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초대교회 모습.
오래 전 제가 목회를 하던 12월 어느 날인가, 주보에 기록되어 있는 저를 포함한 섬기는 사람들의 이름을 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12월을 제 스스로 ‘무명의 달’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우리와 같이 되셨는데, 거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도 우리의 모든 꼬리표를 내려놓고 군더더기 없이 그냥 주님의 아들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주보에 적힌 이름 때문에 갈등을 겪는 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누구의 이름이 빠져서, 이름의 순서가 바뀌어 일어나는 일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다짐하며 제자의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도자라 아버지라, 선생이라 칭함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고 하셨습니다.

목사 형제, 장로 형제, 집사 형제일 뿐, 우리의 지도자와 선생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십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려놓고 ‘이 아무개’라는 이름을 쓰시는 목사님이 계시고, 어느 교회 이름이 ‘이름 없는 교회’라는 것도 보았습니다. 양명(揚名)의 유혹을 물리치려는 자기 장치인 셈입니다.

젊은 시절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공사판 인부로 일해 본 적이 있습니다. 공사판에서 처음 저를 부르는 호칭은 ‘어이~’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성을 알게 되자 저의 호칭은 ‘서 씨~’로 바뀌었습니다. 공사판에서 그렇게 부른다고 자존심이 상하거나 언짢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섬기는 사람을 뜻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식당에서 공사판에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일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일터에서는 ‘어이~’라고 불러도 저를 부르는 줄 알고, ‘서씨~’라고 불러주어도 족합니다. 그것이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덧붙여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입니다. 언젠가 내 이름이 사라질 날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사라지는 연습을 반복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 노회한 늙은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저는 이제야 그 일을 실천합니다.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큰 일 날 일일지 모르지만, 저희같이 새롭게 시작하는 작은 교회에서는 목사님들도, 장로님도, 선교사님도, 반주자도 모두 넉넉히 이해하리라 짐작하면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내 이름을 지워보는 게 어떨지 생각합니다.

개혁자들은 ‘오직’이란 한 마디를 깨닫기 위해 긴 고통의 시간을 지났는데 우리에게는 입에 달라붙은 가벼운 말이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같은 말들입니다.

남은 내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야 하고, 그래도 아쉽거나 아깝지 않는 말이 ‘오직’입니다. 내 이름을 제쳐놓고 ‘오직 예수(solus Christus)’를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새겨 보는 것은 어떨지요.

서중한
▲서중한 목사.
서중한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다빈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