더 확실한 지식이 없다는 말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9절)”.

체험은 확신을 갖게 만듭니다. 체험이란 어떤 일을 실제로 보고 듣고 겪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체험한 것이 비록 잘못된 것이라 해도, 체험은 확신을 갖게 만듭니다. “내가 그것을 직접 체험했다”는 사실이 권위를 가진 이론을 능가합니다. 이처럼 하인들은 직접 체험하고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히브리 말로 알다, 즉 ‘야다(yadah)’는 경험했다,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장 34절에서 나사렛 처녀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아들을 낳으리라!”는 ‘아기 잉태’ 소식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고 완강히 거부하면서 반문합니다. 이럴 때 ‘야다’는 동침한다는 뜻, 곧 남자와의 성적 경험을 말합니다. 이는 실로 체험보다 더 확실한 지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도 “머슴은 나이가 보배이다”고 했을 것입니다. “체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 중요성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누가 뭐래도 인간은 ’체험적 존재‘가 맞습니다. 자기가 체험한 것 이상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활하면서 알게 되는 생활의 체험, 몸으로 알게 되는 육체적 체험, 그리고 공부하면서 깨닫게 되는 정신적 체험 등이 모두 그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란 모름지기 이론적인 것보다는 체험으로 알아야 된다는 교훈입니다.

2. 하인들이 신비 체험을 했다
하인들이 신비 체험을 하고서 신비로운 사람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혼인 집 마당 어귀에 놓인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 개에 하인들은 물을 길어다 부었습니다. 물을 항아리 아구까지 채울 동안은 분명 물이었습니다.

그 물은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서 손을 씻을 뿐인 허드렛물이었습니다. 그때는 하인들이 더 의심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물이 필요한 때가 아니라, 포도주가 필요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분부를 따라 그 물을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을 땐 포도주였습니다. 하인들의 손에 의해 날라지는 과정에서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지난날 중세시대 신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물로 된 포도주냐’, ‘포도주가 된 물이냐’를 놓고 길고 긴 논쟁을 했답니다. 그래서 결국 ‘물이었던 포도주’라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이는 마치 가톨릭의 성수(聖水)에 빠진 파리를 놓고 ‘성수가 오염됐느냐’, ‘파리가 성화(聖化)됐느냐’ 하며 논쟁하던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모두 체험하지 않은 이론가들의 논쟁일 뿐입니다.

체험한 사람은 그렇게 말이 많지 않습니다.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이 한 마디가 바로 그것을 일축하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까불지 마라! 너희들이 체험도 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아?”입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사건을 보았던 하인들이 체험한 것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신앙이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비한 체험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주님 안에서는 별 볼일 없는 존재가 신비한 존재로 변화된다”는 교훈입니다.

3. 하인들이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인 하인들이 기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9절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의 이 선언적 한 마디는 어쩌면 본문 중 가장 하이라이트요, 클라이막스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현장에 있는 하인들이 생각지 않게 기적의 주인공이 된 분위기입니다. 하인들이 어깨가 우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서 지금 혼인잔치가 확 달라졌습니다. 어쩌면 주님의 기적보다 하인들이 더 부각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그날의 하인들은 누구의 축하도 선물을 받는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넘치는 환영과 정중한 대접을 받는 하객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물만 떠서 나르던 별볼 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이름 없고 빛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기술이 있었을까. 무슨 자격과 권력이 있었을까. 그들에게 있는 것은 오직 겸손한 순종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주님의 첫 번째 기적을 체험한 장본인이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웠을까요? 아마 그들은 이 영광스런 비밀을 확실히 체험한 이후 삶이 기쁨으로 넘쳐흘렀을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마음 깊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김충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에서 만난 김충렬 박사.
4. 정리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물 떠 온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저와 여러분도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가 믿을 때에 체험적인 믿음을 갖게 하소서, 신비 체험을 하게 하소서, 그리고 기적의 주인공이 되게 하소서,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기적을 체험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