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카페와 도서관 등에서 지역 주민들 어려움 공유하는 활동
거룩은 불신자와 접촉 않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저자가 문장과 행간 사이에 적신 눈물 자국을 읽을 수 있다면

왜 교회일까?
왜 교회일까?

김기승 | 샘솟는기쁨 | 236쪽 | 13,500원

요즘 교회에 대한 고민이 많다. 특히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는 정체성을 잃은 것처럼 갈팡질팡하고 있다. 버티는 것도 힘들다.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나무들은 몸의 일부를 땅으로 떨군다. 코로나는 교회의 덜 중요해 보이는 부교역자들을 잘라냈다. 열악한 환경과 미미한 사례를 받던 부교역자들은 교회에서 추방되어 길바닥에 주저앉을 판이다.

뜨거웠던 온라인 교회 논쟁도, 온라인 성찬도 생존 앞에서는 무의미해졌다. 그러한 논쟁은 어쩌면 처음부터 배부른 사역자들의 와각지쟁(蝸角之爭)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가 뭔지 잘 모르겠다.

또 한 분의 교회 이야기를 듣는다. 책 제목이 꽤나 마음에 와 닿는다. ‘왜 교회일까?’ 이전부터 물어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욱 깊어진 나의 물음이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넘어, 왜 교회여야만 하는가를 묻는다.

이 책은 교회에 대한 신학적 변증이나 논쟁이 아니다. 개척교회를 시작하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고민한 내용들을 소박하게 적어 내려간 경험의 고백이다.

사실 프롤로그에서부터 가슴 졸였다. 냄새 풀풀 나는 노숙자가 교회를 찾아와 함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 냄새…, 말로 형언하기 힘든 그 냄새를 맡으면서 한 시간 동안 자리에 동석한다는 것은 모험이자 극도의 인내가 필요하다.

수년 전에 외진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지역 주민들에게 식사를 마련해 대접했다. 말이 주민이지, 절반이 노숙자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특히 그 중 몇 분은 냄새가 지독해 함께 참석한 사람들조차 코를 막을 정도였다.

앞에서 어르신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도 해주고 식사도 대접했지만, 뛰쳐나가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런데 하필 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뛰쳐나가고 싶었다’고.

코로나 시대, 교회는 혐오(嫌惡)의 대상의 되었다. 코로나가 교회에서 집단 감염되어 뉴스에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기사 댓글을 보니 ‘교회 차만 지나가도 꼴 보기 싫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귀인의 종들과 같다. 귀인은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은 열 므나를 주며 장사를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지역 사람들은 그 귀인을 싫어했다.

맞다. 교회의 지금이 딱 그렇다. 사람들이 교회를 싫어한다. 그래도 장사를 해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사람들은 묻는다.

“굳이 교회에 소속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믿으면 되지, 왜 굳이 꼴보기 싫은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다녀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하나님만 믿으면 됐지 왜 교회까지 다녀요?’라고 묻는다. 저자는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굳이 답을 할 필요도 없다. 저자는 그저 왜 교회여야 하는가를 삶으로 답한다.

몸으로 써내려간 저자의 일상은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감격스럽고, 때로는 두렵다. 개척교회의 형편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필자가 잘 아는 목사님도 결국 수년 동안 지속한 개척교회를 닫았다.

더 이상 공간에서 모일 수 없는 시대가 됐고, 교회는 해체될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는 여기 다시 ‘교회가 무엇인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저자가 교회를 개척하고 일구어간 여정은 눈물겹다. 아내와 함께 8,000장의 전도지를 나눈 이야기는 더 이상 묻지 않아도 상상이 된다. 딱 한 마디, ‘전도지를 붙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62쪽)’로 충분하다.

멈추지 않았다.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맘카페 활동을 통해 모임을 만들었던 경험, 도서관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어려움을 공유했던 시간들이 쌓여갔다. 저자는 전도가 좀더 명민(明敏)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할 지역이 어떤 곳인지 질문해야 한다. 이 고민 없이 복음을 전하러 나가면 커피콩만 가지고 거리로 나가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91쪽).”

경험을 통한 저자의 답은 ‘상황화(35쪽)’이다. 이 상황화는 복음의 변질이 아니라, 지역에 맞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 교회와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다른 방식으로 전하듯.

어쩌면 교회는 지금까지 획일적인 방법으로 전도하고,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지도해 왔는지 모른다. 어느 지역을 가도 예배 시간이 같고, 설교 방식, 심지어 찬양도 거의 비슷하다. 교회가 프랜차이즈도 아닌데 말이다.

몸으로 쓰고, 삶으로 적었다. 사연 없는 인생 없듯, 아프지 않은 개척교회 없다. 말미에서 ‘혈관종’ 제거 수술을 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디 건강하시길.

다시 ‘왜 교회인가’를 물었다. 저자는 명료한 답을 주거나 교조적(敎條的) 해석을 붙이지 않는다. 그냥 살아간다. 책을 모두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알 수 없는 울림이 있다.

‘지금은 글을 써야 하는 시간’(211쪽)이란 표현이 아름다운 동시에 아픈 이유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허물어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보며 예레미야는 글을 썼다. 우리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붙였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읽고 있다. 아픈 고백이다. 문장과 행간 사이에 적신 눈물 자국을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가치 있을 것이다.

세길교회 김기승
▲저자 김기승 목사. ⓒ유튜브
밑줄 친 문장

“교회도 온도가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실 때 그곳은 진동하였고, 뜨거웠다(24쪽).”.
“우리가 느끼는 교회의 온도를 예수님도 느끼고, 마음 아파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회피하지 않고 뼈를 깎는 고통이 있더라도 온도를 느껴야 한다. 예수님처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36쪽).”

“불신자와 접촉하지 않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거룩일까? 거룩은 불신자와 접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81쪽).”

“우리는 교회보다 예수를 먼저 전해야 한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따라가면 그들이 모여 건강한 교회를 이룬다. 예수 없이 모인 교회는 시기의 차이일 뿐 형편없이 무너진다(119쪽).”

“한국도 쇼핑몰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 복음을 전하는 곳이 아니라 관광지로 추락한다. 왜 우리는 신실한 농부처럼 살아가기보다 육체의 모양, 진열품처럼 외관에만 집착하고 있을까(128쪽)?”

“교회는 성령을 통해 세상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공동체이다.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사람들은 하나님과 무너졌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는 회복된 주님의 사랑을 다시 세상에 흘려보내는 공동체이다(151쪽).”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