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Pixabay
1. 벌써 올 한 해의 마지막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은 길로 대변됩니다. 그래서 ‘살 길’이 막막하다고 하기도하고, 하늘이 무너져도 ‘살 길’은 있다 고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살아오셨습니까? 또 앞으로 어떤 길을 사시렵니까?

2. 자신의 노래인데, 가수가 제목도 잘 모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강산에 씨의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라는 노래입니다. 제목이 참 길지요.

강산에 씨는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연어라고 하면 통하지요”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복잡한 인생을 다 알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저 핵심을 놓치고 삽니다.

3. 노래의 탄생 배경은 이렇습니다.

1997년 한국이 IMF로 힘들어할 때, 모 방송사에서 강산에 씨에게 ‘힘이 될만한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그 후 연어에 대한 다큐를 보던 중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물고기가 민물에서 태어나면 민물에서, 바다에서 태어나면 바다에서 생을 마감하는데, 연어는 민물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 바다에서 성장하더니, 다시 자신이 태어난 민물로 바다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삶을 마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 안도현 시인은 소설 ‘연어’를 통해 “연어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는 명문장을, 강산에 씨는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라는 노래를 만들어냈습니다.

4. 연어가 거슬러 올라갈 때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겠지요.

나는 왜 거꾸로 거슬러 가야 하는가? 이 길이 맞는 것일까?

중간에 만나는 무수히 많은 물고기들은 만류했겠지요.

“바다가 좋아. 이곳이 넓어. 너는 여기에서 충분히 살 수 있어.”

“거스르지마. 그냥 여기 맞춰서 살아. 왜 거꾸로 올라가려 하니?”

“넌 참 별나. 고집이 불통이야.”

“너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들의 길이 막혀.”

그러면서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에게는 무슨 꿈이 있을까. 연어들에게는 고민이 없었을까.

5. 그런데 노래 가사를 오랜만에 곱씹으니, 연어들의 고민이 느껴집니다.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부터인가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여러 갈랫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 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일지라도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걸어 걸어가다 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나 쉴 수 있겠지

여러 갈랫길 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가고 있는
막막한 어둠으로 별빛조차 없는 길일지라도
포기할 순 없는 거야 걸어걸어 걸어가다 보면
뜨겁게 날 위해 부서진 햇살을 보겠지

그 후로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라는 걸 알아
수없이 많은 걸어가야 할 내 앞길이 있지 않나
그래 다시 가다 보면 걸어걸어 걸어가다 보면
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6. 연어들의 고민이 아닌 결단도 느껴집니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자의 고민, 시대의 풍조와 주변 사람들의 “적당히 해라. 적당히 맞춰 살아라”는 소리를 거슬러 올라야 하는 운명, 그 안에 고민이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다른 친구들은 자기 자리를 잡고 어우러져 사는데, 나는 왜 계속 걸어가야 하나?’

꼬부라진 길을 걷는 자의 고민, ‘나는 왜 남들처럼 평탄하게 살지 않지?’

다시 선택을 묻는 갈림길에 선 자의 고민, ‘이 쪽으로 가면 캄캄한 어둠이야. 지금 당장 밝은 이곳을 선택해’라는 소리에 다시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가는 자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거슬러 거슬러 길을 올라가는 자의 고백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 후로는 나에게 너무나도 많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 걸어 걸어 가다 보면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 하겠지’.

존재의 목적과, 과정의 감사를 잃지 않는 것.

7. 사실 연어의 삶을 보면 주변 사람들은 ‘넌 왜 거꾸로 가냐’고 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연어는 존재의 목적을 찾아 간 것입니다. 태어난 곳으로, 내가 부름받은 곳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해야 할 일을 부릴 사, 목숨 명을 써서 ‘사명(使命)’이라고 합니다. 즉 목숨을 다해 종노릇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먼저 사명이라고 준 것은 없습니다. 대신 부르심은 있습니다. 불러주신 자에게 목숨 바치는 것, 이것이 부를 소, 목숨 명을 써서 ‘소명(召命)’입니다.

그러니 불러주신 자에게 목숨 바쳐 종노릇하는 소명이, 사명 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인 마음에 목숨을 겁니다. 그것은 사명(使命)이 아닌 私(사사로울 사, 가족사)命입니다.

‘소명’이라고 합니다. 소명을 놓치면 使命이 아닌 私命으로 삽니다. 다시 말해 부르신 자리를 잊고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으면 개인적인 일에 목숨을 겁니다. 가족 일로 하나님 나라까지 엉망이 됩니다.

8.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는 바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이 쓴 <연어>에서 기억나는 마지막 장면이 있습니다.

그 책에는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마지막 여러 친구들과 주변의 시샘. 만류를 이겨내고 거슬러 올라가는 눈맑은 연어와 은빛 연어가 서로를 바라보는 마지막 순간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 알들 속에 맑은 눈이 있을거야.”

“그 눈은 이미 북태평양 물 속을 환하게 들여다 보고 있을거야.”

그래서 시인은 연어라는 말에서 강물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그 존재에 담긴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달은 연어들의 삶이 길이 됩니다. 그렇게 거슬러 올라간 그들의 삶은 또 다른 연어들의 길이 됩니다.

정든 지인과 친구들, 어쩌면 사랑까지도 뒤로 한 채, 그렇게 거꾸로 거슬러 올라 살아가자고 몸부림치는 연어들처럼, 과연 우리는 2020년을 살았을까? 아니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초가집을 짓고 변화산에서 머물러 살자고 예수님께 말한 제자들이었을까?

여러분은 어떤 길을 살아오셨습니까?

9. 세상 어떤 존재도 스스로 선택해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나라 중에 왜 우리는 한국인으로 태어났을까요? 나의 선택이 아닙니다. 백인, 황인, 흑인 다양한 인종 가운데 우리는 왜 황인일까요? 나의 선택이 아닙니다. 왜 나는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났을까요? 나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선택이 아닌 것으로 태어난 우리는 끊임없는 자기 욕망과 싸우게 됩니다.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인데, 그것은 본래 ‘내 마음대로는’ 찾을 수 없는 길임을 언제나 뒤늦게 깨닫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면 정말 ‘마음이 만든 대로’로 가 넓은 길, 넓고 넓은 바다에 풍덩 빠져 살 수 있습니다. 그곳이 여러분의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의 인생에 ‘시온’이 들어가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린 자는 좁은 길을 오르고, 오르막길을 거침없이 달리고, 시대의 풍조와 환경을 거슬러 하나님이 부르신 내 자신의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 84:5-7)”.

10. 마음대로 살고 싶으시지요?

그러나 마음대로 살면, 결국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음을 깨닫지요. 원래 인생은 내 맘대로 사는 게 아님을, 마지막이 되어서 아는 것 같습니다. 마치 올 연말이 되어 2020년을 돌아보니 그렇듯 말이지요.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의 존재를 찾기 위해 거슬러 오름을 각오하면서 삶이 길이 되게 할 것인가? 어린 날 바다에 뛰어들어 결국 산란을 위해 태어난 곳으로 오르는 연어들처럼, 내게 있는 젊음과 지식을 바다를 거쳐 내 존재를 찾고 다음 세대를 위하여 살 것인가?

개인적인 것에 목숨 거는 것이 아닌, 부르신 곳과 부르신 사람들을 위해 목숨 거는 삶이 될 것인가? 그 사람의 인생 마지막 죽음은 강물 냄새가 이미 담긴 알들을 만들어낼 것이고,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어쩌면 그 마지막 장의 풍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가야 할 그 땅 말입니다. 우리가 거슬러 올라, 결국 가야할 그 땅의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2020년. 코로나라는 극한의 상황에 갈등과 분열, 그리고 더 넓은 바다에 가서 살자는 유혹과 “적당히 너만 잘 살라”는 이기주의, 이리저리 바위에 치이고 물살에 치이는 고통이 가득한 세상….

그럼에도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 나라와 내게 주신 소명을 사명 되게 살기 위해 부르신 곳을 버리지 않고 ‘거꾸로 세상을 거슬러 오르며 힘차게 살아온’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의 지친 어깨가 느껴집니다.

강산에 씨의 노래 가사 마지막 문장으로 위로를 대신합니다.

보이지도 않는 꿈

지친 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