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너 요한복음 1
▲Giotto di Bondone의 연작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1305-1306)’ 중 ‘The Lamentation’.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마 3:3)”.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로 보냄을 받아, 천국과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선포하여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이는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메시아’를 영접하도록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조 사역의 장엄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므로, “그대로 되니라”라는 간단한 문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선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씀의 놀라운 성취를 돋보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과 닮은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환경과 여건과 조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사전에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노아 나이 600세가 되던 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오랜 세월 끝에 배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배 안으로 들어 올 것을 권유했지만, 이미 타락한 백성들은 미친 짓이라며 구원의 방주를 외면했습니다.

구원을 얻도록 오래 기다렸지만, 그들은 끝내 노아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고,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곳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앞서 소돔과 고모라 역시 멸망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나이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군말 없이 순종하여 이삭을 제단에 묶고 제물로 바치려 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았다는 확인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봤는데,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짓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사전에 준비하고, 오래 참고 기다려주며, 약속과 계획으로 완성되는 하나님의 유일한 종교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마 25:1-5)”.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종말을 대비하는 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열 처녀 비유는 항상 대비하는 자세, 즉 사전에 미리 준비하는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속 열 처녀의 비유는 구원과 심판의 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언제든지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유에는 이해가 가질 않는 장면들이 몇 가지 등장합니다.

먼저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다섯 처녀들은 이런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릅니다. “왜? 하필이면 신랑이 밤에 올게 뭐람, 낮에 오면 등불을 켤 기름은 필요도 없었을텐데.”

그리고 신랑을 만난 다섯 처녀도, 기름을 나눠서 쓰면 될 것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자기들만 들어간답니까? 늦게라도 기름을 준비하러 간 처녀들은 좀 지체했지만, 기다렸다가 함께 들어갔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문은 굳게 닫히고 맙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오늘 마태복음 25장의 비유를 보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혼인잔치는 곧 구원의 잔치입니다. 그리고 사전에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었더라면 구원받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그렇지만 그것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이지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사전에 준비하는 기름은 어디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잔치에서 쫓겨난다고 마태복음 22장 12절에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복은 잔치에 함께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잔치에 참여 할 수 있는 준비는 예복과 기름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신앙인들은 사전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나중에’, ‘이따가’, ‘다음에’라는 말들을 쉽게 사용합니다. 직장, 사업장, 관공서나 교회에서 흔히 그러한 말을 사용하여 낭패를 겪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는 변명과 비겁한 말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중에 할게, 이따가 할게, 다음에 할게라는 말들은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판단해 일을 망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친구나 부하 직원에게 왜 이 일을 안 했느냐고 따져 물으면, ‘나중에 한다고 했잖습니까?’ 아니면 ‘이따가 한다고 했잖습니까?’ 그리고 ‘다음에 한다고 했잖습니까?‘ 등의 변명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자신의 잘못을 피해가려 합니다.

도대체 그 ‘나중’이 언제일까요? 다음에 한다고 하는데, 그 ‘다음’은 언제일까요? 참으로 난감합니다.

필자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맡은 일들을 우선순위를 정하여 작업하는 습관이 있어, 남들에게 종종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나중에 하면 될 것을 급하게 한다고 핀잔을 줍니다. 일하기 싫은 자들의 공통적으로 하는 습관적인 말이 아닐까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피해가려고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들, 노력도 하지 않고 거저 먹으려고 대드는 사람들, 이 모두가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닐까요?

모든 일에 있어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는 자는 대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육하원칙에 의해, 그리고 일의 경중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해 확인 또 확인하는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매사에 신중함으로 일을 그르치거나 실패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큰 일에도 충성한다’고 주님께서 이미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을 아무 연고 없이 미루는 사람과는 결코 함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할게, 담에 할게, 이따가 할게’라고 말하는 사람은 늘 변명으로 일관하고 거짓말을 쉽게 내뱉으며, 자신에게 위험이 닥쳐오면 남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데 혈안이 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일을 마치면 내일 할 일에 대해 사전에 준비하고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사전에 점검하며, 혹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에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 발생으로 씻지 못할 큰 낭패를 당하기도 하며, 최종 납품에 차질을 빚어 인력 손실과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은 그 일을 오래하게 될 때, 예지 능력까지 얻게 되는 참으로 좋은 습관을 지닌 충성스런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성격이야말로 기름을 준비하는 다섯 처녀에 속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천국을 차지할 수 있는 자격증이 아닐까요?

특히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거래를 삼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분이시기에, 이 세상을 비롯한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기에 철저한 계획과 약속으로 실천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기름이 떨어졌으면, 어서 가서 기름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따가 넣지, 다음에 넣지, 나중에 넣지 뭐’ 라는 안일함 속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 계획했던 일들은 절대로 미루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 오시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최상의 준비는 말할 것도 없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영접하는 길은 오롯이 자신의 회개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이며, 삶을 돌이켜 오시는 주님을 마중나갈 때, 주님은 비로소 내 안에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우리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몸이 피곤하고, 때로는 팬데믹(pandemic) 상황이 길어지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힘들어도, 주님 맞을 준비에는 조금도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철저히 회개하며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신앙인에 대한 구원의 문은 열려 있으며, 또한 우리는 이미 구원의 문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는 사실 앞에, 긍정적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와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오늘 밤에라도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는 늘 깨어 기다리는 믿음을 주시도록, 날마다 찬송과 기도로 준비하는 굳건한 믿음의 자세가 필요 합니다. 성도 여러분, 2020년 연말에 이것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합시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