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해례본. ⓒ유튜브
아마 어릴 적 다들 한 번씩은 ‘나는 커서 세종대왕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 않을까? 나는 초등학생 시절, 영어와 한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한글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님께 감사했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은 착한 사람이었고, 영어와 한자를 만든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었다. 한글의 창제 목적을 알게 됐을 때는 더욱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영웅이었고, 우리들의 장래희망이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그 어떤 사람들도 이것을 ‘환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2018년, 이것을 환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외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영훈 교수는 그의 책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에서 세종의 정책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는 역사학계에, 아니 대한민국에게 거대한 폭탄을 던졌다. 그가 비판한 세종의 정책은 세 가지다. 노비제를 확립했고, 기생제를 창출했으며, 사대주의 국가체제를 정비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 중 사대주의 국가체제를 정비했다는 점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한다.

사대주의란, 주체성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태도를 의미한다. “아니, 한자를 버리고 독자적인 문자를 개발한 세종대왕이 사대주의 국가체제를 확립했다니?”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반응일 것이다. 일단 세종의 사대주의 정책을 논하기 전, 조선의 건국이념을 이해해야 한다.

조선은 태생부터가 사대주의였다. ‘조선’은 명나라의 황제가 추천해 준 국호였으며, 명나라의 제후국(황제국의 통치를 받는 나라)으로 탄생됐다. 조선은 ‘작은 자가 큰 자를 거스를 수 없다’며 성리학적 도덕국가를 자처했다. 고려가 끝나고 조선이 시작된 순간부터, 한국사는 중국사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세종은 조선의 건국이념에 대해, 앞선 모든 왕들보다도 더 충실했다.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는 예를 몸소 실천해 보였다. 제후국이 직접 천제(하늘에 대한 제사)를 거행하는 것은, 황제에 대한 예에 어긋난다며 이를 폐지했다. 세종은 황제를 위해 처녀를 직접 택하여 조공했고, 그토록 구하기 힘든 해청(매의 일종)을 잡아 바쳤다. 처녀 딸을 황제에게 보내야 하는 부모의 비통함과, 해청을 잡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해야 하는 백성들의 고통도, 황제를 향한 세종의 충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야말로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황제를 섬겼다. 황제에게 세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다.

그의 사대는 훈민정음 창제에서 정점을 이룬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조선의 한자 발음과 중국의 발음은 너무나 달랐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시대에 걸쳐 중국어의 중심이 북경어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명나라가 사용하는 언어를 보다 더 정확히 구사하길 원했다. 훌륭한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아름다운 시문을 지어 바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그로 인해 발음기호를 개발한 것이 훈민정음이었다. 백성들이 글을 익힐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이 명나라의 언어를 더 잘 구사하기 위함이었다.

어떤 관료들은 오히려 사대주의적인 논리로써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다. 조선이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면 황제가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세종의 깊은 지혜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세종에게 그러한 주장은 소극적인 사대주의자들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세종은 적극적인 사대주의자였다. 그의 소망은 조선의 언어와 문화생활마저 대국의 기준으로 교정하는 것이었다. 조선인의 한자 발음을 중국식으로 개조해야만 했다. 그는 발음교정을 위한 보조문자를 개발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새로운 문자를 고안한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사대의 정신에 부합하는 대사업이었다. 세종은 사대주의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열정적인 실천가요 방법론자였다.

결과적으로 훈민정음은 본래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조선과 중국의 언어 생활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기에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발음기호로서는 실패했던 훈민정음이, 표음문자로서의 탁월한 기능을 가졌던 것이다. 세종의 차녀인 정의공주는 훈민정음을 표음문자로서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 문자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마침내 우리 역사의 최고의 자랑이 되었다. 대국을 섬기기 위한 문자가 되길 소망했던 세종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세종의 문자는 그를 성군으로 만들어 준 최고의 업적이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세종은 조선의 건국이념을 진정으로 내면화시키기 위해 분투했다. 선대 왕들의 사대는 정략적이고 형식적이며 관념적이었다면, 세종의 사대는 자발적이고 실천적이며 구체적이었다. 그렇게 조선은 500년 간 사실상 중국의 속국으로서, 성리학적 도덕국가로서 역사를 보내왔다. 그밖에도 세종은 노비제와 기생제를 확립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행복하기란 참 쉽지 않았다. 소수의 출세한 양반들을 제외하고는, 노비로, 기생으로, 중국에 바쳐지는 처녀로, 또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에 신음하며 살아왔다. 이 모든 파노라마에 스며든 피에 대해서 세종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바다
▲한바다 청년.
어쨌든 지금은 대한민국이다. 조선의 시간은 지나갔고, 오늘날 우리는 자유와 정의를 국가이념으로 삼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런데 아직 정신은 조선의 시간에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지나친 망상일까. 한 편으로는 노비제와 기생제과 사대주의를 반대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 모든 것을 확립한 왕을 칭송하는 이 모순의 정체는 무엇일까. 과연 여기는 대한민국이 맞을까.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맞을까. 어쩌면 진짜 환상은 ‘세종은 성군이다’가 아니라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일지도 모르겠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바다
백석대학교 졸업
청년한국 아카데미 회원
차별금지법 청년연대 회원
트루스포럼 회원