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복 한일장신대학교 명예총장
▲정장복 한일장신대 명예총장은 코로나19에 대해 “엊그제 영국에서 다시 변이된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한다. 하나님의 단회적인 진노의 손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송경호 기자
지구촌 전체가 1년 내내 재앙으로 신음했던 2020년이 저물고, 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한국교회도 지난 1년간 코로나19에 따른 갖가지 변화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무엇보다 예배당에서 모여 예배드릴 수 없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갈급을 느낀 한 해였다.

본지는 2021년 새해를 맞아, 40여년간 매년 <예배와 설교 핸드북>을 펴내며 한국교회 예배와 설교의 발전을 이끌었던 정장복 한일장신대 명예총장을 만나 비대면 시대 한국교회 ‘예배와 설교’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정장복 총장은 한국 신학계 1세대 예배학자로, 한남대 영문과와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콜럼비아·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기독교 예전과 설교학을 전공한 후 귀국해 80여편의 저서와 역서를 편찬하며 한국교회 예배·설교학의 초석을 놓았다. 25년간 장신대 교수로 봉직 후 한일장신대 총장으로 8년간 재임했다.

사태 초기 ‘비대면 예배’ 가이드라인도 제시했지만
점차 육신 편해지는 비대면·온라인 예배 습관 되면
예배당 출입하는 성도들 줄고 영적 갈급 심해질 것

-2020년 한 해를 어떻게 지내셨나요.

“2020년이라는 한 해를 맞이할 때와 끝날 때가 너무 달랐습니다. 1월에는 벅찬 희망과 설계가 있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계획도 있었고, 해외에 있는 자녀들도 방문했습니다. 인간적으로 하고 싶은 세계가 많았지만, 두 달 만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아, 내일이라는 것은 하나님 손에 있지 안간의 손에 있지 않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특히 성탄절에 남몰래 눈물을 글썽이면서 ‘하나님, 이게 웬일입니까? 우리 주님 오심을 감격하고 찬양하고 불렀던 크리스마스 캐럴 부를 수도 없고 불러야 할 예배당도 없고 다 닫혀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제 거두어 주십시오’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영국에서 다시 훨씬 강한 바이러스가 창궐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연말을 맞는 지금, 내년은 더욱더 하나님 손에 있지 인간의 예방 접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재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 나이도 꽉 찼으니,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새로운 영적 눈이 뜨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연초에는 인간의 설계가 화려했고, 지금은 영적 눈이 뜨이는 연말을 맞습니다.”

-직접 비대면 예배를 인도해 설교도 해 보셨지요.

“저는 사태 초기 방역 당국에서 교회에 대한 조치를 내렸을 때, 가장 먼저 ‘비대면 예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당 예배만 고수하고, 그렇게 방역 당국과 충돌하고, 코로나 걸려서 죽으면 순교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진 않았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카타콤베를 비롯해 예배 장소의 변경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비대면) 현장은 총탄을 피해 온라인으로 잠깐 피신하는 예배 장소 변경으로, 거기까지는 찬성했습니다.

비대면 예배의 장점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너무 오랜 시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다 보니, 몹시 두려운 미래가 눈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예배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비대면·온라인 예배를 드리면, 점차 육신이 편해집니다. 교회 갈 준비도 필요 없고, 보고싶지 않은 사람 피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편합니다. 이것이 습관화된다면, 우리의 교회당 출입은 점차 그 인구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큰 손실입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영적 갈급, 갈증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생명체로서의 몫을 감당하지 못하는 하나의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처럼 경건성, 거룩함의 추구 등도 점점 없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개신교만 보고 고통스러워할지 모르지만, 사실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교회는 가톨릭입니다. 우리 개신교는 말씀 중심이기 때문에 설교만 들으면 그래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는 그것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원래 예배는 성찬 성례전부터 시작됐습니다. 그 다음부터 서서히 설교가 나오기 시작했지요. 

가톨릭은 미사, 곧 성찬 성례전이 핵심입니다. 주님의 보혈과 성체를 받아 먹어야 예배를 드렸다는 느낌을 완벽히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가톨릭은 그걸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은 아직 온라인 예배를 통한 성찬 성례전을 시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차라리 중단하면 했지, 그렇게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의 핵심 요소들을 잃어버리는 비대면 예배로 인해 우리가 큰 손상을 입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말 자체가 에클레시아(ecclesia), 모임이라는 뜻 아닙니까. 교회는 예배당인 건물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입니다. 이런 교회의 본질적 요소도 상실됩니다. 본질적 요소를 상실하게 된 미래의 교회는 상당히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평상시 주일에는 교인 50여명이 모이다, 부활절과 성탄절에는 수백 명이 모입니다. 성탄절과 부활절만 와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역할을 다한 것처럼 알고, 주일성수가 사라지는 것이 곧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지 않을까요. 살아 있는 신앙의 실천이 예배 가운데 먼저 나타나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많이 상실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장복 한일장신대학교 명예총장
▲정장복 명예총장은 ‘일생의 책’으로 첫 저서인 <예배학 개론>을 꼽으면서 “교수가 되고 초창기에 학부생들이 저를 나가라고 시위까지 하던 때, 국회도서관에 앉아 묵묵히 써내려간 책”이라고 말했다. ⓒ송경호 기자
하나님 앞에 예배라는 귀한 제단 쌓는 데 충성 다해야
예배 내용과 메시지, 인간의 기쁨과 만족에 둬선 안 돼
하나님, ‘참 예배자들’, ‘예배 우등생’ 지금도 찾으신다

-‘거룩성’을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지금 드리는 비대면 예배에서도 거룩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육신 속에 정신이 살아 있고, 정신 속에 영적 세계가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육신이 첨단 문화 속에 젖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육적 생활 향상에만 몰두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그렇게 한 단계씩 올라가다 인공지능까지 가면, 그것이 인간이 쌓아올린 바벨탑이 될 것입니다. 바벨탑에는 인간의 목적과 이윤 , 탐욕 달성 등의 목표가 있을 뿐, 하나님의 영광은 전혀 없습니다. 인류가 전부 그곳으로 흡수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흡수의 세계에 머물러 있더라도 내 기본 정신, 신앙의 목표들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지요. 어떠한 바벨탑을 쌓고 있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조에 나오지 않습니까. 인간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기뻐하는 것이라고요.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제일 목적의 상실입니다. 그것을 상실하지 않겠다는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하나님 앞에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예배라는 귀한 제단을 쌓는 데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거룩과 연결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거룩한 길을 걸을 수 있는 동력이신 하나님 말씀이 주어집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린 신앙의 동력이 예배라는 생활을 통해 이어진다면, 내 육신이 바벨탑을 쌓는 무리들 속에 있더라도 거룩함의 흔적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우리의 예배는 어떤가요.

“지금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싫다고 하십니다. ‘올해의 성경구절’에서 말씀드렸듯, 말라기 1장 10절을 보면 ‘우리 제물을 받지 않겠다, 성전 문을 닫아버리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특히 ‘인간 중심의 예배’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웃고 기뻐하기 위해, 인간의 만족을 위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달성을 위해, 예배의 내용과 메시지의 목적을 거기 둔다면 전혀 거룩의 길이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인가,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하나 유의할 점은, 한국교회가 특별히 집회와 예배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회는 인간 중심이 맞습니다. 인간을 회개시키고 감동시키며, 은혜를 끼치려 하는 등 모든 초점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이것은 집회입니다. 하지만 예배는 아닙니다. 인간의 기쁨이 아니라 순수하게 하나님 중심, 하나님만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집회와 예배를 빨리 구분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는 예배답게, 집회는 집회답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True Worshiper, 요 4:23)’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무리들’입니다. 원문을 보면, 현재진행형입니다. 2021년 지금 현재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참 예배자들’이라고 했는데, 저는 ‘예배 우등생’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습니다. 예배 우등생이 되어야 하나님을 뵐 수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세계를 이룩하는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집회와 예배를 구분하셨는데, 우리는 예배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은혜 받았다’고 하고, ‘은혜 받기 위해 예배드린다’고 합니다.

“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원하는 대답을 받는 것, 이러한 자기 중심적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깨우침을 주셨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게 해 주셨다, 이 찬송을 부를 때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셨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셨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결실’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하나님과의 일대일 만남을 통해 발생되어야 하고, 그래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우리를 끌고 가실 수 있습니다. 불행한 감각을 개선하고, 불만과 아픔을 치유받는 데 목적을 둬선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 주시고 나에게 이런 깨우침을 주셨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과 연결된 해석이 아닐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