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로우크릭, 호화 시설에 가난한 자들 소외
레이크우드, 반쪽 복음 전달과 영적 미성숙
새들백, 그나마 복음 외치며 진리에 서 있어

미국 교회 윌로우크릭 레이크우드 새들백
▲왼쪽부터 빌 하이벨스, 조엘 오스틴, 릭 워렌 목사. ⓒ크투 DB
한국교회는 위기 속에 있다. 이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무엇과 맞서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객관적인 예상과 준비를 위해 먼저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는 서구 교회, 특히 미국 교회가 맞이한 위기의 원인을 살펴보자.

전 프린스톤신학교 선교학 교수였던 대럴. L. 구더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 주요 교단인 연합그리스도교회(UCC), 연합감리교회(UMC)와 연합장로교회(PCUSA)의 다양한 문제점 중 첫 번째는 최근 위 교단들 모두가 동성애자들에게 목사 안수를 승낙했다는 점이다. 그러자 교인들이 심각하게 감소해 젊은이들은 떠나가고, 60대 후반의 노인들만 남았다.

두 번째는 목회자들이 3-4년마다 바뀌다 보니 교회는 성장하지 못하고 감소하는 추세였다.

세 번째는 사람들이 교회에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편리함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여 인터넷 교회, 텔레비전 교회가 등장했다. 헌금은 온라인으로 이체하고 있다. 문제는 성도간의 교제와 책무가 없어져, 신앙은 있어도 외롭고 인격의 변화는 없다.

넷째는 교회 재정이 건물에 너무 많이 지출되고 재정 비리와 불투명으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다.

다섯째는 성경을 읽지 않고 기도와 말씀에 열정이 부족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 이 외에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미국 교회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위기에 맞서 해결을 시도한 3개의 교회와 새로운 교회 운동 하나를 살펴보자.

첫째, 시카고에 있는 빌 하이벨스 목사가 사역하는 윌로우크릭 교회이다. 이 교회는 전도를 위해 기존 신자들은 수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주일에는 구도자들을 위한 열린 예배로 드린다.

그리고 새신자들이 교회에 왔을 때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도록, 교회 안에 대형쇼핑몰 시설을 두었다. 책방과 피자가게 등 규모도 대단하고 모든 시설은 A급이다. 그래서 교회인지 백화점인지 모를 정도이다.

둘째, 휴스턴에 있는 조엘 오스틴 목사의 레이크우드 교회이다. 이 교회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로서 25,000명을 수용하는 체육관을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엘 오스틴 목사는 <긍정의 힘> 저자로 유명하다. 이 교회는 전도를 위해 새신자들에게 호화로운 시설과 깔끔한 설교와 친목을 다지고 있다. 특히 새신자들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해, 죄와 십자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셋째, 캘리포니아에 있는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 교회이다. 이 교회는 전도를 위해 <목적이 이끄는 삶>을 저술하여 온 교회가 전도를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동시에 전 세계 교회에게 프로그램을 나눠주고 있다.

넷째, 이머징 교회 운동이다. 이 운동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현대인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카페와 일반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 복음을 들었을 때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종말론을 바꿨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찌 죄를 지었다 해서 지옥에 영원히 보내겠느냐? 때가 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데, 특히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3개 교회와 하나의 교회 운동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들의 노력이 교회의 위기를 해결하는데 덕과 득을 주느냐, 아니면 오히려 부작용을 주고 있느냐이다.

윌로우크릭 교회는 재정이 너무 많이 들고, 편리함을 주려는 호화로운 시설이 오히려 가난한 자들을 교회에 오지 못하게 하는 부작용도 있다. 레이크우드 교회는 신사적이지만 반쪽 복음 전달과 영적 어린아이에서 성숙한 자로 성장하는데 부작용을 준다. 이머징 교회는 진리를 왜곡하고 있다. 그나마 새들백 교회가 복음을 외치면서도 진리에 서 있는 모습이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결론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가 다가오는 세속 문화에 맞서 진리의 복음을 순결하게 지키고, 사회의 필요를 지혜롭게 책임지는 선교적 교회로 거듭나는 것이다.

장찬익
▲장찬익 선교사.
장찬익 선교사
아일레 선교회 대표
광주중앙교회 협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