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판

E. P. 샌더스 | 박규태 역 | 비아토르 | 568쪽 | 19,800원

신학의 발전은 세밀하고도 풍성하게 우리를 성경의 서사로 초대한다. 성경의 전체 내러티브는 텍스트의 철저한 독해와 더불어 당대의 문화와 배경 이해로 인해 더욱 다채로워진다.

신학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훌륭한 작품이 많다. 꼼꼼하게 살펴보고 반복하여 읽으면 좋겠지만, 진입 장벽이 꽤 높다. 전체적인 흐름을 놓칠 때도 있고, 핵심에서 벗어날 때도 있다. 탁월하고 친절한 안내자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간결하게 핵심을 정리한 책도 큰 도움이 된다.

요약판은 방대한 내용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큰 장점이 있다. 이러한 책들은 이미 있어 왔다.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개혁교의학』 (Gereformeerde Dogmatiek)은 존 볼트(John Bolt, 1947-)에 의해 『개혁파 교의학』(Reformed Dogmatics: Abridged in data-one Volume)으로 단권 축약본이 나왔으며,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방대한 저서 『교회교의학』 (Kirchliche Dogmatik) 또한 베버(Otto Weber, 1902-1966)에 의해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Karl Barth's Church Dogmatics, An Introductory Report data-on Volumes I: 1 to III:4)로 단권으로 소개됐다(모든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신약학에서 매우 중요한 샌더스(Ed Parish Sanders, 1937-)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Paul and Palestinian Judaism)는 출간된 지 40년 만에야 겨우 한국에 번역되었다. 하지만 내용의 방대함과 더불어 전체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워 완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 읽었지만 오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김선용 박사는 이를 위해 책의 내용을 과감하게 줄이고, 독자들이 쉽게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판』은 샌더스가 주장하는 핵심을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안내서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40주년 기념판과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판』에 동일하게 있는 마크 챈시(Mark Chancey)의 서문은 보다 선명하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서문만 읽더라도 샌더스가 바라보는 유대교와 율법, 바울의 사상에 관한 관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이후의 발전 과정과 흐름을 간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오랫동안 개신교는 자신들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에 따른 부작용도 크다. 특히 유대교에 대한 오해가 만연하다.

저자는 그러한 오해가 마치 개신교와 로마가톨릭의 논쟁과 같다고 주장한다. 유대교를 로마 가톨릭의 역할로 역투영하는 셈이다(82쪽).

이러한 오해의 주된 원인은 유대교에 대한 베버(Ferdinand Wilhelm Weber, 1836-1879)의 묘사라 할 수 있다. 베버는 유대교를 기독교와 대립하는 율법 종교로 그렸다. 또 유대교의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접근할 수 없는 분으로 묘사했다(71쪽). 아마 대부분의 개신교인이 이러한 영향 아래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샌더스는 그동안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유대 문헌을 직접 독해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유대 문헌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를 밝힌다.

이를 저자는 ‘종교 패턴’이라고 한다. “종교 패턴은 그 종교 신자들이 기능을 따라 그 종교를 이해한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59쪽)”. 저자는 유대교의 많은 문헌들(탄나힘, 사해, 외경과 위경)을 직접 읽고 해석하여, 그 동안 암묵적으로 동의한 유대교는 율법주의라는 등식을 해체한다.

1-3장의 연구는 4장에서 귀결된다. 저자는 4장 '팔레스타인 유대교'에서 유대교가 가진 기본적인 전제를 다시 한 번 밝힌다. 즉 ‘언약’ 개념이 유대교 신학의 기저에 전제되어 있었기에, ‘언약’이라는 용어가 매우 드물게 등장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언약적 율법주의’는 유대교 문헌에서 볼 수 있는 근본적 패턴이다. 저자는 기원전 2세기 초부터 기원후 2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언약적 율법주의’가 일관되게 유지되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언약적 율법주의는 이미 팔레스타인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예수와 바울도 알았을 수 있음을 조심스레 추측한다.

바울
▲서신서를 쓰는 바울(1620).
5장에서 저자는 바울의 사상이 인간의 비참한 곤경에서 시작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순서가 중요해진다.

기존의 도식이 인간론으로부터 구원론을 시작했다면, 저자는 바울서신의 핵심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유일한 해결책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구원론으로 시작하여 인간론으로 연결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셔야 했고, 율법도 함께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면, 율법은 구원의 길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율법은 인간 곤경의 해결책일 수 없다. 이렇듯 바울 사상의 핵심은 기독론과 구원론이라 할 수 있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판』에서는 이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부록이 있다. 그것은 샌더스의 자서전과 그의 소논문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다. 이 부록만으로도 매우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샌더스의 자서전은 학자로서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특히 주요 세 가지 저서(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예수와 유대교, 유대교: 관습과 믿음)의 출간 과정을 그린다.

각 저서의 방향성과 내용 요약은 핵심이 무엇인지를 안내해 준다. 곳곳에 배어 있는 학자로서의 치열함, 대학자이지만 겸손하게 자신과 자신의 연구를 성찰하는 겸손함은 많은 귀감이 된다.

부록 2인 ‘다시 살펴본 언약적 율법주의’는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반대 의견에 대한 거의 유일한 대응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매우 중요하고도 귀한 논문이다. 2004년과 2007년에 발표한 논문이니만큼, 후속 연구과 여러 반론에 대한 샌더스의 입장이 잘 정리되어 있다.

또 후속 연구를 위한 자료를 안내해주는 부록의 An Annotated Bibliography for Futher Study도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김선용 박사는 일차 자료와 이차 자료를 꼼꼼하게 분석하여 소개한다.

바울 신학과 샌더스의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후속 연구를 위한 귀하고 친절한 안내를 통해 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논의의 핵심을 뒤따라 가볼 수 있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많은 분량은 다양한 유대 문헌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접근하여, 그 문헌들에서 전제하고 있는 핵심적이고 통일된 사상을 소개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렇기에 유대교와 유대 문헌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훨씬 더 쉽게 이 책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된 책으로 살펴보자면, 다니엘 보야린(Daniel Boyarin, 1946-)의 『유대 배경으로 읽는 복음서』 (2020, 감은사)와 프데더릭 J. 머피(Frederick J. Murphy, 1949-)의 『초기 유대교와 예수 운동』 (2020, 새물결플러스), J. C. 판데어캄(James C. VanderKam, 1946-)의 『초기 유다이즘 입문』 (2004, 성서와함께) 등도 유대교와 유대 문헌 이해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간추린판』은 원래의 목적을 달성했는가? 독자들은 쉽고 간명하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파악할 수 있는가?

독자들의 의견은 다양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그 목적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엄두를 내지 못했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전체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수월하게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읽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부록의 자서전과 논문, 후속 연구를 위한 안내를 통해 샌더스의 다른 저작을 독파하고 싶은 마음과 다양한 바울신학 저서도 빨리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면, 이 책의 출간은 대성공이다.

모중현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열방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