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진실보다 거짓에 더 관심을 가지는가?
주장이 사실로 굳어지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거짓 휘둘리는 인생 아닌, 진실을 전하는 삶이 되길

진실의 흑역사
진실의 흑역사

톰 필립스 | 홍한결 역 | 월북 | 300쪽 | 15,800원

복음의 특징은 확장성이다. 복음은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금이 짠맛을 내고 빛이 어둠을 밝히듯, 복음은 있는 그 자체로 영향을 준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변화를 겪는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울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의 변화는 주변에서 먼저 알아차렸다. 사울이 바울이 되는 것이 복음의 힘이다.

교회는 복음이 퍼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역할은 복음이 퍼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퍼지는 것은 복음만이 아니다. 소문도 함께 퍼진다. 아니, 오히려 복음보다 소문이 더 빨리 퍼지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세상이라고 다르지 않다. 세상에는 소문들이 넘쳐난다. 소문의 특징은 확인되지 않는 정보가 많다는 것이다. 진실도 있지만, 거짓도 섞여 있다. 문제는 거짓이 확실해 보이는 소문에도 믿는 사람들이 소수일망정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소문이 거짓으로 밝혀지더라도, 이미 퍼진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2018년 충주에서는 거짓 고발로 조사받던 여경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사건의 시작은 동료의 거짓 고발이었다.

어째서 거짓은 진실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갖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진실보다 거짓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진실의 흑역사>는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할까?’, ‘인간은 어떤 특성이 있어 진실보다 거짓에 더 잘 휘둘리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간다.

<진실의 흑역사>의 저자는 톰 필립스다. 그는 영국의 비영리 팩트체킹 기관 ‘풀팩트’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인류의 실패사를 다룬 <인간의 흑역사> 저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는 매일 거짓에 둘러싸여 살아간다고 말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거짓을 강요한다.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이른바 ‘하얀 거짓말’에 능해야 한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누군가에게 거짓된 정보를 전한 적이 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 10분 대화하는 동안 거짓말을 평균 세 번 한다고 한다.”

저자는 거짓이 진실보다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거짓이 우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몇 가지 설명한다.

첫 번째는 노력 장벽이다. 노력 장벽은 소문의 중요도에 비해, 그것의 사실 확인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경우를 가리킨다. 노련한 사기꾼은 그런 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허위 사실을 꾸며낼 때는 검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정교하게 만들어 낸다.

두 번째는 정보 공백이다. 우리 뇌는 무엇에 관해서든 처음 얻은 정보라면 일단 믿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기준점 효과’라고 한다. 처음 얻은 정보를 다른 정보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반복 현상이다. 누군가의 주장이 반복되면, 검증할 생각보다 정보가 옳다는 확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단순히 같은 주장이 거듭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장이 사실로 굳어지고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네 번째는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다. ‘확증 편향’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어떤 사실을 믿고 싶으면, 뭔가 구실을 만들어서 허황한 주장도 그럴싸하게 포장하곤 한다.

다섯 번째는 자존심의 덫이다. 우리는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정말 싫어한다. 거짓에 속은 것을 깨닫는다 해도 자신의 오류를 숨기고 싶어한다.

여섯 번째는 무관심이다. 거짓을 밝혀낼 기회가 찾아와도, 그 기회를 꼭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일곱 번째는 상상력 부족이다. 우리는 거짓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만들어낼지 미처 깨닫지 못한다. 뉴스에서 나온 기사는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멀쩡한 사람을 보면, 사기꾼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여러 명의 목격자가 뭔가를 보았다고 하면, 무엇인지 확인도 안 하고 그들의 말을 받아들인다.

거짓, 진실
▲ⓒPixabay 제공
이런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해, 저자는 3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관심 두기다.

거짓에 속지 않는 최선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진위가 확실하지 않은 소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금만 노력하면 이야기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진실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어떤 부분에서는 거짓을 은연중 받아들일 수 있다.

세 번째는 진실에 다가갈 때 축하해 주는 것이다. 다른 말로 솔직히 인정하기다.

우리는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발견해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럴 때는 솔직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을 칭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질책이 아니라 축하해 주는 것이다. 처음부터 틀린 말을 안 하면 제일 좋지만,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자기 말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용기를 격려해 주어야 한다.

SNS의 발달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정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잉 정보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을 만들어낸다. 거짓된 소문은 소리 없는 살인자와 같다. 그리스도인은 소문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 억울한 일을 풀어주는 능력이 있다. 복음은 거짓이 아닌 진실을 보여준다.

사울은 복음을 받아들인 후, 자신의 눈을 덮고 있던 거짓이 벗겨지는 것을 경험했다. 거짓에 휘둘리는 인생이 아니라, 진실을 전하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김현수 목사
행복한나무교회 담임, 저서 <메마른 가지에 꽃이 피듯>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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